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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14

단군이 세운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신단(辰檀)이다. 단군이 세운 나라를 삼국유사에서는 "조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삼국유사를 지은 때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은 후이고 이때는 이미 모화사상이 팽배하여 우리나라 역사가 왜곡될대로 왜곡된 시기일 것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이 어디서 처음에 기록되었을까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단군이 세운 나라의 이름이 과연 "조선"이었는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기자와 위만의 나라 이름의 유래 조선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는 곳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 중 조선열전입니다. 史記卷一百十五, 朝鮮列傳苐五十五 (集解張晏曰朝鮮有濕水洌水汕水三水合為洌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중략....)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為置吏築鄣塞...중략....遼東太守卽約滿爲外臣. (집 해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 열수 산수 등 3개의 강이.. 2011. 4. 26.
평양시 승호구역 리천리일대에 단군조선시대 유적지 발굴 조선중앙통신은 평양시 승호구역 리천리일대에서 단군조선시기의 집자리를 발굴하였다고 발표하였다고 한다. 위치: 평양시 승호구역 리천리유적 제2지구의 22호집자리로부터 북쪽으로 12m 떨어진 곳 생김새: 장방형, 집자리 남북길이는 10.6~10.8m, 동서너비가 6.15~6.3m, 바닥은 평탄하고 딴딴함 발견유물: 모루돌로 보이는 넙적돌 수십개돌을 정교하게 가공하여 만든 단검, 창끝, 반달칼, 대패날, 끌, 도끼, 가락바퀴 따위의 석기석기 반제품들을 가는데 사용한 숫둘 특이사항: 질그릇조각은 불과 몇점이고 석기 및 그 반제품의 수량이 매우 많음 고고학자들은 위 특이사항으로 미루어보아 이 집자리는 석기를 전문적으로 만들던 석기도구제작장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2010. 2. 16.
정감록과 단군에 대한 기록 계봉우 저서 『과학의 원수』 중에서 제사졀 뎡감과 단군신지(神誌)와 님검(壬儉, 즉 임검)이 그 음의(音義)로 보아서 서로 같으고 선인(仙人)과 선이가 또한 그 음의로 보아서 서로 같은 것은 의심할바가 족음도없이 들어낫습니다마는 뎡감록이 곳 신지비사요 뎡감(정감)이 곳 단군이라는 최륙당(崔六堂)의 례증(例證)을 거저 범범히 보고 지낼수가 없습니다. 그는 “단군과 삼황오제(檀검과 三皇五帝)”라는 긴 론문을 지은 그중에 박달나무 아래에서 강림한고로 이 일흠을 단군이라 하엿다는 그젼 력사가의 리론에서 멀리 뛰어나 고려 중엽의 중 일연이 짛엇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쓰이어있는 단군(壇君)으로써 그 리론의 근거를 삼아가지고 례증을 들엇는데; 우리 조션말의 「」을 한ㅅ자로 번역할때에 형용이 곱고 뜻이 합하도록.. 2010. 1. 2.
왕검(王儉)과 임검(壬儉) 중에 무엇이 바른 것인가? 단군(檀君)이 나라를 세우고 임검성(壬儉城)에 도읍하였다고 규원사화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지나인의 사서에 위만이 나라를 세워 왕험성(王險城)에 도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죠. 식민학자들은 왕험성(王險城)은 임검성(壬儉城)의 도읍이라고 주장하여 단군이 도읍한 곳에 기자가 도읍하였고, 또한 후대에 위만이 도읍하였으며 한나라는 이것을 멸망시켜 4개의 군을 설치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식민사학자들의 말은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임검(壬儉) 두 글자에 숨어있는 그 속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조선 역사 해석의 중요한 단어 웅(熊)대부분 단군사화를 해석할 때에 웅녀를 토테미즘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환웅이 천신족(天神族)이므로 웅녀는 지신족(地神族)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 2009.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