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라6

흉노(匈奴)와 예(濊)와 신라는 서로 통한다 사건의 일치 《환단고기》 濊邑叛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부여(余)에게 명하여 지키고 다스리게 한 후 (추장 소시모리를 참수하게 하였다.) (•)의 부분은 진위가 의심되니 이 글에서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단군임검때로 올려잡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 예濊를 토벌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기사가 단군임검때에 규원사화에 존재합니다. 《규원사화》 御國四十餘載, 而有猰猶之亂. 猰猶兪者, 獫狁之屬也, ...중략..., 卽使夫餘會集中外之兵, 討平之. 乃益封夫餘, 北方之地, 使宅牛首忽卽先平壤, 使夫婁居壬儉城, 令夫蘇修樂浪忽, 夫虞監唐莊京, 更封高矢氏於南方之地. 건 국한지 40여 년만에 알유猰猶의 난이 있었다. 알유猰猶는 험윤獫狁의 족속으로...중략... 부여로 하여금.. 2009. 11. 23.
신라를 백제의 부용국이라고 한 이유 지나사서를 보면 아주 이상한 구절이 있습니다. 或稱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亦曰斯盧. 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兼有沃沮·不耐·韓濊之地.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校勘 155],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일설에 의하면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毋丘儉이 고구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고구려인들은 옥저沃沮로 도망갔다가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이 때에 따라가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新羅를 세웠다고 한다. 신라는 斯盧라고도 한다. 그 나라는 화하·고구려·백제의 족속들이 뒤섞여 있으며, 옥저沃沮·불내不耐·한예韓濊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라의 임금은 본래 백제百濟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2009.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