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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6

고대 국가명 짓는 원리 우리민족의 옛말 중에 나라(國)를 뜻하던 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옛 나라이름에는 “나라”를 뜻하는 옛말들을 덧붙여서 사용하였다. 첫째는 “골”이다. 이 를 사용하여 나라이름을 지은 국가들은 대개 강가에 도읍을 건설하고 강을 “개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면 “개울”이 어떻게 “골”이 되는가? 두 산 사이에 움푹 패어 들어간 곳을 “골짜기” 혹은 “골”이라 하는데, 이런 곳에 물이 흐르게 되면 “개울”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밭의 두둑과 두둑 사이에 움푹 패인 곳을 “고랑”이라 하며, 온돌방에 불길이 지나가도록 방구들 밑에 움푹 패인 곳을 “고래”라고 한다. 이 모두가 어원이 같은 말이며, 개울녘에 마을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면 그곳을 “골” 또는 “고을”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현재 고을이란 말.. 2014. 9. 2.
신라를 백제의 부용국이라고 한 이유 지나사서를 보면 아주 이상한 구절이 있습니다. 或稱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亦曰斯盧. 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兼有沃沮·不耐·韓濊之地.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校勘 155],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일설에 의하면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毋丘儉이 고구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고구려인들은 옥저沃沮로 도망갔다가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이 때에 따라가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新羅를 세웠다고 한다. 신라는 斯盧라고도 한다. 그 나라는 화하·고구려·백제의 족속들이 뒤섞여 있으며, 옥저沃沮·불내不耐·한예韓濊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라의 임금은 본래 백제百濟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2010. 1. 7.
문원영화 신라(新羅) 번역문 신라왕(新羅王),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지절(持節), 대도독계림주제군사(大都督鷄林州諸軍事), 상주국(上柱國) 김흥광(金興光)에게 칙서를 보낸다. … 근래 발해말갈이 은혜와 신의를 잊고 멀리 떨어져 있음을 믿는데다 또 토벌에서 벗어났다. 경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항상 분려하기에 지난해 중사(中使) 하행성(何行成)과 김사란(金思蘭)을 보내 함께 도모하려고 하였다. 듣건대 이 도적이 곤궁하여 바닷가에서 구차하게 살며 노략질하면서 길을 막고 있다. 경은 가까운 곳에서 틈을 노려 엄습하여 기특한 공을 세우라. 만약 성공한다면 후한 상을 어찌 아끼겠는가? 다만 발해가 의지하고 따를 자를 많이 두려고 하니, 실로 이 도적이 노략질할까 염려스러우니 막지 않을 수 없다. 어찌 곤궁한 도적을 돕겠는가? 완전히 쓸어 .. 2009. 12. 28.
신라는 정말 흉노(匈奴)의 일파인가? 흉노와 신라가 정말 같은 종족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전에 예濊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건의 일치성 고려해보기《환단고기》濊邑叛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부여(余)에게 명하여 지키고 다스리게 한 후 (추장 소시모리를 참수하게 하였다.) 괄호안(•)의 부분은 진위가 의심되니 이 글에서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단군임검때로 올려잡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 예濊를 토벌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기사가 단군임검때에 규원사화에 존재합니다. 《규원사화》御國四十餘載, 而有猰猶之亂. 猰猶兪者, 獫狁之屬也, ...중략..., 卽使夫餘會集中外之兵, 討平之. 乃益封夫餘, 北方之地, 使宅牛首忽卽先平壤, 使夫婁居壬儉城, 令夫蘇修樂浪忽, 夫虞監唐莊京, 更封高矢氏於南方.. 2009.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