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匈奴)와 예(濊)와 신라는 서로 통한다
사건의 일치 《환단고기》 濊邑叛命余守己(斬其酋素尸毛犁)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부여(余)에게 명하여 지키고 다스리게 한 후 (추장 소시모리를 참수하게 하였다.) (•)의 부분은 진위가 의심되니 이 글에서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단군임검때로 올려잡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 예濊를 토벌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기사가 단군임검때에 규원사화에 존재합니다. 《규원사화》 御國四十餘載, 而有猰猶之亂. 猰猶兪者, 獫狁之屬也, ...중략..., 卽使夫餘會集中外之兵, 討平之. 乃益封夫餘, 北方之地, 使宅牛首忽卽先平壤, 使夫婁居壬儉城, 令夫蘇修樂浪忽, 夫虞監唐莊京, 更封高矢氏於南方之地. 건 국한지 40여 년만에 알유猰猶의 난이 있었다. 알유猰猶는 험윤獫狁의 족속으로...중략... 부여로 하여금..
200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