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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수10

요나라 태조가 낚시를 한 압록강은 어디인가? 요 태조가 901년 본부의 이리근이 된 이후 사방을 정벌하기 시작하여 907년 칭제를 하였는데, 요사를 보면, 칭제한지 9년(915년)되는 겨울 압록강에서 낚시를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압록강이 현재의 한중 경계의 것이라면, 발해의 최고 동쪽에 있게 됩니다. 태조가 발해를 공격기 위해 거병한 것은 925년(천찬 4년 겨울 12월 을해일)이며, 926년(천현 원년) 봄 정월에 부여성과 홀한성을 깨뜨리고 발해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7월에 다시 부여부로 갔다가 그 곳 행궁에서 55세를 일기로 죽었습니다. 915년에는 주위 제부를 정복하기에 바쁜 때 입니다. 다음은 요사 본기 태조 상의 기록입니다. 冬十月戊申,鉤魚於鴨淥江。新羅遣使貢方物,高麗遣使進寶劍,吳越王錢鏐遣滕彥休來貢。是歲,君基太一神數見,詔圖其.. 2012. 9. 5.
혼동강은 남쪽으로 흘르던 압록강의 지류였다!!!! 혼동강을 강단에서 현재의 송화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대의 기록을 보면 혼동강은 남으로 흘렀던 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죠. 흠정중정대금국지(欽定重訂大金國志) 卷四十,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 離瑪齊喇行六十里即古烏舍寨寨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入海 마제라(瑪齊喇)를 떠나 60리를 가니 옛 오사채(烏舍寨)에 도착하였다. 오사채에서 잠을 잤다. 혼동강(混同江)의 물가에 도착했다. 그 강의 발원은 광막(廣漠, 대황大荒?)의 북쪽인데 너무 멀어 그 근원을 알수가 없다. 이곳으로부터 혼동강(混同江)은 남으로 500리를 흘러 고구려 압록강에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너무 다른 기록입니다. 혼동강은 남으로 흐르고 압록강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이런 기록을 두고.. 2011. 12. 24.
요국(遼國) 태조가 낚시한 압록강의 위치 요 태조가 901년 본부의 이리근이 된 이후 사방을 정벌하기 시작하여 907년 칭제를 하였는데, 요사를 보면, 칭제한지 9년(915년)되는 겨울 압록강에서 낚시를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압록강이 현재의 한중 경계의 것이라면, 발해의 최고 동쪽에 있게 됩니다. 태조가 발해를 공격기 위해 거병한 것은 925년(천찬 4년 겨울 12월 을해일)이며, 926년(천현 원년) 봄 정월에 부여성과 홀한성을 깨뜨리고 발해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7월에 다시 부여부로 갔다가 그 곳 행궁에서 55세를 일기로 죽었습니다. 915년에는 주위 제부를 정복하기에 바쁜 때 입니다. 다음은 요사 본기 태조 상의 기록입니다. 冬十月戊申,鉤魚於鴨淥江。新羅遣使貢方物,高麗遣使進寶劍,吳越王錢鏐遣滕彥休來貢。是歲,君基太一神數見,詔圖其.. 2009. 12. 26.
압록수의 의미가 곧 국경(yalu)이라는 말인가? 요즘 대부분 "압록"이 곧 만주어 "yalu"이고 국경을 뜻한다고 하면서 압록수가 곧 국경에 존재했던 강이라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사서를 조금만 보면 틀린 "압록"이란 만주어 "yalu"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 이때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여자 하나를 만나서 물으니 그 여자는 말하기를 나는 하백의 딸로 이름이 유화입니다. 여러 동생들과 물 밖으로 나와서 노는데 남자 하나가 오더니 자기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나를 웅신산 밑 압록강 가의 집 속에 유인하면서 남몰래 정을 통하고 가더니 오지 않았습니다" 유화라는 사람이 대체 무슨 일로 국경에서 동생들과 놀겠는가? 이는 압록강이 국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압록강의 뜻을 알수 있는 좋은 기록이 있다. 止浥婁異種, 原稱羊鄂.. 2009.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