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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화112

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A.D.377 - A.D.382(名號變更)) - 한문본 仇道帝(述禮) - 味鄒帝(達禮) - 休禮 仇道帝(錄帽) - 末昕帝(述禮) - 末仇帝(休禮) - 奈勿聖帝 仇道帝(錄帽) - 末昕帝(乳帽) - 大西帝(禮生) - 實聖帝 元年 丁丑 五月 受禪于桃(山) 卽位于明宮 大赦天下 尊父末仇角干爲帝 母休禮宮主爲太聖 繼父大西知爲太公 원년(A.D.377) 七月 華宗稟主(伊伐)飡 明白稟主 明白者季父長昕公女也 與其夫華宗受長昕公命 行禪讓大事 故首登寵相也 大西長昕自味鄒時 繼末仇帝 久執兵權 威振一國 至是天下 竟歸金氏 神后夢見海宮神 命復築海宮 九月 品馬于桃山 長白主之 帝與后 行大場 于南郊 聞太聖生太公女成勿 命世己代行之 還入太公宅 視兒賜米衣 十一月 加耶君守克殂 慕訶立 以宣失爲太后 時加耶與倭相通 不遵朝廷之令 至是以倭王女爲妻 而不聽宣失之言 遣使責之 夫餘與麗爭地 戰于靑木〈十月 謹須以兵三萬 襲平.. 2018. 1. 16.
나물대성신제기(奈勿大聖神帝紀) 번역 2 7년[계미383] 정월, 수양제(水羊祭)를 행했다. 七年正月行水羊祭 광신(光臣)을 이벌찬(伊伐湌)으로 삼고, 백화(白花)를 품주(稟主)로 하였다. 光臣伊伐湌白花稟主 3월, 부여(夫余)의 유민(流民) 30호(戶)가 다시 투항해 왔다. 부여(夫余)가 왜(倭)와 서로 상통(相通)하여 해마다 그 백성을 받아들여 도성과 시골에 분산시켜 배치하였다. 왜신(倭臣) 웅언(熊彦)은 아름답고 말솜씨가 좋아 아이(阿尒)와 서로 정을 통하고 그 말을 들어주는 일이 많으므로 국인(國人)들이 이반(離反)하여 혹은 우리에게 오고 혹은 고구려로 가기도 했다. 三月夫余流民三十戶又來降夫余與倭相通年年受其民散置都鄙倭臣熊彦美而善辯與阿尒相通多聽其言故國人異反或歸于我亦歸于麗 휴례태후(休禮太后)가 장흔(長昕)의 아들 물흔(勿昕)을 낳았다. 休禮太后.. 2018. 1. 16.
위화진경(魏華眞經) 번역 2 다음해에 호물공(好勿公)이 눌지성제(訥祗聖帝)를 받들어 입경(入京)하였는데 마도(馬徒)에서 관직[士]을 얻었던 자들은 허다하게 주륙(誅戮)을 당했다. 그러나 양도(羊徒)는 안연(晏然)하였는데 모두가 그 선견(先見)에 감복하였다. 성제(聖帝)는 랑(郞)이 사직(社稷)에 음공(陰功)이 있었던까닭에 봉하여 가선(歌仙)으로 삼고 명을 내려 남도(南桃)를 행하도록 하였고, 전대사(典大舍)를 양도(羊徒)에 분속(分屬)시켰다. (이에) 내외가 일시에 그를 영예롭게 여겼으니, 타도(他徒)들이 감히 그에 대항하지 못했다. 命行南桃典大舍分屬羊徒於內外一時榮之他徒不敢抗之 ?? 이에 앞서 포아(布兒)의 우도(牛徒)는 양도(羊徒)와 합치고자 했는데 이에 이르러 포아(布兒)가 득죄(得罪)하여 외방으로 유배되니 그 낭도(徒)들이 모.. 2018. 1. 16.
訖解尼今紀(흘해니금기) (A.D.370 - A.D.377:재위8년) - 한문본 帝元上帝于老太子之子也 母曰助賁王女命元宮主也 命元初爲沾解帝權妻 生白海公主 味鄒帝卽位 下嫁于于老太子 夢見大鹿而生帝 在胎十五月 狀皃俊異 及長明仁有膽畧 味鄒仙帝嘗抱于膝上 而朝諸侯見 其有不整冠者 則指之 而正之 仙帝顧謂阿爾兮天后 曰 “此兒必興吾家也” 生才三歲 而于老太子殉國 仙帝憐之 育以其子 與基臨帝 同長於宮中 光明天后年長于帝五歲 基臨帝少一歲 帝以母行 皆敬事之 光明愛其知禮 寵幸之 外事多委之 與基臨帝爲左右輔臣 及光明后代阿爾兮 承眞骨正統 以摠執政事 帝入帷幄參劃大政 光明以帝年長于基臨 欲先立之 而阿爾兮意在基臨 故難之 帝曰 “臣非龍才 無勞聖心” 光明賢之 乃以基臨爲副君 及阿爾兮崩 光明勸儒禮禪退 而立基臨 基臨知后意在帝 引帝爲副君 而累欲禪退 帝固辭之 光明怒 曰 “朕欲與汝 謁廟久矣 汝何不忠之甚乎” 帝不得已受禪 乃白馬之車日也 命羘尺大.. 2011.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