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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유고26

阿達羅紀(아달라기) (A.D.213 - A.D.243:재위31년) - 해석Ⅰ 初支所禮王妃毛利神母 寡居以其財宝歸先今 未幾其女只珍內禮 亦受先今寵 一日夢見大盧神君騎黃赤虎來 授寶月珠 只珍內禮 受而呑之 因言于先今 今吉之乃合 而生帝 穎異有精彩 乃承嫡統 只珍內禮始以二骨爲聖母 登天宮位 先今崩 自以爲恩重 而殉之 遺命分骨 于私夫昔鄒陵 上至孝 依其命分骨 因尊昔鄒爲葛文王 以胞弟伐休爲其太子 上自幼友愛 凡有所好 必傾與之 伐休亦至誠事帝 未嘗離側不 以己心爲心 唯從上好 上太子時 恐違先今 密近于汗介 及先今不預 以八生相約 密以璽宝居之 伐休諫之 曰 “父今尙嚴 兄何自急” 汗介密囑于上 曰 “小兒窺爾位無爲” 洪介所欺 上曰 “吾弟無他意 汝何妬之” 乃命伐休入井居之 媚事汗介 及登大位 以休妻黃氏紫凰皆爵權妻 入井居之 時稱二君 처음 지소례(支所禮)왕비 모리(毛利)신모가 과부로 지낼 때 재화와 보물을 선금(先今, 일성)에게 맡겼다... 2009. 11. 19.
남당 박창화 백제왕기 중 구지왕기가 가짜인 이유 요즘 남당 박창화가 남긴 사료들이 문제가 되는데요... 그 중 백제왕기가 있습니다. 삼국사기와는 좀 다른 면이 있습니다. 가장 이상한 것은 구지왕기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없는 왕이죠. 구지왕기의 기록을 보니 삼국지 부여전에 나오는 위구태더군요. 우선.... 구지왕기에 분명히 공손씨로부터 딸을 받아 결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지왕편 三年 庚午 三月 公孫度王以女宝婁歸王曰 “聞王未有室家 故敢以賤息往 奉巾櫛 幸勿棄焉” 王乃以白馬三雙爲幣以娶焉. 十月 王助遼富山之軍 大獲捷利. 3년(AD190) 경오 3월 공손탁왕이 딸 宝婁(보루)를 구지왕에게 시집보내며 말하기를 “왕이 室家(실가)가 없다고 들었는데 고로 감히 천한 자식을 보내니 아내로 삼고 행여나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내 백마 3쌍을 .. 2009. 11. 18.
高句麗史略卷之一/始祖<芻牟大帝>紀 - 초벌번역(**재수정**) 아래는 표지엔 "고구리사초"라고 되어 있는데, 안쪽의 첫 면에는 "고구리사략권지일"이라 되어 있는, "남당 박창화 선생"께서 "고구리"관련 역사를 정리(?)하시어 필사하여 놓으신 내용을 초벌 번역한 것입니다. 저 나름대로 끊어읽기를 하였읍니다만, 잘 못된 곳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PDF 자료의 선명도 문제와 약자(?)인 듯한 글자를 제가 충분히 해독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금후에는 글자가 희미한 것은 제 아들녀석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미 읽어보셨거나 관심 있으신 선생님들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문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천학인 제가 감히 도전한 일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15세 미천대제기"까지 일별한 개인적 소견으로는 ; 아직 생소한 내용들.. 2009. 11. 18.
남당유고 금천대제법흥진왕기 金天大帝法興眞王紀 번역 영제천후가 꿈에 큰 백마를 보고서 낳았다. 임금은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관대하고 후덕하여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고 천문,지리,음양오행,진서,원경,활쏘기,말타기와 같은 여러 기술이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또한 나라를 경영하는데 큰 법도가 있었으니 어진이를 임명하고 재주있는자를 선발하였다. 마침내 (나라를) 중흥시키고 대업을 이루는 위엄에 이르렀다. 임금은 신장이 칠척이고 훌륭하고 준수한 얼굴에 신룡(신령한 용(제왕)의 형상)이 있어 소명천후가 지극히 그를 사랑하여 말하기를 내 아우는 마땅히 우리나라를 일으킬 것이다. 분종태자에게 명하여 함께 천하를 다스리게 하였고 지증왕에 이르러 분종에게 선위를 받았으며 임금에게서 (왕의자리를) 이어받는 것을 사양하였다. 4년 겨울 나라를 다스림에 이종이 뛰어나서 으뜸으.. 200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