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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15

신당서 발해 열전 번역문 바다와 접해 있으니 일본으로 통하는 길[日本道]이고, 남해부는 신라로 통하는 길[新羅道]이다. 압록부는 당나라에 조공하러 가는 길[朝貢道]이고, 장령부는 당나라 영주로 통하는 길[營州道]이며, 부여부는 거란으로 통하는 길[契丹道]이다. 발해의 민간에서는 임금을 가독부(可毒夫)라고 부르지만 보통 성왕(聖王) 또는 기하(基下)라고 한다. 임금의 명령은 교(敎)라고 한다. 임금의 아버지는 노왕(老王), 어머니는 태비(太妃), 왕비는 귀비(貴妃), 큰 아들은 부왕(副王), 다른 아들은 왕자(王子)라고 부른다. 관청으로는 선조성(宣詔省)이 있는데, 좌상(左相), 좌평장사(左平章事), 시중(侍中), 좌상사(左常侍), 간의(諫議) 등의 관리가 소속되어 있다. 중대성(中臺省)에는 우상(右相), 우평장사(右平章事), 내.. 2009. 12. 31.
신당서 발해 관련 기록 번역문 개원(開元) 20년(732) 9월 을사일 발해말갈(渤海靺鞨)이 등주(登州)를 공격하니, 자사(刺史) 위준(韋俊)이 죽었다.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 개복신(蓋福愼)이 토벌하였다. 대력(大曆) 14년(779) 윤5월 병자일 여러 주와 부 및 신라와 발해에서 해마다 바치는 매를 그치도록 하였다. 2009. 12. 30.
구당서의 발해 관련 기록 모음 개원(開元) 7년(719) 3월 정유일 발해말갈군왕(渤海靺鞨郡王) 대조영(大祚榮)이 죽고 그 아들 (대)무예(武藝)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개원 14년(726) 12월 신축일 발해말갈(의 왕)이 그 아들 의신(義信)을 보내어 내조(來朝)하고 아울러 특산물을 바쳤다. 개원 16년(728) 봄 1월 갑자일 흑수말갈(黑水靺鞨)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개원 20년(732) 9월 을사일 발해말갈이 등주(登州)를 공격하여 자사(刺史) 위준(韋俊)을 죽였다. 좌령군장군(左領軍將軍) 개복순(蓋福順)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토록 하였다. 개원 26년(738) … 이해에 발해말갈의 왕 대무예가 죽고 그 아들 (대)흠무(欽茂)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대흠무를 책봉하였다. 개원 29년(741) 가을 7.. 2009. 12. 30.
구당서 발해 열전 번역문 渤海靺鞨의 대조영(大祚榮)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별종(別種)이다. 高句麗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가족과 무리를 이끌고 영주(營州)로 옮겨와 살았다.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만세통천(萬歲通天)(696)에 거란인(契丹人) 이진충(李盡忠)이 영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대조영과 말갈인(靺鞨人) 걸사비우(乞四比羽)가 각각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나 험준한 곳을 지키며 스스로 방비하였다. 이진충이 죽자 측천무후는 좌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에게 이진충의 잔당을 토벌케 하였다.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는 먼저 걸사비우를 격파하여 참하고, 다시 천문령(天門嶺)을 넘어 대조영 군대를 압박하였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무리를 규합하여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에 항거하니, 당나라 군대가 대패하고 .. 2009.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