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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23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5) 기자의 본향 ‘고죽국’ ㆍ‘천하통일 상징’ 청동솥은 신앙의 대상 그렇다면 기자(箕子)가 은 유민(遺民)들을 이끌고 찾아간 본향, 즉 고죽국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일까. 고고학 자료와 문헌을 잘 따져보자.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기자가 돌아간 옛 조상의 땅으로 대략 4곳을 꼽는다. 카줘 베이둥 2호 교장갱에서 확인된 짐승 문양의 청동솥(정). 정은 원래 정권의 상징물이자, 천·지·인을 연결해주는 보물로 여겨졌다. 먼저 롼허 하류설. ‘사기정의(史記正義·주석서)’는 “고죽성은 노룡현 남쪽으로 12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은나라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城在盧龍縣 南十二里, 殷時諸侯孤竹國也)”이라 했다. 누룽셴은 오늘날의 롼허 하류에 있다. 두번째는 산하이관(山海關)설. ‘요동지(遼東志)’ 지리지는 “순임금~하나라 땐 북기(北冀)의 동북을 .. 2011. 8. 25.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4) 기자, 본향으로 돌아가다 ㆍ기자조선, 中 제후국 아닌 동이족 독립국 BC 1046년. 주나라 무왕이 은(상)의 주왕(紂王)을 죽이고 은(상)의 554년 역사를 종식시켰다. 이것은 동북아 고대사의 판도를 뒤바꾼 대사건이었다. 한족(漢族)의 하(夏·BC 2070~BC 1600년)를 무찌르고 동아시아의 주인공이 된 동이족의 천하가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한족(하)~동이족(은상)~한족(주)으로…. 베이둥 방정(사각 솥) 속 바닥에는 ‘기후(箕侯)’ 명문 그 과정은 너무도 드라마틱하다. 주 무왕은 주나라의 수도인 펑이(풍읍·豊邑, 산시성 치산·岐山 부근)에서 전차 300대와 용·갑사 4만5300명을 직접 이끌고 출정했다. 그러자 주왕의 학정에 못이긴 은(상)의 제후들도 전차 4000여대를 지원했다. 은 주왕은 70만 대군을 동원, 그.. 2011. 8. 25.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3)동이가 낳은 군자들 ㆍ공자·기자·백이·숙제 모두 동이족의 후예 이젠 미스터리의 세계다. 29년 전 폭풍을 일으켰던, 그렇지만 지금도 미해결로 남아있는 고대사, 즉 기자와 기자조선, 고죽국, 그리고 고조선의 세계로 빠져들자. 랴 오닝성 카줘 베이둥에서 확인된 방정(方鼎·사각형 솥). 이 방정의 바닥에 ‘기후(箕侯)’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기자와 기자조선의 흔적을 짐작할 수 명문이다. 지금 선양 랴오닝성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973년 랴오닝(遼寧)성 카줘(喀左)현 베이둥(北洞) 구산(孤山)에서 확인된 ‘기후(箕侯)’명, ‘고죽(孤竹)’명 청동기부터 이야기 하련다. “임시로 집어넣은 교장갱에서 발견된 청동기들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두 곳 다 청동기 6점이 질서정연한 세트를 이루고 있잖아요. 또 발견 지점이 다링허.. 2011. 8. 25.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2)고대사의 뇌관을 건드리다 ㆍ고대사 뒤흔든 “기자조선은 실존했었다” 문 화대혁명이 대륙을 강타하고 있던 1973년 3월. 분서갱유처럼 역사와 학문이 산산이 파괴되던 그 잔인했던 대륙의 동북쪽이었다. 한 농부가 랴오닝(遼寧)성 카줘(喀左)현 성 소재지인 다청쯔(大城子)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다링허(대릉하·大凌河) 유역 남안의 작은 구릉, 즉 구산(孤山) 베이둥(北洞)을 찾았다. 채석작업을 벌이던 농부는 깜짝 놀랐다. 표면에서 불과 30㎝ 밑에서 모두 6점의 은(상)나라 시대 청동기가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청동 항아리 1점과, 청동제 술그릇(뢰) 5점이었는데, 모두 주둥이가 위를 향해 있었다. 희한했다. 제2호 청동 술그릇의 주둥이 안에 이상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 고죽, 기후 명 청동기 6자였다. 그 런데 .. 2011.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