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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6

발조선은 하나의 나라이다 하나의 나라인 發朝鮮을 發, 朝鮮으로 보는 것은 지나인들이 찍어 놓은 방점에만 의지하여 사서를 해석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이렇게 두개의 나라로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나인들이 근대에 만들어 놓은 사서의 표점교본에서 發朝鮮을 發, 朝鮮으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발조선이 나온 사서의 기록을 하나씩 봅시다. 1. 관자 권 23 - 發朝鮮之文皮一筴也 (발조선의 문피도 그중에 하나 낀다. 즉 발조선의 문피도 좋다라는 말입니다) - 八千里之發朝鮮 (발조선까지 8백리) - 發朝鮮不朝 (발조선이 조공하지 않다) 관자에서 발조선을 발과 조선의 문피다라고 해석하면 아주 우습습니다. 안그렇습니까? 저렇게 동시에 조공도 안構?8백리로 위치도 같고 문피도 똑같이 나는 곳이 두 나라다라는 것은 똥인지.. 2012. 9. 5.
환단고기 편찬자가 손보아 고친 부분 의심 우선 환단고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환단고기는 편저자가 손보아 고친부분이 좀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서론에 繕寫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환단고기를 읽는데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더러 있죠. 제 가 제시하는 문제점은 고조선 삼한의 위치입니다. 환단고기는 삼한관경에 대해서 진조선은 만주, 번조선은 하북과 요서, 마조선은 압록강 이남으로 비정하고 있죠. 그러나 제가 앞서 남은(南殷)에 대한 글을 올렸었고, 마조선은 절대 압록강 이남에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번조선보다 더 서남쪽에 있었던 나라입니다. 위치 비정을 다시하면 - 진조선 요녕성과 만주, - 번조선은 하북성, - 마조선은 산동과 하남 등지일 것입니다. - 변진은 압록강 이남으로 추정됩니다. 번한과 변진을 같은 세력으로 보는.. 2012. 9. 5.
단군나라의 이름은 조선(朝鮮)이 아니라 신단(辰檀)이다. 단군이 세운 나라를 삼국유사에서는 "조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삼국유사를 지은 때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은 후이고 이때는 이미 모화사상이 팽배하여 우리나라 역사가 왜곡될대로 왜곡된 시기일 것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이 어디서 처음에 기록되었을까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단군이 세운 나라의 이름이 과연 "조선"이었는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기자와 위만의 나라 이름의 유래 조선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는 곳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 중 조선열전입니다. 史記卷一百十五, 朝鮮列傳苐五十五 (集解張晏曰朝鮮有濕水洌水汕水三水合為洌水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중략....)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為置吏築鄣塞...중략....遼東太守卽約滿爲外臣. (집 해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 열수 산수 등 3개의 강이.. 2012. 9. 5.
요나라 태조가 낚시를 한 압록강은 어디인가? 요 태조가 901년 본부의 이리근이 된 이후 사방을 정벌하기 시작하여 907년 칭제를 하였는데, 요사를 보면, 칭제한지 9년(915년)되는 겨울 압록강에서 낚시를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압록강이 현재의 한중 경계의 것이라면, 발해의 최고 동쪽에 있게 됩니다. 태조가 발해를 공격기 위해 거병한 것은 925년(천찬 4년 겨울 12월 을해일)이며, 926년(천현 원년) 봄 정월에 부여성과 홀한성을 깨뜨리고 발해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7월에 다시 부여부로 갔다가 그 곳 행궁에서 55세를 일기로 죽었습니다. 915년에는 주위 제부를 정복하기에 바쁜 때 입니다. 다음은 요사 본기 태조 상의 기록입니다. 冬十月戊申,鉤魚於鴨淥江。新羅遣使貢方物,高麗遣使進寶劍,吳越王錢鏐遣滕彥休來貢。是歲,君基太一神數見,詔圖其.. 2012.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