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118

구려(九黎)와 이(夷)라고 부른 이유 고대에 天(천)을 “덩글”로 정도로 불렀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은 하늘을 크고 넓다랗고 둥그런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음가는 정확한 것이 아니며 “동글”, “둥글”, “댕글”, “당갈”, “단간” 등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크고 넓다랗고 둥그런 하늘에 있는 이를 가리켜 “덩글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훈음병차하여 “덩글”은 丸(환)으로 쓰고 “이”는 仁(인)으로 써서 丸仁(환인)이라 하였지만 불교가 융성해짐에 따라서 丸仁(환인)이 桓因(환인)이 되었다고 하였다. 쉽게 풀이하면 丸仁(환인)이란 곧 “대가리”라는 말이라고 하였다. 또한 덩글이「丸仁(환인)」의 아들을 “환웅”이라 하지만 이 역시도 丸雄(환웅)이라고 써야 한다. 雄은 그 뜻이 “수ㅎ”인데 이는 고대에 男神(남신)의 의미를 갖고 .. 2011. 11. 13.
조선사연구초: 前後 삼한 考 1. 인용서의 선택 1.1. 인용서의 진위 변별 아직 지중 발굴이나 고적 탐사나 고물 연구 같은데 지식과 기구가 모두 부족한 우리로서는 우리 고사를 연구하려면 오직 고인의 끼친 서적으로 자료삼을 뿐인 것은 물론이다. 서적이라면 우리의 것뿐 아니라 隣國의 것도 가하며, 往代의 소위 正史라는 것보다도 혹 신화 소설 妖談 잡서에서 직접 혹 간접으로 사적 가치를 더 얻는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는 선택할 줄을 안 연후의 일이라, 어찌 아무 변명도 없이 조선에 관한 기재만 있으면 산해경이나 죽서기년이나 抱朴子나 博物誌같은 것을 가치를 묻지 않고 인용하며, 후인의 위조라고 擧世가 다 말하는 堯典과 禹貢의 嵎夷니 島夷니 하는 것을 가져다가 4,5천년전 조선사의 한 페이지를 채우려 함은 또한 가소한 일이 아니냐. 페리.. 2011. 11. 13.
조선사연구초: 평양 패수 考 평양패수고 상권[1] 1. 서언 평양은 신지비사(神誌秘詞: 고려사 金謂磾傳에 보임) 가운데 古 3京의 하나인 百牙岡이요, 조선 문명이 발생한 7대 강의 하나인 浿水가의 서울이라. 그러나 시대를 따라 지명이 遷徙했으므로 만일 지금 패수 대동강을 옛날 패수로 알고, 지금 평야 평안남도 首府를 옛 평양으로 알면 평양의 역사를 그릇 앎일 뿐 아니라 곧 조선의 역사를 그릇 앎이니, 그러므로 조선사를 말하려면 평양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丸都가 어디냐. 卒本 이 어디냐. 安市城이 어디냐. 迦瑟那가 어디냐. 백제의 6方이 어디냐. 발해의 5京이 어디냐. 이 모든 지리가 조선사상 누백년래 未決訟案이다. 그러나 그 가장 중요 도 유명한 송안은 평양의 위치가 어디냐의 문제이다. 왜 그러냐 하면, 평양 위치의 문제만 결정되.. 2011. 11. 13.
조선사연구초: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1. 교정의 이유 조선사 연구의 제목을 가지고 하고로 중국 위진시대 사관이 지은 삼국지 동이열전 같은 것을 취하는가. 조선 고문헌이 너무 멸망하여 상고의 조선을 연구하자면 마치 바빌론고사를 연구하는 자가 헤로도투스의 희랍사를 참고하지 아니할 수 없음과 같이 중국 고사에 힘입은 것이 적지 아니하나, 다만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쓰인 조선열전은 중국 망명자로 조선의 一隅를 도거(盜據)한 衛氏 일가가 漢과 대항하던 略記니 조선열전이라느니보다 도리어 중국 流賊의 침략사라 함이 가하며, 남북사, 수서, 당서 등의 동이열전은 비교적 상비(詳備)하나 또한 각기 당시 중국에 관계된 일만 적었으니 이는 漢族의 外競史라 함이 가하거니와, 위진시대의 사관들은 그렇지 아니하여 단군왕검의 건국이 왕심의 위서에 보이며, .. 2011.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