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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유고26

추모경(雛牟鏡). 상. 모수제기(慕漱帝記) 남당유고,남당박창화 북부여(北夫余) 불이성(不而城)의 단림산(檀林山)아래에 푸른소나무(蒼松)가 우거지고 빽빽(茂密)한데 우뚝 단궐(丹闕)이 용출(聳出)하였으니 이것이 곧 천제(天帝)의 궁전(殿)이라. 제(帝)께서는 황포경대(黃袍瓊帶)에 머리에는 녹책금관(綠幘錦冠)을 쓰고 담비가죽을 씌운 사자의 보탑(獤皮獅榻)에 앉으셨다. 옥마신경(玉馬神經)을 낭독(朗讀)하고 우의(羽衣)를 편천(扁遷)하시니 조의(皁衣)의 무리(徒)가 환호작약(雀躍)하도다. 백성(民)들은 개와 닭의 움찔거림도 없이 태평(太平)을 구가(謳歌)해 온지가 거의 천년(千霜)이었다. 전욱(顓頊)이 남하하니 그 도(道)는 신농(神農)과 황제(黃帝)요, 그 땅(地)은 북진(北辰)과 남명(南溟)이었다. 언황(偃皇)이 북쪽으로 옮겨(北遷)가니 그 법(法).. 2009. 11. 24.
助賁紀(조분기) (A.D.292 - A.D.309:재위18년) - 해석 初玉帽太后夢見白鵲入懷 而生帝 娠産而皆以月明 及長身長而美儀采 臨事明斷 先今委以大政 至是卽位 尊母玉帽爲太后 祖仇道爲太公 처음에 옥모(玉帽)태후의 꿈에 하얀 까치가 날아와 품는 꿈을 꾸고 왕을 낳았다. 임신할 때와 태어날 때 모두 달이 밝았는데 장성함에 이르자 키가 크고, 아름다운 법도를 채택하였으며, (나라의) 일에 임하여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 선금(先今, 내해)이 대정(大政, 정사)을 맡겼는데 이 때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어머니 옥모를 높이어 태후로 하고, (외)조부 구도(仇道)를 태공(太公)으로 하였다. 七月 連忠伊伐飡 白仙稟主 7월 연충(連忠)을 이벌찬, 백선(白仙)을 품주로 하였다. 謁祖廟 (왕이) 조상의 무덤을 찾아뵈었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원년 기사 원년 연충을 이찬에 임명하여 군무와.. 2009. 11. 19.
奈解紀(내해기) (A.D.257 - A.D.291:재위35년) - 해석 帝卽位之日大雨 是年自正月至四月 不雨 故民皆歡慶 왕의 즉위(卽位)일에 큰 비가 내렸다. 이해에 정월부터 4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백성들이 경사를 기뻐하였다. ≪비교≫ 신라본기 내해이사금 머리기사 발췌 (중략) 是年自正月至四月 不雨 及王卽位之日 大雨 百姓歡慶 이 해에 정월부터 4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다가, 왕이 즉위하던 날 큰 비가 내렸으므로 백성들이 즐거워하며 경축하였다. 元年 正月 受朝 月宮 원년(A.D.257) 정월 월궁(月宮)에서 조회를 받았다. 奈音伊伐飡 내음(奈音, 아달라와 자황의 아들)을 이벌찬으로 하였다. 二年 正月 謁始祖廟 2년(A.D.258) 정월 시조묘(始祖廟)를 참배하였다. ≪비교≫ 신라본기 내해이사금 2년 기사 2년 정월 왕이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岳門伊伐飡 發仁稟主.. 2009. 11. 19.
阿達羅紀(아달라기) (A.D.213 - A.D.243:재위31년) - 해석Ⅱ 十六年 正月 召文妙德王殂 紅鳳碧海黃雲暖玉宝雲牧丹妙雲好蛙 八世主爭立 國中大亂 女主楚雲請救 乃命山乙率仙徒二千人 與盤述 入召文 靖其亂立 楚雲子妙楚爲王 以山乙爲召文監國 山乙善占風雲 知人邪正 皓鬚過膝 召文人奉之 爲廟王 世稱乙公者是也 16년(A.D.228) 정월 소문(召文) 묘덕(妙德)왕이 죽었다. 홍봉(紅鳳), 벽해(碧海), 황운(黃雲), 난옥(暖玉), 보운(宝雲), 목단(牧丹), 초운(妙雲), 호와(好蛙) 8세주(世主)가 왕위를 다투었다. 나라 안에 대란이 있었다. 여주(女主) 초운(楚雲)이 구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산을(山乙)에게 명하여 선도(仙徒) 2000명을 거느리도록 반술(盤述)과 함께 소문으로 들어갔다. 난립(亂立)한 것을 진정시켰다. 초운의 아들 묘초(妙楚)를 왕으로 하고, 산을을 소문감국(監國,.. 2009.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