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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14

혼동강(混同江)은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었다!!! 혼동강이 남으로 흘러갔다는 기록이 존재하여 소개합니다. 흠정중정대금국지(欽定重訂大金國志) 卷四十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 離瑪齊喇行六十里即古烏舍寨寨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入海 마 제라(瑪齊喇)를 떠나 60리를 가니 옛 오사채(烏舍寨) 혼동강(混同江)의 물가에 도착했다. 그 강의 발원은 광막(廣漠, 대황大荒?)의 북쪽인데 너무 멀어 그 근원을 알수가 없다. 혼동강(混同江)은 남으로 500리를 흘러 고구려 압록강에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이를 두고 만주원류고에서는 허봉사행정록이 지도만 보고 기록하였기에 혼동강이 남으로 흐른다고 하였으며 허봉사행정록의 기록을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만주원류고 권15 許亢宗奉使行程録古烏舎塞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注海.. 2013. 7. 2.
요나라 태조가 낚시를 한 압록강은 어디인가? 요 태조가 901년 본부의 이리근이 된 이후 사방을 정벌하기 시작하여 907년 칭제를 하였는데, 요사를 보면, 칭제한지 9년(915년)되는 겨울 압록강에서 낚시를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압록강이 현재의 한중 경계의 것이라면, 발해의 최고 동쪽에 있게 됩니다. 태조가 발해를 공격기 위해 거병한 것은 925년(천찬 4년 겨울 12월 을해일)이며, 926년(천현 원년) 봄 정월에 부여성과 홀한성을 깨뜨리고 발해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7월에 다시 부여부로 갔다가 그 곳 행궁에서 55세를 일기로 죽었습니다. 915년에는 주위 제부를 정복하기에 바쁜 때 입니다. 다음은 요사 본기 태조 상의 기록입니다. 冬十月戊申,鉤魚於鴨淥江。新羅遣使貢方物,高麗遣使進寶劍,吳越王錢鏐遣滕彥休來貢。是歲,君基太一神數見,詔圖其.. 2012. 9. 5.
혼동강은 남쪽으로 흘르던 압록강의 지류였다!!!! 혼동강을 강단에서 현재의 송화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대의 기록을 보면 혼동강은 남으로 흘렀던 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죠. 흠정중정대금국지(欽定重訂大金國志) 卷四十,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 離瑪齊喇行六十里即古烏舍寨寨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入海 마제라(瑪齊喇)를 떠나 60리를 가니 옛 오사채(烏舍寨)에 도착하였다. 오사채에서 잠을 잤다. 혼동강(混同江)의 물가에 도착했다. 그 강의 발원은 광막(廣漠, 대황大荒?)의 북쪽인데 너무 멀어 그 근원을 알수가 없다. 이곳으로부터 혼동강(混同江)은 남으로 500리를 흘러 고구려 압록강에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너무 다른 기록입니다. 혼동강은 남으로 흐르고 압록강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이런 기록을 두고.. 2011. 12. 24.
요국(遼國) 태조가 낚시한 압록강의 위치 요 태조가 901년 본부의 이리근이 된 이후 사방을 정벌하기 시작하여 907년 칭제를 하였는데, 요사를 보면, 칭제한지 9년(915년)되는 겨울 압록강에서 낚시를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압록강이 현재의 한중 경계의 것이라면, 발해의 최고 동쪽에 있게 됩니다. 태조가 발해를 공격기 위해 거병한 것은 925년(천찬 4년 겨울 12월 을해일)이며, 926년(천현 원년) 봄 정월에 부여성과 홀한성을 깨뜨리고 발해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7월에 다시 부여부로 갔다가 그 곳 행궁에서 55세를 일기로 죽었습니다. 915년에는 주위 제부를 정복하기에 바쁜 때 입니다. 다음은 요사 본기 태조 상의 기록입니다. 冬十月戊申,鉤魚於鴨淥江。新羅遣使貢方物,高麗遣使進寶劍,吳越王錢鏐遣滕彥休來貢。是歲,君基太一神數見,詔圖其.. 2009.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