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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검8

환웅의 신시, 임검의 조선, 대조영의 진국 다 같은 의미입니다 - 환웅이 세웠다는 神市 일반적으로 "신시"라고 읽죠.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의 저잣거리"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과연 저 시대에도 저잣거리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아마도 없었을겁니다. 자급자족하던 시기였을거에요. 많은 분 주장하기를 市는 "시(부수巾 + 2획)"자가 아니라 "불(부수巾 + 1획)"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대에 "불"이란 단어는 도회(都會)와 야지(野地)의 뜻이기 때문에 "신불(神市)"의 뜻은 바로 "신의 나라" 정도가 되기때문입니다. 혹은 "신의 밝은 나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 임검이 세운 조선 임검의 조선이 그 뜻을 파악하는데 저를 매우 어렵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임검의 나라는 조선이 아닙니다. 조 선은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바, 주신(珠申)의 전음(轉.. 2013. 7. 2.
단군과 왕검은 사서 띄어읽고 오류에서 비롯된 잘못된 용어 단군과 왕검 모두다 이름이 의심스럽습니다. 첫째로 단군은 제(帝) 또는 한(汗)이어야 하는데 君자를 붙여놔서 이상합니다. 둘 째로 왕검은 사람 이름이라고 하는데 사람이름에 王자를 붙여놓으니 누가 후대에 역사를 왜곡하려고 일부러 고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듭니다. 마치 왕건이 원래 성씨가 王이 아닌데 고려를 세운 후 王씨로 고쳤다는 설과도 통하는 얘기 입니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고 제가 임의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삼국유사 단군관련 기록에 대한 번역을 이렇게 하여야 올바른 해석이 아닌가 하여 올려봅니다.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開國號朝鮮 보통 이것을 해석하기를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세워 나라를 열고 조선이라 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고조선을 세운 사람의 이름은 왕검(혹.. 2012. 11. 30.
왕검(王儉)과 임검(壬儉)의 문제 단군(檀君)이 나라를 세우고 임검성(壬儉城)에 도읍하였다고 규원사화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인의 사서에 위만이 나라를 세워 왕험성(王險城)에 도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죠. 식민학자들은 왕험성(王險城)은 임검성(壬儉城)의 도읍이라고 주장하여 단군이 도읍한 곳에 기자가 도읍하였고, 또한 후대에 위만이 도읍하였으며 한나라는 이것을 멸망시켜 4개의 군을 설치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식민사학자들의 말은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임검(壬儉) 두 글자에 숨어있는 그 속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조선 역사 해석의 중요한 단어 웅(熊) 대 부분 단군사화를 해석할 때에 웅녀를 토테미즘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환웅이 천신족(天神族)이므로 웅녀는 지신족(地神族)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2012. 10. 2.
壬儉의 음은 "징검"이며 "맑검" 혹은 "바탕검"으로 훈독해야 한다 임검(壬儉)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여러가지 대안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1. 강단의 “임검(壬儉)은 왕험(王險)이다”라는 해석 비판 이 러한 해석은 우리역사를 지나인들이 기록하면서 임(壬)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그들만의 방식대로 임(壬) 자를 왕(王) 자로 바꾸어 임검을 왕이라는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검(儉)에 대한 의미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체 도읍은 주로 외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험한 곳에 위치하므로 검(儉) 자를 또한 그들만의 방식대로 바꾸어 험(險, 험하다) 자로 바꾼 것입니다. 왕험(王險)에 대한 기록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사기(史記)입니다. 《사기(史記)》권 115 조선렬전(朝鮮列傳) 滿……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위만(衛滿)은 점차 진번조선(眞番.. 2012.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