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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12

고대 국가명 짓는 원리 우리민족의 옛말 중에 나라(國)를 뜻하던 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옛 나라이름에는 “나라”를 뜻하는 옛말들을 덧붙여서 사용하였다. 첫째는 “골”이다. 이 를 사용하여 나라이름을 지은 국가들은 대개 강가에 도읍을 건설하고 강을 “개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면 “개울”이 어떻게 “골”이 되는가? 두 산 사이에 움푹 패어 들어간 곳을 “골짜기” 혹은 “골”이라 하는데, 이런 곳에 물이 흐르게 되면 “개울”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밭의 두둑과 두둑 사이에 움푹 패인 곳을 “고랑”이라 하며, 온돌방에 불길이 지나가도록 방구들 밑에 움푹 패인 곳을 “고래”라고 한다. 이 모두가 어원이 같은 말이며, 개울녘에 마을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면 그곳을 “골” 또는 “고을”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현재 고을이란 말.. 2014. 9. 2.
馬韓東北有百濟, 百濟東有樂浪, 百濟北有靺鞨 설에 마한은 전라도요, 백제는 경기와 충청도요, 말갈은 송화강 유역이요, 낙랑은 요하 혹은 대동강 유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 설명하는 마한 백제 말갈 낙랑 등의 위치 관계는 통설의 위치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1. 통설과 맞지 않는 《삼국사기》 기록 • 백제와 마한의 위치관계 마한이 전라도이고 백제가 경기도이면 백제는 마한의 북쪽이던지 서북쪽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은 전혀 다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4년 王作熊川柵馬韓王遣使責讓曰王初渡河無所容足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온조임금이 웅천책을 세웠다. 마한임금이 사신을 보내 책망하였다.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분명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에 위치한 나라.. 2013. 7. 2.
백제란 백가제해의 뜻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명사(名詞)은 우리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한자의 뜻만 이용하여 지나식을 풀다보면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바로 백제(百濟)가 그렇습니다. 고대에 우리나라의 국명을 지을때 우리나라대로 그 방식이 고유하게 존재하였는데 그 짓는 방법에 따라 고대국가를 분류하다보면 백제의 비밀이 풀립니다. 불 조선상고사에 보면 "불"에 대한 좋은 해석이 있습니다. "농업은 대개 불의 힘을 이용하여 초목을 태워서 들을 개척한 뒤에 발생하였으므로 옛 말에 야지(野地)를 ‘불’이라 하였다....중략...우리 조선에는 더욱 불을 사랑하여 사람의 이름을 ‘불’이라 지은 것이 많으니, 부루ㆍ품리(稟離) 등이 다 불의 음역이요, 불이라 지은 지명?적지 아니하여, 부여(夫餘)ㆍ부리(夫里)ㆍ불내(不耐)ㆍ불이(不而)ㆍ국내(國內)ㆍ불.. 2012. 10. 2.
백제 초기 영토는 대릉하 부근 백제는 초기에 마한의 영토를 분양받았습니다.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보입니다.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 安之,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신채호선생의 동서양자 상환의 주장에 따라 동북은 아마 서북일 것입니다. 백제는 초기에 마한 땅 서북쪽 100리의 땅에서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요서지역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를 증거할 만한 지역이 삼국사기에 보입니다. 삼국사기 온조왕조를 읽어보면 十一年, 夏四月, 使襲破柵, 殺掠一百餘人. 秋七月, 設․兩柵, 以塞之路. 11년 여름 4월, 낙랑이 말갈로 하여금 병산의 목책을 습격해서 파괴한 다음 1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 잡았다. 가을 7월, 독산과 구천 두 곳에 목책.. 2012.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