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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712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1]현재진행형 역사 왜곡 뒤엔 ‘쓰다·이병도 짙은 그림자’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 ① 식민사관과 노론사관 우리 시대의 ‘문제적 역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주류 역사학계에 도발적인 도전장을 던진다. 이 소장은 현재 역사학계의 주류 사관이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에 젖줄을 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계에서 정설이나 통설로 굳어져 있는 기존 이론체계를 뒤집어엎겠다고 한다. 한겨레는 앞으로 10여차례에 걸쳐 수요일치 지면에 이 소장의 글을 실을 예정이다. 한겨레가 이 소장의 주장을 수긍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장의 발언이 불씨가 돼, 우리 역사의 진실에 대한 논쟁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역사 교과서를 덮으면서 잊혀진 독자들의 아스라한 기억들을 끄집어내, 역사가 우리 현실에 살아있음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소장.. 2018. 1. 4.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2] 중국이 밑돌 깔고 일제가 못박은 ‘평양’의 한사군 ② 한사군의 미스터리 현재 주류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의 구도에 따라 평양 일대를 한사군 낙랑군 지역이라고 비정하지만 일제도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통감부가 도쿄대 공대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에게 평양의 석암동을 비롯한 전축분(벽돌무덤) 조사를 의뢰할 때만 해도 ‘고구려 고적조사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런 ‘고구려 유적’이 ‘한(漢) 낙랑군 유적’으로 바뀌게 된 데는 도쿄대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역할이 컸다. 일제, 식민지성 강조하려 한사군을 조선사 시작점으로 조작 중국 기록 미심쩍은데도 실증사학 미명아래 한국사 정설로 도리이 류조는 만철(滿鐵)의 의뢰로 남만주 일대에서 ‘한(漢) 낙랑시대 고적조사 사업’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남만주 유적조사를 마친 그는 대동강변에서 중국식 기와.. 2018. 1. 4.
진서(晉書) 지리지 번역: 평주(平州)와 유주(幽州) 1. 평주(平州) 생각컨대 우공(禹貢)에서 기록하기를 평주는 기주(冀州)의 영역인데, 주국(周)에서 유주(幽州)의 경계로 했으며, 한국(漢)때에는 우북평군(右北平郡)에 속했고, 후한(後漢) 말엽에는 공손도(公孫度)가 스스로 평주목(平州牧)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에 그의 아들 공손강(公孫康)과 공손강의 아들 공손연(文懿)이 요동을 병합하고 그곳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국(魏)에서는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설치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고, (이를) 나누어 요동(遼東) 창려(昌黎)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 5개의 군을 평주(平州)로 하였고 후에 유주(幽州)와 합하였다. 이에 공손연(文懿)이 망한 후에 호동이교위(䕶東夷校尉)로 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다. 함녕(咸寧)[1] .. 2018. 1. 4.
정운찬은 일본인 총리인가보다 일본사람 앞에선 무릎꿇은 왼쪽사진 우리나라 사람 앞에선 양반다리 하고 있는 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사격장에서 죽은 일본일을 안치한 부산대병원 영안실을 찾아서 무릎꿇은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용산참사때 죽은 희상자 유가족을 만나면서 양반다리 하고 있다. 분명 정운찬은 일본사람들의 총리이다. 아니라면 냄비근성이 다분히 있다. 정치인들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라고 세금으로 월급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세금을 받아쳐먹어놓고 일본사람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모습은 저사람의 사상을 의심스럽게 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133061&PAGE_CD=N0000&BLCK_NO=2&CMPT_CD=M.. 2018.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