본문 바로가기

신당서15

신당서 해(奚) 열전 번역문 돌궐과 풍속이 비슷하여 물과 풀을 쫓아 목축하며 융단으로 만든 장막에 거주하며 수레를 빙 둘러서 진영을 만들었다. 군장(君長)은 항상 무기를 지닌 오백명으로 막사를 지키게 한다. 나머지 부족은 산간 계곡에 흩어져 살며 세금이 없다. 짐승을 사냥하여 물자로 삼는다. 농사는 기장을 많이 심는데, 수확하고 나면 산아래 구덩이를 파고 저장해 둔다. 나무를 잘라서 절구를 만드며, 솥을 이용해 말린 밥을 만들어 찬물에 말아서 먹는다. 싸우기를 좋아하는데, 군대는 5부로 나뉘며 부마다 사근(俟斤)이 이를 주관한다. 그 나라의 서쪽으로는 대락박(大洛泊)에 이르는데, 회흘(回紇)의 아장에서 3천리 떨어져 있다. 대부분 토호진수(土護眞水 ; 老哈河)에 의거한다. 그 나라의 말은 산에 잘 오르고 양은 검다. 한여름에는 반드.. 2009. 12. 28.
신당서 오승체(烏承玼) 열전 번역문 발해의 대무예가 동생 대문예와 나라에서 싸워 대문예가 당으로 도망쳐 왔다. 조서를 내려 태복경(太僕卿) 김사란(金思蘭)과 함께 범양(范陽)과 신라의 군사 10만을 동원하여 발해를 공격케 하였으나, 아무런 공이 없었다. 대무예가 당나라 동쪽 수도인 낙양(洛陽)에 자객을 보내 문예를 찌르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군사를 이끌고 마도산(馬都山)에 이르러 성읍을 공격하였다. 오승체(烏承玼)가 요충로를 막고 큰 돌로 400리에 걸쳐 메우니, 적들이 들어오지 못하였다. 이에 흩어진 유민들이 돌아올 수 있었고, 병사들이 조금 쉬면서 갑옷을 벗고 농사를 지었다. 이 해에 세금을 감면하였다. 2009. 12. 28.
신당서 지리지 발해(渤海) 번역문 당나라는 여러 기미주(羈縻州)를 설치하였는데, 모두 국경 근처에 있었으므로 오랑캐 부락에 이름을 붙였다. 사방의 오랑캐가 중국과 교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수들이 토벌하거나 칙사들이 방문할 때 나아간 길을 기록해 두었다. 천보(天寶) 연간에 현종(玄宗)이 여러 주변 나라들의 거리를 물으니 홍려경(鴻臚卿) 왕충사(王忠嗣)가 서역(西域)의 지도로 대답하니 겨우 십여국에 불과하였다. 그후 정원(貞元) 연간에 재상을 지냈던 가탐(賈耽)1)이 사방 영역의 거리를 고찰한 것이 가장 상세하였으니, 변방에서 사방 오랑캐로 들어갈 때 홍려시(鴻臚侍)에서 통역하는 자치고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사방 오랑캐로 들어가는 길과 관문과 요새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일곱 개가 있다. 첫째는 영주(營州)에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2009. 12. 28.
신당서 북적 말갈전 흑수말갈 #新唐書卷219-列傳第144-黑水靺鞨-06/01 ◉居地, 亦曰, 時曰. 直京師東北六千里, 東瀕海, 西屬, 南, 北. 離爲數十部, 酋各自治. 其著者曰部, 居最南, 抵, 亦曰, 與接, 依以居, 水源於山西, 北注; 稍東北曰部; 又次曰部; 益東曰部; 之西北曰部; 之東曰部. 部間遠者三四百里, 近二百里. 흑 수말갈은 숙신의 땅에 기거하며 읍루라고도 일컫는데 원위(元魏)때는 물길이라 일컬었다. 경사에서 곧장 동북쪽 6천리로서 동쪽은 바다에 연해있고 서쪽은 돌궐에 속하며, 남쪽은 고려이고 북쪽은 실위이다. 수십개의 부락으로 떨어져 있으며 추장들이 각기 스스로 통치한다. 그 들 가운데 알려진 것은 속말부라 하여 가장 남쪽에 거처하는데,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불리는 태백산(太白山)에 닿아 있고 고려.. 200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