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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10

진서(晉書) 지리지 번역: 평주(平州)와 유주(幽州) 1. 평주(平州) 생각컨대 우공(禹貢)에서 기록하기를 평주는 기주(冀州)의 영역인데, 주국(周)에서 유주(幽州)의 경계로 했으며, 한국(漢)때에는 우북평군(右北平郡)에 속했고, 후한(後漢) 말엽에는 공손도(公孫度)가 스스로 평주목(平州牧)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에 그의 아들 공손강(公孫康)과 공손강의 아들 공손연(文懿)이 요동을 병합하고 그곳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국(魏)에서는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설치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고, (이를) 나누어 요동(遼東) 창려(昌黎)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 5개의 군을 평주(平州)로 하였고 후에 유주(幽州)와 합하였다. 이에 공손연(文懿)이 망한 후에 호동이교위(䕶東夷校尉)로 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다. 함녕(咸寧)[1] .. 2018. 1. 4.
한서지리지의 유주(幽州) 등 우리역사 관련지명 번역 1. 유주(幽州) ① 탁군(涿郡) 涿郡, 高帝置. 莽曰垣翰. 屬幽州. 戸十九萬五千六百七, 口七十八萬二千七百六十四. 有鐡官. 縣二十九. 涿, 桃水首受淶水, 分東至安次入河.[1] 逎, 莽曰逎屛.[2] 榖丘, 故安, 閻鄉, 易水所出, 東至范陽入濡也. 并州䆮. 水亦至范陽入淶.[3] 南深澤, 范陽, 莽曰順陰.[4] 蠡吾,[5] 容城, 莽曰深澤. 易, 廣望, 侯國. 鄭, 莽曰言符.[6] 高陽, 莽曰高亭.[7] 州鄉, 侯國. 安平, 都尉治. 莽曰廣望亭. 樊輿, 侯國. 莽曰握符. 成, 侯國. 莽曰宜家. 良鄉, 侯國. 垣水南東至陽鄉入桃. 莽曰廣陽. 利鄉, 侯國. 莽曰章符. 臨鄉, 侯國. 益昌, 侯國. 莽曰有祑[8]. 陽鄉, 侯國. 莽曰章武. 西鄉, 侯國. 莽曰移風. 饒陽,[9] 中水,[10] 武垣, 莽曰垣翰亭.[11] .. 2018. 1. 4.
고조선 왕검성이 요동군 험독현 즉 현재 창려라는 주장은 한문 해독을 잘못한 것이다. 단군의고조선왕검성이요동험독이고,그곳에하북창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이러한주장은역사를제대로읽을줄아는안목이없으며, 한문해독도잘못한것이라고말하고싶습니다. 1) 한문해독오류 고조선왕검성이요동군험독현이라고주장하는이들은기록은사기(史記)에더한주석을보고하는것입니다. 이주석들은사마천이기록한것이아니라후대의사람들이더한것입니다. 《史記卷一百十五》朝鮮列傳 滿…중략…亡命者王之都王險【集解徐廣曰昌黎有險瀆縣也索隱韋昭云古邑名應劭注地理志云遼東有險瀆縣朝鮮王舊都瓉云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위만은…중략…망명자들의왕이되어왕험(王險)에도읍하였다. 【집해(集解)에서서광(徐廣)이말하기를창려(昌黎)에험독현(險瀆縣)이있다. 색은(索隱)에서위소(韋昭)가말하기를옛읍의이름이다. 응초(應劭)가주석하기를한서지리지에서는요동군(遼東郡)에험독현(險瀆縣)이있는데.. 2013. 7. 2.
馬韓東北有百濟, 百濟東有樂浪, 百濟北有靺鞨 설에 마한은 전라도요, 백제는 경기와 충청도요, 말갈은 송화강 유역이요, 낙랑은 요하 혹은 대동강 유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 설명하는 마한 백제 말갈 낙랑 등의 위치 관계는 통설의 위치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1. 통설과 맞지 않는 《삼국사기》 기록 • 백제와 마한의 위치관계 마한이 전라도이고 백제가 경기도이면 백제는 마한의 북쪽이던지 서북쪽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은 전혀 다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4년 王作熊川柵馬韓王遣使責讓曰王初渡河無所容足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온조임금이 웅천책을 세웠다. 마한임금이 사신을 보내 책망하였다.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분명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에 위치한 나라.. 2013.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