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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21

고구려에도 도읍이 3개가 있었다. 上都, 中都, 下都. 고구려는 도읍을 여러번 옮겨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도읍들은 각각 상도上都와 중도中都와 하도下都라고 불리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상 중 하"란 도읍의 급수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서 오늘날 상급 도읍을 서울이고, 중급 도읍은 부산이고, 하급 도읍은 인천이나 대구정도 되겠죠. 고대에도 이런 분류법에 의하여 상도와 중도와 하도를 만들었고, 때에따라 상도에 서울을 세우기도 하고 중도에 서울을 세우기도 하고 하도에 서울을 세우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그 상도와 중도와 하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한편, 우리나라 사서가 너무 부족한 까닭에 가끔 남북과 위아래에 대한 관념이 중국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연 고대에 앞쪽을 남쪽이라고 했을까요? 제가보기에는 앞쪽은 북쪽입니다. 우리나라도 .. 2009. 11. 27.
발해고 - 지리에 관한 고찰(地理考) 1. 『신당서』에 기록된 발해 지리 5경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 중경(中京) 현덕부(顯德府) 동경(東京) 용원부(龍原府) 남경(南京) 남해부(南海府) 서경(西京) 압록부(鴨綠府) 15부 용천부(龍泉府) 숙신족이 살던 곳이다. 현덕부(顯德府) 숙신족이 살던 곳으로, 용천부 남쪽에 있다. 용원부(龍原府) 예맥족이 살던 곳으로, 책성부(柵城府)라고도 부르며, 일본으로 가는 길이다. 남해부(南海府) 옥저 땅이었던 곳으로, 당나라에 조공하는 길이다. 압록부(鴨綠府) 고구려 땅이었던 곳으로, 당나라에 조공하는 길이다. 장령부(長嶺府) 고구려의 땅이었던 곳으로, 당나라 영주(營州)로 가는 길이다. 부여부(扶餘府) 부여 땅이었던 곳으로, 거란으로 가는 길이다. 막힐부(鄚頡府) 부여 땅이었던 곳이다. 정리부(定理府.. 2009. 11. 24.
고구려 연대 삭멸 단재 신채호에 관한 노트 | sky_drum http://blog.naver.com/sky_drum/80056654837 고구려의 연대가 200년 가량 삭제되었을 것이라 하는데 이렇게 훼손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다. 단재는 1926년 5월 시대일보에 연재한 란 글에서 고대의 시조의 오래됨으로 서로 우열을 다투었기에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자 신라인이 훼손하였다지만 마침 중국의 「북사(http://blog.naver.com/zpzgya/38645123)」나 「위서(http://blog.naver.com/zpzgya/38645016)」를 읽어보니 그에 관한 중국측 기록이 역시 결한 부분이 있어 이것 또한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을 보면 적어도 삭멸된 연대의 역사는 복원하지 못하여도 고구려의 연대.. 2009. 11. 23.
조선력사지도첩: 남한 역사학계는 반성해야한다. 연해주도 고구려 영토였다. 고구려 영토는 6세기 말~7세기 초 중국 흑룡강성과 내몽골자치주와 요녕성은 물론이고 연해주까지로 되어있다. 식민사학에 물들어 일본의 역사해석을 그대로 베껴쓰고 있는 게을러빠진 현재 남한의 역사학계는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BC 30세기에 건국된 전조선은 BC 15세기 후조선으로 교체되었고 이 시기에 고대국가인 부여가 성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북부여는 후부여라고 한 듯 하다. 전조선의 수도가 현재 북한의 평양이라고 한 것으로봐서 정치적 색채가 농후하게 깔려있으니 틀렸다. 단군조선의 수도는 현재 홍산문명지와 하가점하층문화지역으로 요하 상류와 대릉하 상류지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0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