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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21

신당서 고구려 열전 번역문 고려(高麗)는 본래 부여(夫餘)의 별종이다. 국토는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신라(新羅)에 이르고, 남으로는 역시 바다를 건너 백제(百濟)에 이른다. 서북으로는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와 접하고, 북은 말갈(靺鞨)과 접한다. 그 나라의 왕이 살고 있는 곳은 평양성(平壤城)으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부르는데, 한 대(漢代)의 낙랑군(樂浪郡)으로 장안에서 5천리 밖에 있다. 산의 굴곡을 따라 외성을 쌓았으며, 남쪽은 패수(浿水)와 연해있다. 왕은 그 좌측에 궁궐을 지어놓았다. 또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이 있는데 별도라 부른다. 물은 대요(大遼)와 소요(少遼)가 있다. 대요는 말갈의 서남쪽 산에서 흘러나와 남으로 안시성(安市城)을 거쳐 흐른다. 소요는 요산(遼山)의 서쪽에서 흘러나와 역시 남으로 .. 2009. 12. 31.
고구려의 책력인 구집력에 대하여 고구려는 어떤 책력을 사용하였을까요? 식민사학자들은 중국 것을 사용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쯧쯧해동역사에서 유환기문(游宦記聞)의 기록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해동역사 권17 성력지『고려국에는 구집력(九執曆)이 있다. 그 법은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해와 달 역시 왼쪽으로 돈다. 하루의 밤과 낮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해가 3백 65도 4분의 1을 운행하면 하늘이 도는 것에 비해 한 바퀴가 적은데, 날마다 하늘의 운행에 미치지 못하는 바를 28수(宿)로써 계산하여 도수를 잰다. 대개 28수는 바로 경성(經星)으로 하늘에 붙어서 운행해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하여 도수(度數)를 잴 수가 있다. 그리고 땅의 거리를 잴 수가 있다고 하는데, 만약에 천리의 주군(州郡)에 정.. 2009. 12. 26.
기자(箕子), 기수가한, 서여 그리고 고구려와 거란과의 관계 고조선의 역대단군우선 기자(箕子)가 기수가한(奇首可汗)인 것을 논의하기 전에 고조선의 왕통부터 새로이 정립해야겠습니다. 규원사화에는 제1대 환검(桓儉)에서 제47대 고열가(高列加)까지는 약 1200년간 지속되었고 환단고기에는 약 2100년간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매우 헷갈립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규원사화의 기록에 따르면 고열가 이후 기자가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 같습니다. 환단고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조선 왕통 2100년간 47명인데 비하여 불조선 왕통은 약 2100년간 74명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불조선 30대 불한 서여부터는 74대 기준까지 약 1000년간은 45명이 되며 1대 치두남에서 29대 소정까지 29명이 약 1000년간 다스리게 되므로 논리상 .. 2009. 12. 20.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의 원인은 무엇일까?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한 원인은 238년에 공손씨 멸망에 있더군요. 고구려가 吳와 魏 사이에서 동맹국을 선택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魏를 선택하고... 관구검이 공손씨를 공격할때 도와줍니다. 《삼국지》〈공손탁전〉 景初元年, 乃遣幽州刺史毌丘儉等齎璽書徵淵. 淵遂發兵, 逆於遼隧, 與儉等戰. 儉等不利而還. 경초 원년, 이에 유주자사 관구검 등에게 새서를 주어 공손연을 징벌하도록 보내었다. 공손연은 군사를 일으켜 요수遼隧에서 관구검 등과 싸웠다. 관구검 등은 불리하여 돌아왔다. 이때가 AD237년입니다. 결국 공격에 실패하고 돌아와서 다음해에 다시 공손씨를 공격하죠. 《삼국지》〈공손탁전〉 二年春, 遣太尉司馬宣王征淵. ...중략.... 傳淵首洛陽, 遼東、帶方、樂浪、玄菟悉平. 2년 봄, 태위 사마선왕을 보내어 공손연.. 2009.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