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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11

馬韓東北有百濟, 百濟東有樂浪, 百濟北有靺鞨 설에 마한은 전라도요, 백제는 경기와 충청도요, 말갈은 송화강 유역이요, 낙랑은 요하 혹은 대동강 유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 설명하는 마한 백제 말갈 낙랑 등의 위치 관계는 통설의 위치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1. 통설과 맞지 않는 《삼국사기》 기록 • 백제와 마한의 위치관계 마한이 전라도이고 백제가 경기도이면 백제는 마한의 북쪽이던지 서북쪽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은 전혀 다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4년 王作熊川柵馬韓王遣使責讓曰王初渡河無所容足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온조임금이 웅천책을 세웠다. 마한임금이 사신을 보내 책망하였다.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분명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에 위치한 나라.. 2013. 7. 2.
호족(虎族), 예(濊), 말갈(靺鞨), 예맥(濊貊), 동예(東濊), 흉노(匈奴)는 모두 같은 종족 우리 고대사에 파악하기 힘든 종족이 있는데 호족(虎族), 예(濊), 말갈(靺鞨), 예맥(濊貊), 동예(東濊) 등입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종족인데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리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동부여(東夫余)는 이들 종족과 한때 운명을 같이 하기도 하였으나 약간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씩 보면.... 이들 종족의 기원은 멀리 단군사화부터 시작합니다. 호족(虎族)과 예(濊)의 관계 이들은 단군조선때에 갈범(虎)이라고 불리던 종족이었습니다. 《삼국유사》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이에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삼칠일 동안 조심했더니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범은 조심을 잘못해서 사람의 몸으로 변하지 못했다. 《환단고기》 虎終不能悛放之四海 갈범(虎).. 2013. 6. 12.
신당서 흑수말갈 열전 번역문 연간(A.D. 742~755;신라 경덕왕1~14)에 여덟 번 와서 고래 눈알(鯨睛), 담비(貂鼠), 흰토끼가죽(白兎皮)를 바쳤다. 철리(鐵利)는 개원(開元) 연간(A.D. 713~741;신라 聖德王 12~孝成王 5)에 여섯 번 왔다. 월희는 (개원 연간에) 일곱 번 오고, 정원(貞元) 연간 (A.D. 785~804;신라 원성왕 1~애장왕 5)에 한번 왔다. 우루(虞婁)는 정관(貞觀) 연간(A.D. 672~649;고구려 營留王 10~寶藏王 8)에 두 번오고, 정원(貞元) 연간 (A.D. 785~804;신라 元聖王 1~哀莊王 5)에 한번 왔다. 뒤에 발해가 강성해지자, 말갈은 모두 그들에게 복속되어 다시는 왕과 만나지 못하였다. 흑수말갈(黑水靺鞨)은 숙신(肅愼) 땅에 있는데, 읍루((挹婁)라고도 하며, 후위.. 2010. 3. 14.
구당서 말갈 열전 번역문 유주도독(幽州都督)을 추증하고 건릉(乾陵)에 배장하였다. 그 뒤로부터 때로는 추장이 직접 오고 때로는 사신을 보내와서 조공을 바쳤는데 해마다 끊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 백산부(白山部)는 본래 고구려에 부용(附庸)되었는데, 평양성이 함락된 뒤에 많은 무리들이 중국으로 들어 왔다. 골돌(汨咄), 안거골(安居骨), 호실(號室) 등의 부족도 고구려가 함락된 뒤로는 뿔뿔이 흩어지고 미약해져 그 후의 활동은 알 수 없으며 더러는 고구려의 유민과 함께 발해에 편입되었다. 오직 흑수부(黑水部)만이 강성하여 지역을 16부로 나누고, 또 남부와 북부로 구분하여 일컬었다. 개원(開元) 13년(A.D. 725 ;新羅 聖德王 24)에 안동도호(安東都護) 벽태(薜泰)가 흑수말갈안에 흑수군을 두자고 청하였다. 이를 변경하여 가장 .. 2009.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