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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121

祇摩紀(지마기)(A.D.159 - A.D.191:재위33년)- 한문본 신라사초의 해석에만 신경쓰려고 하는데 자꾸만 다른 곳으로 정신이 팔려 제대로 일을 못했습니다. 土豕 元年 正月 太公摩帝薨 葬以王禮 토시 원년(A.D.159) 二月 上與愛后 親祀祖廟 賜酺骨門 昌永伊飡 宮孝稟主 玉權水路 羊皇水母 啓其別軍使 申權吉飡 順宣斗胡級飡 翌宗京路 狗日京母 昕連護城大師 三月 扶余使來 弔先今 獻方物 上洗愛后女淡理 七月 上如太聖愛后 遊音汁伐 試射士 二年 正月 以摩知那爲神籬將軍 莫于南路 加車南母 2년(A.D.160) 三月 降雹傷麥 昌永請免 不許 允良西路 白馬卒故也 遣大頭逸聖 于州郡 按民察吏 五厚獻阿瑟羅地 四月 大水 上減食自責 慮因除死罪 悉宥之 七月 朱日遣使獻美女 以 ‘爲居陀本屬臣邦 請歸于臣’ 上不許 汗門爲北路 虹盧爲阿瑟羅太守 板乂生上子板公 九月 召文景文崩 子翡貝立 時景文荒色亂政 翡貝母與妙后爭.. 2011. 8. 16.
婆娑尼師今紀(파사이사금기) (A.D.126 - A.D.158:재위33년) - 한문본 왜 어렵게 한문본을 올리느냐고 반문을 하시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사서의 해석도 중요하지만 원문의 한자를 파악함이 우선이고, 그 이후가 해석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원문에 있는 한자중에 일부는 본인이 해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본인이 임의로 다른 자를 붙이지 않았나 반성을 합니다. 그러므로 원문의 한자를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는지 지적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婆娑尼師今紀(파사이사금기) (A.D.126 - A.D.158:재위33년) 元年 二月 上與惠后 親祀祖廟 大享骨門 원년(A.D.126) 以市老爲伊伐飡 阿休爲稟主 許婁爲中外軍事 阿明爲軍母 三月 上與惠后 巡撫京外州郡 發倉賑貧 曰 “三皇之世 民無盜賊 而皆自富裕 太君以來 四方多事 民多抵罪 朕深憐之 其除死罪 而原之” 四月 以支所禮爲兵官.. 2011. 8. 16.
婆娑尼師今紀(파사이사금,A.D.126 - A.D.158:재위33년) 1-7년 기사 婆娑尼師今紀(파사이사금기) (A.D.126 - A.D.158:재위33년) 元年 二月 上與惠后 親祀祖廟 大享骨門 원년(A.D.126) 2월 왕과 혜후(惠后:아혜)가 친히 조상의 사당에 제사지내고, 골문(骨門:왕족)에게 크게 대접하였다. 以市老爲伊伐飡 阿休爲稟主 시노(市老)를 이벌찬(伊伐飡: 신라 때의 최고 관리, 진골만이 하는 벼슬로 신라 17관등제와 별도로 제정)으로 삼고 아휴(阿休)를 품주(稟主: 신라 때 재정과 기밀을 맡아보던 관아)로 삼았다. 許婁爲中外軍事 阿明爲軍母 허루(許婁)를 중외군사(中外軍事)로 삼고 아명(阿明)을 군모(軍母)로 삼았다. ≪견해≫ 이벌찬과 품주, 장군(또는 군사)과 군모는 부부사이다. 三月 上與惠后 巡撫京外州郡 發倉賑貧曰 “三皇之世 民無盜賊 而皆自富裕 太君以來 四方多事 民多抵.. 2011. 8. 16.
23. 第二十三世<安原大帝>紀 제23세<안원대제>기(4) 원문출처;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23.pdf ◎ 癸亥十三年, 春正月, 辛酉朔, 受朝於, 有鳳凰来鳴于. 上, 乃與 公主, 入其殿, 名曰. 以左侍中為左丞相, 以其夫為右丞相. 為左侍中. 右侍中. 皇后生太子. , 使其子, 来献錦絹万匹・皇后翟服七函. 上, 送螺鈿金碗一襲于妻氏. 使, 来献土物, 告其妻去冬生子. 上, 賜衣于. 生殺兄之仇子, 其情慘矣. ○ 계해{단기2876/AD543}13년, 춘정월, 신유일 초하루, 에서 조례를 받았는데, 봉황이 으로 날아와서 울었다. 이에 상은, 이윽고 공주와 함께, 의 전각으로 들어갔으며, 이라 이름을 붙였다. 좌시중 을 좌승상으로 삼았고, 그녀 지아비 은 우승상으로, 은 좌시중으로, 은 우시중으로 삼았다. 황후가 태자를 낳.. 2011.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