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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정감록과 단군에 대한 기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2.
계봉우 저서 『과학의 원수』 중에서

제사졀 뎡감과 단군
신지(神誌)와 님검(壬儉, 즉 임검)이 그 음의(音義)로 보아서 서로 같으고 선인(仙人)과 선이가 또한 그 음의로 보아서 서로 같은 것은 의심할바가 족음도없이 들어낫습니다마는 뎡감록이 곳 신지비사요 뎡감(정감)이 곳 단군이라는 최륙당(崔六堂)의 례증(例證)을 거저 범범히 보고 지낼수가 없습니다. 그는 “단군과 삼황오제(檀검과 三皇五帝)”라는 긴 론문을 지은 그중에 박달나무 아래에서 강림한고로 이 일흠을 단군이라 하엿다는 그젼 력사가의 리론에서 멀리 뛰어나 고려 중엽의 중 일연이 짛엇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쓰이어있는 단군(壇君)으로써 그 리론의 근거를 삼아가지고 례증을 들엇는데; 
  1. 우리 조션말의 「」을 한ㅅ자로 번역할때에 형용이 곱고 뜻이 합하도록 약간의 변통을하여 단 단(壇)자, 님검 군(君)자를 쓰어 단군이라 하엿으며 「」은 한울과 무당의 뜻을 겸하여가진 멍고(蒙古)말의 「덩걸」 혹 「덩그리」와 흉노(匈奴)말의 「탕그리」(撑犂)와에 그 말의 근원이 같은데 그것이 변형(變形)하여 「」도 되고 혹은 「」로도 되엿나니 「」은 ㆁ음을 빼어버리고 지금의 「머리」라는 말과 똑같이 쓰이게 된것이라하여 단군이라는 그 말의 속에는 「한울, 무당, 머리」의 세가지 뜻이 포함되엿다고 하엿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을 단군으로 번역된 것은 형용이 곱고 뜻이 합도록 변통을 더하여 그리쓰이엇다고 하는것보담 차라리 조션말엽에 「ㄴ」이 「ㄱ」의 우에서 흔히 “ㆁ”으로 변하는례: 「안기다」는 「앙기다」와 같고, 「만글다」는 「망글다」와 같은 발음하는 그 례에 의하여 「」이 「」으로 변한다면 더욱 좋을듯하고 또는 「ㄹ」과 「ㄴ」이 흔히 혼동(混同)되는 례: 「긔념(紀念)」은 「긔렴」과 같고, 「회녕(會寧)」은 「회령」과 같이 발음하는 그 례에 의지하여 「」이 「」로 변할수있다고 하면 더욱 좋을듯합니다.
  2. 조션의 각 지방 특히 금강연안(錦江沿岸)의 지방에서 무당을 「당굴」이라 하니 「당굴」의 본말은 「단군」이란 거기에서 나아온것이라고 하엿습니다
  3. 배사공들이 제일 높은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당거리고사」라 하고 거기에 들이는 페백을 살때에 값을 다토면 신을 공경하는 도리가 아니라하여 장사군이 비록 외누리를 하여도 깎는 일이 없으므로 그것을 「당거리흥정」이라 하니 「당거리」의 본말은 단군이라는 거기에서 나아온 것이라고 하엿습니다.
  4. 백셩들이 보통적 신앙에 있어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또 그 유전이 가장 오란 각 가졍의 토지지신(土地之神)을 「」 혹은 「터주」이라 하는 그것도 실상 그 본말은 단군이라는 거기에서 나아온 것이라고 하엿습니다.
  5. 삼국지(三國志)에 마한의 풍속이 귀신을 좋아하며 그 국읍(國邑)에 각각 한 사람식 세워 신에게 들이는 제사를 주장하게 하고 그 일흠을 「텬군(天君)」이라 하엿나니 「텬군」의 본말은 단군이라는 거기에서 나아온 것이라고 하엿습니다.
  6. 후한셔(後漢書)에 고구려에 신(神)의 사당이 두 채인데 한아는 부여신(扶餘神)이오 한아는 「등고(登高)신」이라 하엿으니 「등고」라는 그 본말은 단군이라는 거기에서 나아온 것이라고 하엿습니다.
  7. 중국사원오집(中國辭源午集)에 셔촉(西蜀) 사람이 무당을 불러 「단공(端公)」이라 하고 당진(唐甄)의 억존설(抑尊說)에 상(湘) 영(郢) 금(黔) 계(桂)의 지방에 단공의 명칭이 있다하고 구률범(舊律範)에 물읏 사무(師巫)가 스사로 단공(端公), 사파(師婆)라 하고 향불을 피우며 무리를 모히어놓고 미혹식히는데 그 두목(頭目)되는 자는 교감후(敎監侯)라 한다 하고 대쳥졍음촬요(大淸正音撮要, 대청정음촬요)라는 어휘(語彙)에 단공은 남을 위하여 신을 숭배하고 병을 고친다 하엿으니 「단공」의 본말은 단군이라는 거기에서 나아온 것이라고 하엿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의 례증을 드는 가온대에서 「뎡감(鄭堪)」이라는 그것도 「」의 변음(變音)으로 또한 된 것이라고 말하엿습니다. 우리의 말이 시대를 딸아서, 경우를 딸아서, 지방을 딸아서 소리의 변화 혹은 음편(音便)을 말미암아 그 형용도 변하고 몸도 변하는 례가 적지 아니하니 「」이라는 그 말도 역시 졍젹셩질(靜的性質)을 가진 「ㄷ, ㄱ」는 그냥있고 동젹셩질(動的性質)을 가진 중성(中聲) 「ㆍ」와 종셩(終聲) 「ㄹ」은 마음대로 변할 수가 있을것입니다. 이렇게 알고보면 최륙당의 례증도 그럴듯합니다. 단군을 만일 무당의 별명이라 하면 그 별명이 한두사람에 끊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참, 그러합니다. 강동대박산(江東大朴山)의 단군묘(墓)도 그러하고 녕변묘향산(寧邊妙香山, 영변묘향산)의 단군굴(窟)도 그러하고 자칭 단군이라던 해모슈(解慕漱, 해모수)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찌 그뿐이겟습니ㅅ까? 고구려에도 있엇을것이오 백제에도 있엇을것이오 신라에도 있엇을것입니다. 단군이 그렇게 많앗다면 예언자(豫言者)도 또한 그렇게 많앗을 것이올시다. 그러고본즉 신라말년에도 예언자 뎡감-단군-이 없엇으리라고 못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