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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46

사기정의(史記正義)기록: 낙랑과 현도는 발해군 소속. 연나라 중심지는 산동성 부근 사기정의(史記正義)기록: 낙랑과 현도는 발해군 소속. 연나라 중심지는 산동성 부근 史記正義 論例諡法觧 燕地尾箕之分壄召公封於燕後三十六世與六國俱稱王東有漁陽右北平遼西遼東西有上谷代郡鴈門南有涿郡之易容城范陽北有新成故安涿縣良鄉新昌及渤海之安次樂浪玄菟亦宜屬焉 연(燕)나라는 미(尾)와 기(箕)의 땅을 나눈 곳이다. 소공(召公)이 연(燕)에 봉함을 받았다. 36세 이후에 6국과 더불어 왕이라 칭하였다. 동쪽으로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이 있고, 서쪽으로 상곡군, 대군(代郡), 안문군(鴈門郡)이 있다. 남쪽으로는 탁군(涿郡)이 있는데 탁군 안에 역용성(易容城)과 원양(范陽)이 있다. 북쪽으로는 신성, 옛 안탁현(安涿縣), 낭향(良鄉), 신창(新昌)이 있고, 또한 북쪽으로 발해군이 있는데 발해군 안에 안차(安次), .. 2015. 4. 3.
고구려는 한나라 요서군, 현도군, 낙랑군에서 시작되었다 《환단고기》북부여기 癸酉十三年漢劉徹寇平那滅右渠仍欲置四郡盛以兵四侵於是高豆莫汗倡義起兵所至連破漢寇遺民四應以助戰軍報大振 계 유 13년(기원전108) 한(漢)의 유철(劉澈)이 평나(平那)를 노략질하여 우거를 멸망시키더니 4군(郡)을 두고자 하여 사방으로 병력을 침략시켰다. 이에 고두막한(高豆幕汗)이 의병을 일으켜 가는 곳마다 한나라 침략군을 연파하였다. 이에 그 지방의 백성들 모두가 사방에서 일어나 호응함으로써 싸우는 군사를 도와서 크게 떨쳐 보답하였다. 강단은 이것을 위사라고 할 것입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4군을 설치하였으나 고두막한이 이들을 다 내쫓았다고 말하고 있고 백성들도 고두막한을 따라 한나라를 몰아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기록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비류국은 한나라 요서군 차.. 2015. 4. 3.
고죽국은 연나라 남쪽에 위치 규원사화에서 말하기를 진조선 이후 람국이 그 패권을 가지게 되는데 람국은 약 BC12세기 경에 수도를 고죽국으로 옮깁니다. 을 묘년은 두홀 임금의 원년이다. 비류후가 큰 자라를 바쳤는데 길이가 한 길이 넘었다. 속진후가 용가가 되었다. 처음 흘달 임금 때 우리나라 사람으로 빈(邠)․기(岐) 지역으로 나아가 거처한 자가 매우 많았는데, 상나라 탕왕이 일어나니 마침내 점차 물러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빈천한 백성으로서 농사짓고 누에치는 것을 생업으로 하던 자들은 여전히 그 땅에 흩어져 살면서 오랫동안 풍속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즈음 남후가 자못 강성하여 차츰 제후들을 부리고 거느리게 되었는데, 고죽군(孤竹君)을 몰아내고 도읍을 남쪽으로 옮겨 엄독홀(奄瀆忽)에 거처하였다. 그 곳은 은나라와 매우 가까우므로 여.. 2015. 4. 3.
기자(箕子)는 불조선 건국자인 기수가한(奇首可汗) 서여(西余)이고 고구려와 거란의 선조이다 고조선의 역대단군 우선 기자(箕子)가 기수가한(奇首可汗)인 것을 논의하기 전에 고조선의 왕통부터 새로이 정립해야겠습니다. 규 원사화에는 제1대 환검(桓儉)에서 제47대 고열가(高列加)까지는 약 1200년간 지속되었고 환단고기에는 약 2100년간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매우 헷갈립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규원사화의 기록에 따르면 고열가 이후 기자가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것 같습니다. 환단고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조선 왕통 2100년간 47명인데 비하여 불조선 왕통은 약 2100년간 74명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불조선 30대 불한 서여부터는 74대 기준까지 약 1000년간은 45명이 되며 1대 치두남에서 29대 소정까지 29명이 약 1000년간 다스리게 되므로 논리.. 2015.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