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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10

대동사강 단씨조선기 檀氏朝鮮紀(단씨조선기) 始祖開天弘聖帝[姓桓氏, 諱儉. 神市天王雄之子.]在位九十三年. 壽二百十七. 시조 개천홍성제[성은 환씨이고 이름은 검이다. 신시천왕 웅의 아들이다]는 재위가 93년이고 217세까지 살았다. 【戊辰】開天弘聖帝元年[唐堯二十五年]이라. 冬十月에 帝ㅣ 登極[按古史云東方初無君長有九種夷分居山野草衣木食夏巢冬穴民性柔而强有神人持天符印三率風伯雨師雲師靈公主命主穀主病形主善惡等三千徒降于太白山〔今白頭山一云妙香山〕自言姓名桓雄父曰桓因卽上帝也敎化民族民皆神之歸者如市故稱神市天王時有一虎一熊祈上帝願化爲人上帝賜靈艾七株蒜二十枚曰汝輩食之不見天日百日則化得爲人身虎不能忍熊忍 七日乃得女身是謂熊女設壇於檀樹下每乞有娠神市天王納而爲后上元甲子十月三日是生帝而神靈及長聖德聞四方國人推戴爲君]하시다. 初에 東方之民이 分居山野하야 草衣木食하며 夏巢冬穴이.. 2015. 2. 24.
단군임검(檀君壬儉) 혹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은 天帝의 뜻 檀君壬儉(단군임검)은 檀君王儉(단군왕검)으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檀자는 壇으로 쓰기도 하죠. 檀君壬儉(단군임검)을 두고 檀君(단군)은 고조선 군왕에 대한 호칭이요, 壬儉(임검)은 초대 檀君(단군)의 이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혹 어떤이는 壬儉(임검)이 변하여 오늘날 "임금"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檀君壬儉의 해석을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박달임금 檀 을 "박달"로 해석하고 君은 "임금"으로 해석하며 壬儉은 음차하여 "임금"으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王儉도 역시 "임금"이 되는데 王은 우리말로 "임금"이요 儉은 王을 '왕'으로 읽지말고 "임금"으로 읽으라는 語末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고조선 임금이 "박달임금"이 될까요? 그럴수 없습니다.. 2013. 6. 12.
단군과 왕검은 사서 띄어읽고 오류에서 비롯된 잘못된 용어 단군과 왕검 모두다 이름이 의심스럽습니다. 첫째로 단군은 제(帝) 또는 한(汗)이어야 하는데 君자를 붙여놔서 이상합니다. 둘 째로 왕검은 사람 이름이라고 하는데 사람이름에 王자를 붙여놓으니 누가 후대에 역사를 왜곡하려고 일부러 고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듭니다. 마치 왕건이 원래 성씨가 王이 아닌데 고려를 세운 후 王씨로 고쳤다는 설과도 통하는 얘기 입니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고 제가 임의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삼국유사 단군관련 기록에 대한 번역을 이렇게 하여야 올바른 해석이 아닌가 하여 올려봅니다.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開國號朝鮮 보통 이것을 해석하기를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세워 나라를 열고 조선이라 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고조선을 세운 사람의 이름은 왕검(혹.. 2012. 11. 30.
기자(箕子)는 불조선 건국자인 기수가한(奇首可汗) 서여(西余)이고 고구려와 거란의 선조이다. 고조선의 역대단군 우선 기자(箕子)가 기수가한(奇首可汗)인 것을 논의하기 전에 고조선의 왕통부터 새로이 정립해야겠습니다. 규 원사화에는 제1대 환검(桓儉)에서 제47대 고열가(高列加)까지는 약 1200년간 지속되었고 환단고기에는 약 2100년간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매우 헷갈립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규원사화의 기록에 따르면 고열가 이후 기자가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 같습니다. 환단고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조선 왕통 2100년간 47명인데 비하여 불조선 왕통은 약 2100년간 74명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불조선 30대 불한 서여부터는 74대 기준까지 약 1000년간은 45명이 되며 1대 치두남에서 29대 소정까지 29명이 약 1000년간 다스리게 되므로 논리.. 2012.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