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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지리지40

신당서(新唐書) 지리지 하북도(河北道) 전문 번역 유주범양군(幽州范陽郡) 유주범양군 대도독부(大都督府)는 원래 탁군(涿郡)인데 천보(天寳) 원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토산품으로 조공을 바치는 품목으로는 비단綾과 목화綿와 비단絹과 각궁(角弓)과 인삼(人葠)과 밤栗이다. 가구수는 6,7242이고 인구수는 30,1312명이다. 현은 9개이다. 14개의 부가 있는데 려평부(吕平府) 탁성부(涿城府) 덕문부(德聞府) 로성부(潞城府) 락상부(樂上府) 청화부(清化府) 홍원부(洪源府) 량향부(良鄉府) 개복부(開福府) 정화부(政和府) 정참부(停驂府) 자하부(柘河府) 량두부(良杜府) 함녕부(咸寧府) 등이 있다. 성(城) 안에는 경략군(經畧軍)이 있고 또한 약강군(約降軍)이 있는데 본래 납강수착성(納降守捉城)으로서 옛날의 정령천(丁零川)이다. 서남쪽에는 안새군(安塞軍)이 있고.. 2009. 11. 23.
요사 지리지 중경도 전문 번역: 중경 대정부, 성주, 흥중부, 의주, 금주, 천주, 건주, 래주 중경 대정부 중경대정부, 虞舜(우순)때에 營州(영주)가 되었고 夏國(하국)때에는 冀州(기주)에 속하였으며 周國(주국)에서는 幽州(유주)의 일부였다. 秦國(진국)이 천하를 군으로 삼았는데 이곳은 遼西(료서군)이 되었다. 漢國(한국)에서는 新安平縣(신안평현)이 되었다. 漢國(한국) 말기에는 步奚(보해)가 살았는데 폭원 1000리였으며 큰산과 깊은 계곡이 많아서 험준한 산기슭으로 스스로 견고히 하였다. 魏國(위국) 武帝(무제)가 북쪽으로 정벌하려고 병사를 보내 크게 싸우니 항복한 자가 10여 만명이었으며 (나머지는) 松漠(송막)으로 달아났다. 그 후에 拓抜氏(척발씨)가 乗遼하여 아장(牙)을 이곳에 건설하였으니 당연히 饒樂河水(요락하수)의 남쪽과 温渝河水(온유하수)의 북쪽이다. 唐國(당국) 太宗(태종)이 고구려.. 2009. 11. 23.
구당서 지리지 하북도 번역 2: 탁주, 계주, 단주, 규주, 평주, 순주, 귀순주, 영주, 연주 등 탁주(涿州) 탁주(涿州). 원래 유주(幽州) 범양현(范陽縣)이었다. 대력(大曆) 4년에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 주희채(朱希彩)가 범양현에 탁주를 설치한 것을 청하니 유주(幽州)의 범양현(范陽) 귀의현(歸義) 고안현(固安)을 나누어 탁주(涿州)에 속하게 하고 (탁주는) 유주도독(幽州都督)에 속하게 하였다. 새로 설치한 주이므로 호구가 조사되지 아니하였다. 경사(京師)까지 2400리이고 동도(東都)까지 1480리이다. 1) 범양현(范陽縣), 한국(漢國)의 탁군(涿郡) 탁현(涿縣)이며 군(郡)을 다스리는 곳이다. 조위(曹魏) 문제(文帝)가 범양군(范陽郡)으로 고쳤고, 진(晉)에서는 범양국(范陽國)이었으며, 후위(後魏)는 범양군(范陽郡)으로 하였고 수(隋)에서는 탁현(涿縣)이 되었다. 무덕(武徳) 7년에 범양현.. 2009. 11. 22.
구당서 지리지 하북도 번역 1: 유주대도독부 유주대도독부(幽州大都督府) 수국(隋國)에서는 탁군(涿郡)이었다. 무덕(武徳) 원년에 유주총관부(幽州總管府)로 고치고 유주(幽州) 역주(易州) 평주(平州) 단주(檀州) 연주(燕州) 북연주(北燕州) 영주(營州) 요주(遼州) 등 8개의 주를 관리하였다. 유주(幽州)는 계현(薊縣) 량향현(良鄉縣) 로현(潞縣) 탁현(涿縣) 고안현(固安縣) 옹노현(雍奴縣) 안차현(安次縣) 창평현(昌平縣) 등의 8개의 현을 다스렸다. 2년에 또한 로현(潞縣)을 나누어 현주(玄州)를 두고 1개의 현을 다스렸으며 총관(總管)에 속하였다. 4년에 두건덕(竇建徳)을 평정하여 고안현(固安縣)을 북의주(北義州)에 속하게 하였다. 6년에 총관(總管)을 고쳐 대총관(大總管)으록 하여 39개의 주를 관리하였다. 7년에 대도독부(大都督府)로 고쳤고 .. 2009.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