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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신라는 정말 흉노(匈奴)의 일파인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7.

흉노와 신라가 정말 같은 종족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전에 예濊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건의 일치성 고려해보기

《환단고기》

濊邑叛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부여(余)에게 명하여 지키고 다스리게 한 후 (추장 소시모리를 참수하게 하였다.)


괄호안(•)의 부분은 진위가 의심되니 이 글에서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단군임검때로 올려잡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 예濊를 토벌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기사가 단군임검때에 규원사화에 존재합니다. 


《규원사화》

御國四十餘載, 而有猰猶之亂. 猰猶兪者, 獫狁之屬也, ...중략..., 卽使夫餘會集中外之兵, 討平之. 乃益封夫餘, 北方之地, 使宅牛首忽卽先平壤, 使夫婁居壬儉城, 令夫蘇修樂浪忽, 夫虞監唐莊京, 更封高矢氏於南方之地.

건 국한지 40여 년만에 알유猰猶의 난이 있었다. 알유猰猶는 험윤獫狁의 족속으로...중략... 부여로 하여금 안팎의 모든 병사를 모아 그를 토벌하여 평정케 하였다. 이에 부여에게 북방의 땅을 더하여 봉하고 우수홀(牛首忽)(즉 먼저 번의 도읍이다)에 자리잡게 하였으며, 부루로 하여금 임검성에 거처하게 하고, 부소에게는 낙랑홀을 다스리게 하고, 부우는 당장경을 살펴보게 하였으며, 고시씨는 그 봉토를 고쳐 남쪽의 땅에 봉하였다.


이 두 개의 기사가 뜻하는 바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예읍濊邑과 규원사화에 나오는 알유猰猶가 같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아들 부여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것이 흉노가 되느냐?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발음이 비슷 

우선 이를 검토하기 전에 흉노匈奴의 라는 이름을 정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고대에 나라 이름 뒤에 알게 모르게 "나라"를 한자로 음을 빌어 썼습니다. 신라新羅가 그러한데 원래 이름은 新 하나만 써야합니다. 사로斯盧로 역시 나라 이름은 사斯입니다. 삼국지 변진국 중에 낙노국樂奴國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낙樂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뒤에 "나라"를 뜻하는 노奴를 붙였고 지나인들이 나라를 뜻하는 국國을 붙인 것입니다. 즉, 변진 낙노국樂奴國이 그렇게 찾던 낙랑국입니다. 그리고 고구려 5부 중에 관노灌奴, 소노消奴, 순노順奴, 절노絶奴 등 역시 奴는 나라를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흉노匈奴란 원래 흉匈 하나만 써야되나 나라를 나타내기 위해 노奴를 붙인 것입니다. 


濊, 猰猶, 獫狁, 匈의 발음이 비슷한 것을 알아보면, 

  1. 濊는 우리말로 "예"라고 읽습니다.   
    설문에는 회(呼會切)로 나옵니다. 
    지나인들은 huì, huò, wèi 등으로 발음합니다. 
  2. 猰猶는 그냥 읽으면 알유이나, 합음하면 "위" 비슷해지며, 반절법을 취하면 "유"입니다. 
    설문을 따르면 猰는 일(烏黠切)이고, 猶는 주(以周切)인데 이 역시 반절법을 취하면 "우"가 됩니다. 
    지나인들은 猰는 yà로 읽고, 猶는 yáo로 읽으므로 반절법을 취하면 역시 yáo가 됩니다.
  3. 獫狁도 그냥 읽으면 험윤이나 반절법을 취하면 휸이 됩니다. 
    설문을 따르면 獫은 험(虚檢切)이고, 狁은 준(余準切)이므로 역시 반절을 취하면 훈이 됩니다.
    지나인들은 獫은 xiǎn이라 하고, 狁은 yǔn이라 하여 반절을 취하면 xǔn이 되나 이는 이들이 우리나라 "ㅎ" 의 발음에 해당하는 것을 가끔 x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크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4. 匈은 우리가 지금 "흉"이라 하나 설문에는 횽(許容切)이 합니다.


이들이 과연 같으냐 다르냐는 발음이 왜 "ㅎ"으로 시작하게 된 부류와 "ㅇ"으로 시작하게 된 부류로 나뉘었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고조선 서북쪽에 있던 봉국을 예濊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발음으로 쓰기를 猰猶(위, 유)로 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濊의 다른 발음인 회(呼會切)로도 사용되었고 결국 이것이 고착되어 휴(匈)이라 하거나 휸(獫狁)이라 하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나라를 건국하여 "휸나"라고 하였으나 지나인들이 이들을 폄하하기 위하여 흉노匈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풍속이 비슷함

  1. 흉노에는 아시다시피 가장 높은 임금 아래에 좌현왕 우현왕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삼한(三韓)제도와 비슷하며, 
  2. 흉노의 임금을 일컬어 선우(單于)라고 하는데 이는 단간(單干)이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단간(單干)은 단군(檀君)의 전음(轉音)인 것입니다. 
  3. 흉노에 휴도(休屠)가 있는데 우리의 소도(蘇塗)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흉노를 예濊의 한 분파로 보거나 혹은 같은 종족의 이름을 지나인들이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었음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지나사서와 우리사서에 이렇게 이름을 헷갈리게 하였던 경우가 많은 것을 의심할 수 있는데, 고구려가 예씨禮氏부인은 부여(夫余) 즉 예(濊)이고, 위나암尉那巖 역시도 예(尉, 濊, 夫余) 나라(那)의 바위라는 말일 것입니다. 머지않아 흉노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흉노의 후손 신라 김金씨

더나아가 회수(淮水)의 서이(徐夷)라고 생각되는 서라벌(徐羅伐)이라는 나라가 신라로 둔갑하였지만, 삼국사기에 北溟人耕田得濊王印獻之(북명인이 밭을 갈다가 濊 임금의 도장을 얻어 바치었다)라는 사실과 신라가 흉노의 김金씨 세력이라는 것은 서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들 濊 즉 흉노가 언제 동진하였느냐를 따져보면, 

진역(秦役)이란 진(秦)과의 전역(戰役)을 말하며, 신라가 세워진 진한(辰韓)은 원래 진한(秦韓)이어야 맞는데, 그들은 고조선 진국(辰國)의 후손이 아니라 예국(濊國) 즉 흉노들이 진(秦)과의 전역(戰役)을 피하여 인하여 동으로 이동한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김부식이 신라가 고조선 정통을 내세우기 위하여 秦韓을 辰韓으로 바꾼 것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