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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혼동강은 남쪽으로 흘르던 압록강의 지류였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24.

혼동강을 강단에서 현재의 송화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대의 기록을 보면 혼동강은 남으로 흘렀던 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죠.

 

흠정중정대금국지(欽定重訂大金國志) 卷四十,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
離瑪齊喇行六十里即古烏舍寨寨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入海
마제라(瑪齊喇)를 떠나 60리를 가니 옛 오사채(烏舍寨)에 도착하였다. 오사채에서 잠을 잤다. 혼동강(混同江)의 물가에 도착했다. 그 강의 발원은 광막(廣漠, 대황大荒?)의 북쪽인데 너무 멀어 그 근원을 알수가 없다. 이곳으로부터 혼동강(混同江)은 남으로 500리를 흘러 고구려 압록강에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너무 다른 기록입니다.

혼동강은 남으로 흐르고 압록강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이런 기록을 두고 만주원류고에서는 허봉사행정록이 지도만 보고 기록하였기에 혼동강이 남으로 흐른다고 하였으며 허봉사행정록의 기록을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만주원류고 권15
許亢宗奉使行程録古烏舎塞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注海(案此條舛誤尤甚混同江出長白北流會黒龍江東入海乃云來自廣漠之北南會鴨緑盖據圖臆揣之誤也)
위 案만 해석하면... "이 기록은 착오가 너무 심하다. 혼동강은 장백산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 흑룡강에서 만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들간다.  광막의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흘러 압록에서 만난다고 한 것은 아마도 지도를 보고 한 억측으로서 잘못되었다."

 

그러나 책 이름에서도 알려주듯이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은 송나라에서 금나라까지 사신으로 다녀온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인데 어찌 지도를 보고 기록하였겠습니까?

허 봉사행정록의 기록은 혼동강이 현재의 송화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만주원류고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주원류고 저자는 혼동강이 현재의 송화강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기록을 보았기에 허봉사행정록의 기록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죠.

 

주자어류를 보면 또 혼동강이 남쪽으로 흐릅니다.

朱子語類卷七十九

酈道元水經亦細碎因言天下惟三水最大江河與混同江混同江不知其所出金舊巢正臨此江斜迤東南流入海其下為遼海遼東遼西指此水而分也又

역도원 수경주에서 부수적으로 말하기를 "천하에 3개의 가장 큰 강이 있는데, 하나는 양자강이고 둘째는 황하이고 세째는 혼동강이다. 혼동강의 발원지는 알수는 없으나 금나라의 옛 도읍에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혼동강은 비스듬히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혼동강의 하류는 요해가 되며 요동과 요서가 이곳에서 물줄기로 나뉜다.

 

삼조북맹회편의 여진족에 대한 기록에서도 혼동강과 압록강을 현재의 송화강과 압록강으로 본다면 위치가 이상하게 되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三朝北盟會編卷三
女真古肅慎國也本名朱理真訛為女真或以為黑水靺鞨之後而渤海之别族三韓之辰韓方世居混同江之東長白山鴨緑水之源
여진은 옛 숙신국이다. 본래 주리진이라 불렸는데 와전되서 여진 혹은 흑수말갈의 후예라 불렸다. 발해의 별족과 삼한 중 진한의 방족(方族)이다. 세세토록 혼동강의 동쪽, 장백산 압록강의 발원지에 살았다.

 

송화강이 너무 길어 송화강의 어느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 기록이 맞고 틀리게 되지만, 송화강을 지칭하는 혼동강은 대부분 송화강의 상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송화강의 동쪽은 장백산도 아니고 송화강의 동쪽은 압록강의 발원지도 아닙니다.

따라서 위 혼동강과 장백산과 압록강은 현재의 지명이 아니라는 것이죠.

 

희미하게나마 이러한 기록들이 보여주는 것을 정리해봅시다.

 

1) 혼동강은 남쪽으로 흘렀던 강이다.

2) 혼동강 하류에 압록강이 있었다.

3) 여진과 말갈은 현재 만주가 아니라 내몽골 동북쪽에 있었다.

3) 백두산이나 태백산도 역시 내몽골 동쪽 어딘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