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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진개침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1. 10.

대수맥은 사기 초세가 경양왕 18년(BC281)에 왕과 활 쏜 자의 대화를 근거로 진개의 조선침략이 BC281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이는 한문해석을 잘못하여 틀린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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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수맥이 억지해석을 하여 틀린 결론에 도달한 목적과 왜 해석이 틀렸는지에 대하여 논하여보겠다.

 

 

대수맥이 억지해석을 한 이유

 

다들 알다시피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중인 환단고기에는 진개침략이 BC221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가지고 장난치면서 동사강목을 베껴 그 양을 늘리고자 하였지만 실수한 자국이다.

동사강목에는 기준(箕準)이 왕위에 오른 해에 그 이전 연혁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진개침략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애매하게도 동사강목은 연혁을 적을때에 작은 글자로 쓰지 않고 줄만 바꿔기록하였다.

 

그래서 그냥 생각없이 베끼다보면 연혁이 당해년도 본문이 되어 버린다. 이유립은 이런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환단고기가 세상에 처음 알려질때에 어떤 멍청한 이는 BC221년에다가 1갑자 즉 60년을 더하여 BC281년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진개의 조선침략은 전세계 어느 학자도 그 연도를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연소왕 재위기간인 BC300년경이라고 말하고만 있다.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사연표에도 그저 BC300년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제 BC221년에 진개침략이 있었던 것처럼 기록되었던 환단고기에 先是 두 글자를 넣어서 이제는 연혁을 잘못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연혁을 잘못쓴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동사강목의 연혁을 잘못 베낀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환단고기에 이런 헛점이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만약 진개침략이 BC281 년이라는 것이 확증만 된다면 환단고기에 기록된 BC221년 진개침략은 황당한 기록이 아니고 더 이상 先是를 넣은 판본을 고집할 필요도 없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된 1979년 판본의 진개침략 기록은 단지 1갑자를 잘못하여 60년이 밀리게 된 것에 지나지 않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은 진개침략 BC281년을 고집한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진개침략은 그저 BC300년경이다(http://db.history.go.kr/url.jsp?ID=NIKH.DB-tc_ko_-0300_99_99_0010)

 

 

대수맥의 엉터리 해석 目에 대한 검증

 

대수맥은 그의 글에서 진개침략은 BC282~BC281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은 아래와 같다.

 

<<사기 초세가>> 경양왕 18년(BC281)

초나라 사람이 가벼운 활에 가느다란 실로 연결한 화살을 재어 쏘아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쏘아 맞추었다. 경양왕(頃襄王)이 듣고 그 사람을 불러서 물었다. 그 사람이 대답했다…중략… 서쪽으로는 조(趙)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될 것이며 북쪽으로는 연(燕)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제(齊), 연(燕), 조(趙) 세 나라는 새가 비상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합종(合縱)의 맹약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자연히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북쪽으로 길을 떠나 연(燕)나라의 요동(遼東)의 땅을 한번 살펴보신 연후에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월(越)나라의 회계산(會稽山)에 오르시어 다시 활을 쏘는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대수맥이 진개침략 BC281 년을 주장하는 근거는 사기 초세가에 BC281년에 경양왕과 북쪽으로 활을 쏜 자의 대화에서 “연나라의 요동 땅”이라는 문구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BC281년에 진개가 조선을 침략하여 요동 만번한까지 연나라 땅으로 삼았는데 BC281년에 저 아랫동네 초나라에서 요동땅을 연나라 땅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기원전 281년에 말이다.

 

전혀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맥은 目에 대한 해석을 근거로 하여 이런 주장을 하고 있으나 目에 대한 해석은 한문에 대한 기본이 전혀 없는 완전히 틀린 해석이 불과하다.

 

이제 대수맥이 目을 어떻게 해석하여 BC281년 진개침략이라는 억지결론에 도달하였는지 보자.

 

<<사기 초세가>>

目於燕之遼東而南登望於越之會稽此再發之樂也

 

문제가 되는 위 구절을 대수맥은 아래와 같이 곡해하였다.

“북녘으로 노닐어 연의 요동을 [판 가름하고] 남으로 산에 올라 월의 회계를 바라보면 이것이 활을 쓰는 둘째 멋입니다. 위 글의 [目]을 <춘추번로>의 <目者 偏辨其事也> 또는 <한고조기>의 <范增數目羽 擊沛公>의 目처럼 <動目以論也> 또는 <凡注視曰目之>의 의미로 풀이합니다. 필자가 [BC 282-BC 281년에 처음으로 연지요동이 된 걸 확인해보고...]의 뜻으로 짐작함은 [目]이 <見*賢*視*觀>보다 <偏辨其事*動目以論*注視>의 의미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지요.”

