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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15

문원영화 발해(渤海) 번역문 홀한주자사(忽汗州刺史)·발해군왕(渤海郡王) 대무예(大武藝)에게 칙서를 보낸다. 경이 형제지간에 서로 다툰 탓에 문예(門藝)가 곤궁하여 나에게 돌아왔으니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를 서쪽 변경에 둔 것은 경을 위한 까닭이었으니, 또한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자못 제 자리를 얻은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경은 바다 모퉁이에 있으면서 당의 문화를 항상 익혔으니, 형제간의 우애 같은 것을 어찌 익힐 필요가 있겠는가? 골육간의 정은 깊어 스스로 차마하지 못하는 바이다. 문예가 비록 과오가 있더라도 또한 그 뉘우침을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경은 마침내 (문예를) 데리고 동쪽으로 돌아가고자 요청하지만 (그 의도는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 짐은 효성와 우애로써 천하에 가르쳐왔으니 어찌 이런 일을 차.. 2009. 12. 28.
왜 발해(渤海)라고 이름지었을까? 그 어원에 대하여 고조선은 여러 개의 봉국을 가지고 있었던 거대한 나라였습니다. 그중 고조선의 서남쪽에 람국(藍國)이란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이름으로부터 현재의 발해(渤海)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 같군요. 람국의 위치《규원사화》蚩尤氏之後, 封于南西之地, 巨野浩豁, 海天靚碧, 曰藍國, 宅奄慮忽. 치우씨의 후손에게는 서남쪽의 땅에 봉하니, 거대한 들녘은 매우 광활하고 바다와 하늘은 밝고 푸르기에 람국(藍國)이라 이름하고 엄려홀(奄慮忽)에 자리잡아 다스리게 하였다. 고조선의 중심지를 대릉하와 서납목륜하 주변으로 본다면 그곳은 서남쪽은 북경과 천진 부근이고 이 부근에 람국(藍國)이 자리잡았다는 것이죠. 고대로부터 나라의 중심 도읍은 큰 강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람국(藍國)에도 강이 있었을텐데 나라 이름을 따서 람.. 2009. 12. 26.
신시(神市)와 단군조선과 발해는 다 같은 뜻이다 - 환웅이 세웠다는 神市일반적으로 "신시"라고 읽죠.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의 저잣거리"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과연 저 시대에도 저잣거리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아마도 없었을겁니다. 자급자족하던 시기였을거에요.많은 분 주장하기를 市는 "시(부수巾 + 2획)"자가 아니라 "불(부수巾 + 1획)"자라고 합니다.왜냐하면, 고대에 "불"이란 단어는 도회(都會)와 야지(野地)의 뜻이기 때문에 "신불(神市)"의 뜻은 바로 "신의 나라" 정도가 되기때문입니다. 혹은 "신의 밝은 나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 임검이 세운 조선임검의 조선이 그 뜻을 파악하는데 저를 매우 어렵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임검의 나라는 조선이 아닙니다. 조 선은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바, 주신(珠申)의 전음(轉音)이라.. 2009. 12. 18.
책부원귀 발해전 번역 현종 선천(先天) 2년(713) 2월에 말갈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봉하였다. 대조영은 성력(聖曆) 연간에 스스로 진국왕(振國王)으로 등극하였다. 영주(營州)에서 동으로 2000리나 되고 군사가 수만명이나 되었다. 이에 이르러 낭장(郎將) 최흔(崔訢)을 보내 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員外大將軍), 발해군왕으로 책봉하고 의연히 그를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으로 삼았다. 이때로부터 해마다 사절을 보내 조근하고 공물을 바쳤다. 玄宗先天二年(713) 二月 拜高麗大首領高定傅爲特進 是月 封靺鞨大祚榮爲渤海郡王(大祚榮, 聖曆千自立爲振國王在營州東二千里. 兵數萬人, 至是, 遣郞將崔訢往冊命祚榮左驍衛員外大將軍渤海郡王. 仍以其所統爲汗州都督, 自是每歲遣使朝貢.) 개원(開元) 7년 3월에 홀한주도독, 발해군왕 대조영이 .. 2009.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