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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11

말갈의 실체는 무엇인가? ▣ 말갈은 고조선의 토착민 서천왕 11년(280)겨울 숙신(肅愼)이 침입하여 변방 백성을 죽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왕이 되었으나 나의 덕은 백성에 이르지 못하고 위엄은 먼 곳에 떨치지 못하여 인근의 적이 우리 강토를 침범하였다 지략과 용맹을 갖춘 장수를 얻어 적을 물리치려 하니 그대들은 마땅한 인재를 천거하라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왕의 아우 달가는 용맹과 지략이 있어 대장이 될만 합니다 왕은 달가를 보내 숙신을 치게 하였다 달가가 적을 기습하여 단로성(檀盧城)을 빼앗고 추장을 죽이고 주민 6백 여 호를 부여 남쪽 오천(烏川)으로 옮기고 육,칠 부락을 항복시켜 부용으로 삼았다 왕이 기뻐하여 달가를 안국군 으로 삼고 서울과 지방의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으며 양맥 숙신의 여러 부락을 통솔하게 .. 2009. 12. 18.
수서 말갈전 번역 그러나 그 나라는 수(隋)와 아주 멀리 떨어져있고, 속말부와 백산부만이 가까웠다. 수 양제 초에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자주 그들을 물리치니, 그의 우두머리인 도지계(度地稽)가 그 부락의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 왔다. 양제는 그에게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를 제수하고, 유성(柳城, 지금의 요령성 조양일대를 지칭함)에 거주시켜 변방 사람과 내왕을 하게 하였다. 중국의 풍속을 좋아하여 관대(冠帶)를 청하니, 양제는 이를 가상히 여겨 비단(錦綺)를 내려주고 총애하였다. 요동정벌(遼東征伐)때에도 도지계가 그 무리들을 이끌고 종군하였는데, 전공을 세울 때마다 상을 매우 후하게 내렸다. 대업(大業)13년(A.D. 617 ; 고구려 영양왕28)에 양제를 따라 강도(江都)에 갔다. 얼마후 유성으로 돌아갔는데, 중도에서 이밀.. 2009. 12. 18.
단군신화의 호랑이가 뜻하는 바는? 삼국유사 단군사화에 환웅, 웅(熊), 호(虎) 이렇게 셋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호(虎)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熊을 훈독하여 "곰"으로 읽어야 한다면 虎 역시 훈독하여 "범"으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범"과 관련된 역사상 아무런 민족이나 국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호(虎)를 지나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윤내현 교수는 호(虎) 역시도 우리민족으로 보아야 하면 고조선건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기때문에 사람으로 환생하지 못하였다고 표현한 것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虎의 옛 말을 찾아보면 그 단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계림유사를 찾아보면 《説郛卷五十五》雞林類事 虎曰監(蒲南切) 虎를 監(감)이라 한다. 팜(蒲南切)으로 발음한다. 어디까지가 우리나라 사람의 기록이고 어디까지가 지.. 2009. 11. 29.
숙신 말갈 읍루 라는 잘못된 지나사관으로 인하여 완전히 틀려버린 발해(渤海) 강역 발해, 즉 진단(震旦)의 강역은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舊唐書卷一百九十九下 聖厯中自立為振國王…중략…睿宗先天二年遣郎將崔訢往冊拜祚榮為左驍衛貟外大將軍渤海郡王 성력 년간에 (대조영은) 자립하여 진국(振國)의 왕이 되었다. 예종 선천 2년에 낭장 최흔을 보내어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하였다. 위 기록의 해석에 논란이 많지만 저는 이렇게 봅니다. 이것은 대조영이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 이름을 진단(震旦,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름)이라 하였는데, 이 것을 당국(唐國)에서 대조영의 진단(震旦)을 더 이상 공격할 힘이 없자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지나인의 특유의 병적심리인 자존감으로 인하여진단(震旦)을 자신들의 봉국(封國)인냥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 2009.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