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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712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9] 노론-식민사관 사대주의와 인맥 연결됐다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⑨ 노론사관에 일그러진 조선후기사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의 자운서원. 율곡 이이를 모신 서원으로 제자 김장생도 배향되어 있다. 김장생은 율곡의 십만양병설을 창작해 사실인 것처럼 전파했다(왼쪽). 유수원이 쓴 사회 개혁서인 . 유수원은 노론에 사형당한 소론 강경파임에도 국사 교과서는 노론이란 식으로 서술해왔다(오른쪽). 한국 주류 사학계의 고대사 인식이 일본 식민사관에 깊게 경도되어 있다면 조선 후기사 인식은 노론사관에 깊게 경도되어 있다. 몸은 21세기에 살지만 역사관은 일제와 조선 후기 노론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은 자기정체성 부인과 사대주의 극대화라는 점에서 인식이 같을 뿐만 아니라 인맥으로도 서로 연결된다. 노론의 뿌리는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이.. 2018. 1. 16.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8] ‘풍납토성, BC 2세기 축조’ 탄소 연대 측정도 무시 식민사관 뺨치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 과학조사 불구 “AD 3세기 축조” 억지 주장 삼국 건국시기 수십~수백년 후퇴시켜 초기기록 허위 확인된 ‘일본서기’ 인용 등 서천왕·근초고왕·눌지왕부터만 실존 인정 » 백제의 왕성이었던 서울 풍납토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서기전 2세기 무렵부터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 쪽 학자들은 서기 3세기 후반에야 축조되었다고 주장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이하 위원회)란 조직이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되자 한·일 정상의 합의로 2002년 발족하여 2005년까지 활동했던 조직이다. 물론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었다. 위원회는 2005년 (이하 보고서)를 발간했다. 위원회는 이 를 ‘장래 양국 역사교과서 편수에 참고할 수 있.. 2018. 1. 10.
진개침략 대수맥은 사기 초세가 경양왕 18년(BC281)에 왕과 활 쏜 자의 대화를 근거로 진개의 조선침략이 BC281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이는 한문해석을 잘못하여 틀린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http://baedalguk.com/bbs/zboard.php?id=fre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685) 이제 대수맥이 억지해석을 하여 틀린 결론에 도달한 목적과 왜 해석이 틀렸는지에 대하여 논하여보겠다. 대수맥이 억지해석을 한 이유 다들 알다시피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중인 환단고기에는 진개침략이 BC221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가지고 장난치면서 동사강목을 베껴 그 양을 늘리고자 하.. 2018. 1. 10.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7] 중 후한서에 고구려 대무신왕·모본왕 나옴에도 유령 취급 후한서 ‘모본왕, 중국내륙 침략’ 기록 태조왕 이전부터 강국이었음을 입증 주류학계는 “태조왕때 사실상 건국” 식민사학따라 온조·혁거세 존재도 불신 » 광개토대왕 비문. 김부식과 이규보는 이 비문의 존재를 몰랐으나 비문에 등장하는 시조 이야기를 자신들의 저서에 실었다. 초기 기록이 창작이나 중국 기록을 보고 베낀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⑦ 주몽·온조·박혁거세 삼국시조 아니다? 현행 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따라서 삼국의 건국 시조를 누락시켰다. 대신 고구려는 제6대 태조왕(재위 53~146) 때 사실상 건국되었고 백제는 제8대 고이왕(234~286), 신라는 제17대 내물왕(356~402) 때 건국되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이전의 국왕들은 후대의 조작이거나 부락.. 2018.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