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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수서 말갈전 번역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8.
그러나 그 나라는 수(隋)와 아주 멀리 떨어져있고, 속말부와 백산부만이 가까웠다. 수 양제 초에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자주 그들을 물리치니, 그의 우두머리인 도지계(度地稽)가 그 부락의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 왔다. 양제는 그에게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를 제수하고, 유성(柳城, 지금의 요령성 조양일대를 지칭함)에 거주시켜 변방 사람과 내왕을 하게 하였다. 중국의 풍속을 좋아하여 관대(冠帶)를 청하니, 양제는 이를 가상히 여겨 비단(錦綺)를 내려주고 총애하였다. 요동정벌(遼東征伐)때에도 도지계가 그 무리들을 이끌고 종군하였는데, 전공을 세울 때마다 상을 매우 후하게 내렸다. 대업(大業)13년(A.D. 617 ; 고구려 영양왕28)에 양제를 따라 강도(江都)에 갔다. 얼마후 유성으로 돌아갔는데, 중도에서 이밀(李密)의 난을 만나 밀이 군사를 보내어 격퇴하므로, 앞뒤 십여 차례의 싸움을 치르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高陽(현재 산동성 임치현)에 이르러서 다시 왕수발(王須拔)에게 함락 당하였다. 얼마 안 되어 나예(羅藝; 幽州總管을 역임)에게 도망하였다. 

말갈(靺鞨)은 고구려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읍락마다 각각 추장(酋長)이 존재하여 통일되지 못한 채 7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속발부(粟末部)는 고구려와 인접하고 있으며 정예 병사가 수 천명으로 용감 무쌍한 병사가 많아 항상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둘째, 백돌부(伯咄部)는 속말부의 북쪽에 있으며, 정예 병사의 수가 7천 명이다. 셋째, 안거골부(安車骨部)는 백돌부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네째, 불날부(拂涅部)는 백돌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다섯째, 호실부(號室部)는 불열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여섯째, 흑수부(黑水部)는 안거골부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일곱째, 백산부(白山部)는 속말부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정예 병사가 모두 3천 명에 불과한데, 흑수부가 가장 굳세고 건장하였다. 불열부 동쪽 지방의 화살은 모두 돌촉(石鏃)인데, 바로 옛날 숙신씨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주거지는 대체로 산수(山水)에 의지하며, 우두머리를 대막불만돌(大莫弗瞞咄)이라 하는데, 동이 가운데에서는 강국(强國)이다. 종태산(從太山, 지금의 백두산을 지칭함)이라는 산이 있어 풍속을 매우 숭상하고 두려워한다. 산 위에는 곰(熊, 羆), 표범(豹), 이리(狼) 등이 있으나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도 이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지대가 낮고 습하기 때문에 흙을 둑과 같이 쌓고 구덩이를 파서 거처하는데, 출입구를 위로 향하게 내어 사다리를 놓고 드나든다. 두사람이 짝을 지어 밭을 간다. 곡식으로는 조, 보리, 검은 기장이 많이 난다. 물 맛은 소금기가 배어있으며, 나무 껍질 위에도 소금이 묻어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가 많고 양은 없다. 쌀을 씹어 술을 만드는데, 마시기만 하면 취한다. 부인은 베옷을 입고, 남자는 돼지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오줌으로 세수를 하는데, 모든 오랑캐 가운데서도 가장 불결하다. 풍속이 음탕하고 투기가 많다. 남의 아내가 외간남자와 간통한 것을 어떤 사람이 그 남편에게 알려주면, 남편은 즉시 아내를 죽이는데, 죽이고는 후회하여 반드시 알려준 자를 죽이곤 한다. 이로 말미암아 간음에 대한 일은 끝내 폭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데, 각궁(角弓)은 길이가 3척이고 그 화살은 1척 2촌이다. 

해마다 7~8월에 독약을 만들어 화살에 발라 새나 짐승을 쏘는데, 맞는대로 그 자리에서 죽는다. 개황(開皇, A.D.581~600; 고구려 평원왕 23~영양왕11)초에 여러 부족들이 서로 어울려서 사자(使者)를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고조(高祖)가 그 사자(使者)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짐은 그 곳의 사람들이 대체로 용감하고 민첩하다고 들었는데, 이제 만나보니 실로 짐의 마음에 든다. 짐은 너희들을 아들과 같이 여기고 있으니, 너희들도 짐을 아버지처럼 공경하라.” 이에 사자가 대답하길, “신들은 한 구석에 외지게 살고 있어서 길은 아득히 멀지만, 중국에 성인이 계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와서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위로를 받고 친히 성인의 얼굴(聖顔)을 뵈오니 下情의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길이 노복(奴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그들의 나라는 서북쪽으로 거란과 서로 닿아 있는 까닭에 항상 서로 침략하였다. 그 후에 그 사신이 왔을 적에, 고조는 “내가 거란을 생각해 주는 것은 너희들과 다를 것이 없다. 마땅히 각자의 국경을 지키고 있다면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 무엇 때문에 수시로 서로 공격을 하여 나의 뜻을 이다지도 저버리는가.”라고 타이르니, 사자가 사죄를 하였다. 고조가 따뜻하게 위로하여 주고 어전에서 연회를 베풀어 술을 마시게 하였더니, 사자가 그의 무리들과 함께 일어나 춤을 추는데, 몸놀림이 대체로 전투하는 자세였다. 고조는 주위 신하들을 돌아보며, “천지(天地) 사이에 이런 물건들이 있어, 항상 전쟁할 뜻을 가지고 있음이 어찌 이리 심한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