 

대수맥은 北目於燕之遼東라고 한 구절의 目이란 그저 본다는 말이 아니라 이 기록이 있던 BC281년에 혹은 1년 전인 BC282년에 처음으로 요동이 연나라 땅이 되었고 그것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억지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근거로

i)                    <춘추번로>의 <目者 偏辨其事也>

ii)                   <한고조기>의 <范增數目羽 擊沛公>과  <動目以論也>

iii)                 <凡注視曰目之>

등을 들었다.

 

이제 위 3가지 目의 용법이 대수맥이 주장하는 “처음으로 확인한다”는 뜻이 전혀 아님을 보임으로써 대수맥의 BC281년 진개침략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주장임을 보이고자 한다.

 

i)         춘추번로의 目者 偏辨其事也

대수맥은 위 춘추번로의 구절을 독자들에게 정확히 해석을 하지 않음으로써 한문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하였다.

그러나 위 춘추번로의 目에 대한 설명은 대수맥이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이제 그 원문을 보고 目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따져보자.

 

<<춘추번로>>

號凡而畧, 名詳而目. 目者徧辨其事也, 凡者獨其大事也.

凡이라는 것은 畧이라 부르고 詳을 이름하기를 目이라 한다. 目이라는 것은 그 事을 徧辨하는 것이고 凡이라는 것은 大事를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학교다닐 때 국어 산수 체육 미술 등을 과목(科目)이라고 불렀다. 즉, 여기서 目이란 “눈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그 상세한 것들을 두루 나누어 분류한다는 뜻의 目이다. 그래서 위 춘추번로에 名詳而目이라 했고 徧辨其事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대수맥은 어이없게도 세부항목을 분류한다는 目의 의미를 “처음으로 확인한다”로 잘못해석을 하였다.

따라서 대수맥의 BC281년 진개침략에 대한 주장은 그 근거가 되는 目에 대한 해석이 틀렸으므로 인하여 잘못된 주장이다.

 

ii)       한고조기의 范增數目羽 擊沛公과  動目以論也

먼저 문제가 되는 구절을 보자.

 

<<前漢書>> 高帝紀第一上

范增數目羽擊沛公[師古曰動目以諭之]

范增은 여러 번 항우羽에게 沛公을 공격할 것을 目했다

 

目의 뜻이 분명하지 않으니 師古가 주석하기를 動目以諭之라고 하였다. 즉 “눈을 움직여 타일러 깨닫도록 했다”는 말이다. 쉽게 “눈짓했다” 혹 “권고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대수맥은 目의 주석이 動目以諭之라고 한 것을 보고 한서 전체 내용을 파악하지도 못한체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이상한 해석으로 자신의 억지 주장에 결론을 몰고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目이란 위와 같이 "권고하다"는 말이지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대수맥은 권고하다라는 目의 의미를 잘못해석하여 진개침략이 BC281년이라고 주장하였으니 그의 진개침략이 BC281년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iii)     凡注視曰目之

대수맥이 예를 든 이 구절은 아마도 강희자전에 나오는 구절인 것 같다.

 

<<강희자전>> 目에 대한 설명

凡注視曰目之. 史記陳丞相世家: 陳平去楚, 渡河, 船人疑其有金, 目之.

무릇 주시(注視)를 目이라 한다. 史記의 陳丞相世家에게 陳平이 楚로 가려고 河를 건널 때 船人들이 金이 있음을 의심하여 그것을 目하였다.

 

여기에 쓰인 目은 “주시(注視)하다”라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주의를 집중하여 봄. 눈여겨봄.”이라고 해설되어 있다. 즉, 船人들이 허리춤에 있는 陳平을 죽이고 金을 가져가려고 金을 주의를 집중하여 눈여겨 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바와 같이 대수맥이 “처음으로 확인하다”라는 뜻이라고 주장한 目은 전혀 그런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目이란 “과목(科目)”의 目이고, “눈짓하여 권고하다”의 目이며, “눈여겨 보다 즉 주시(注視)하다”의 目이다.

그런데 대수맥은 있지도 않은 ‘처음으로 확인하다’의 뜻을 만들어냈으니 그의 해석은 틀렸으며, 또한 잘못 해석한 目의 뜻을 근거로 하여 세운 진개침략 BC281년 역시도 그 가설이 잘못되었기에 그 결론도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