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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한단고기 마한세가 번한세가 역년을 비판한 강단사학에 대한 반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28.
강단사학계는 한단고기에 나온 단군세기, 마한세가, 번한세가의 역년(歷年)이 상식에 어긋난다고 비판합니다. 이유는 고조선 약 2000년간 다스린 임금이 47명인데 번한의 임금은 74명이며 마한의 임금은 35명이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번한의 임금은 앞의 1000년간 치두남에서 소정까지 29명인데 뒤의 1000년간 서우여에서 기준까지 45명이기 때문에 더욱더 믿을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기만하고 역사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한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한단고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단군, 번한, 마한이 차이가 나게 되었는지 개천(開天)부터 시작하여 그 대략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1. 한님나라(桓因) 

桓因이란 환국의 오자도 아니고, 사람 이름도 아니고, 하느님이란 말도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나라" 즉 "한님나라"라는 말입니다. 
國 이란 본래 제후국(諸侯國)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종국(宗國)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국(桓國)이란 표현은 쓸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일연스님은 桓因이라고 한 것이며 桓因은 "한님나라"로 번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를 여러사람들이 여러시대에 걸쳐 필사를 하다보니 桓因에 나라를 뜻하는 國자가 빠지자 桓因은 桓國으로 고치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桓因이라 쓴 삼국유사도 있고 桓國이라 쓴 삼국유사도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數意天下 란 이렇게 번역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님나라(桓因이란 제석帝釋 즉 하느님이란 뜻이다)가 있었다. 서자 환웅이 천하의 뜻을 품어..."

우 리민족은 본래 나라國이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한님이 만든 것이고 한님이 통치하는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최초의 나라는 한님나라(桓因)이며 그것을 통치하는 자도 한님(桓因)이 되는 것인데 나라이름 뒤에 國자를 붙이는 것은 불가하기에 통치자이름과 나라이름이 똑같이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2. 밝한님나라(神市) 

제가 전에 단국(檀國)과 신불(神市)은 같은 뜻인데 이유는 神의 옛 글자가 (示+旬+旦)이기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신불((示+旬+旦)市, 檀國)을 훈독하면 "밝한님나라" 즉 "밝은 하느님의 나라"라고 읽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는 "한님나라"이며 나라國는 하느님이 없이는 생각도 할 수 없으므로 나라國를 뜻할때는 꼭 "한님나라"라고 해야 했던 것입니다. 

3. 朝鮮 

역사해석의 오류는 보통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朝鮮을 아침이 밝아오는 동쪽의 나라이기에 "아사나라"라고 하는데 식민사관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쪽이란 말은 지나를 중심에 두고 우리를 동국(東國)으로 보는 사관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朝鮮이란 무엇일까요? 해답은 삼국유사 단군사화에 있습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웅녀(熊女)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는데 이가 朝鮮을 건국하였습니다. 이 사화(史話)가 뜻하는 바는 朝鮮이라는 나라는 하느님족(桓因族)과 웅족(熊族)의 연합하여 건국되었다라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족(桓因族)은 그 시초가 하느님나라(桓因)인데 웅족(熊族)은 누구인가하면, 자신들을 지상에서 최고라고 믿는 민족입니다. 熊이란 "웅"이 아니라 "고마"라고 읽어야 하며 이는 최고 최상의 의미가 됩니다. 朝鮮은 천신족(天神族)과 최고족(最高族 ?)이 연합하여 세운 국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朝鮮이란 두 민족의 연합이므로 朝나라와 鮮나라를 합하여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앞에서 제가 나라國을 우리민족이 표현할때에는 꼭 "한님나라"로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韓"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韓을 관경(管境)으로 보는 것은 크게 틀리지 않으나 韓을 汗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즉, 朝鮮의 朝는 朝韓인데 朝는 "밝다"는 뜻이므로 이를 달리 표현하면 밝한님나라(辰韓, 신한)이 되나 그 뜻에 충실히 하여 쓰면 신한(晨韓)으로 써야 할 것입니다. 鮮은 뜻은 선명(鮮明)인데 이는 "맑다"의 뜻이되며 鮮이라는 나라는 "맑한님나라" 즉 "맑은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데 이를 이두식으로 표현하여 馬韓(마한)이 되는 것입니다. 馬를 "마"로 읽지 않고 "말"로 읽어야 하기 때문에 馬韓은 "맑한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辰韓은 대략 조백신하(潮白新河)의 동쪽이며 馬韓은 대략 조백신하(潮白新河)의 서쪽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는 삼한(三韓) 중에 변한(卞韓)은 어디갔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삼한관경제라는 것이  朝鮮의 건국초기부터 형성되었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아래와 같은 기록때문입니다. 변한(卞韓)이 형성된 것은 부루(夫婁) 이후부터입니다.

夫餘之平南夷也, 洌水以南, 完服王化, 以故靑丘之民, 得漸遷居, 及洪水旣平, 南渡者益多. 於是南夷之人, 幷沾於神化, 遂變其俗, 後之辰弁諸族, 皆是也.
부 여가 남쪽의 이인(夷人)들을 평정하니 열수(洌水)의 남쪽은 완전히 왕의 교화에 복종하게 되었으며, 그 까닭에 청구의 백성들이 점차 옮겨가서 살게 되었고, 홍수가 완전히 다스려진 뒤로는 남쪽으로 넘어가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이로서 남쪽의 이인들도 함께 신인의 교화에 물들어 마침내 그 풍속이 변화하였으니, 후의 진(辰) 변(弁)의 뭇 부족들이 모두 그들이다.

여기서 辰弁諸族은 弁辰諸族를 북애자가 역사를 잘못이해하여 고쳐쓴 것으로 짐작됩니다. 조선시대 대부분 사람들이 삼한은 압록강 이남에 위치하였다고 믿었기에 고시씨의 후손 중에 열수 남쪽으로 넘어간 자들만을 弁辰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기에 고쳐쓴 것이라고 저는 판단됩니다. 고조선 삼한이란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였을때 생겨난 것이 아니라 후대에 이르러 생겨났으며 건국 초기에는 하느님족(桓因族)과 웅족(熊族)이 연합한 나라라는 것을 삼국유사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朝鮮의 역년은 약 2000년이 아니라 약 1000년이다

한 단고기 단군세기에 朝鮮의 역년이 약 2000년이라고 나와 있으나 규원사화에는 朝鮮의 역년은 약 1000년이라고 나오는데 제가 볼때 단군세기는 틀렸고 규원사화가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규원사화가 朝鮮의 역년을 1000년으로 한 것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정당화하려고 일부러 역년을 줄였다고 생각하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규원사화에 분명히 고열가 이후로 정권을 잡은 것은 기자조선이 아니라 람국(藍國)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보기에는 단군세기 계통의 사서들이 람국의 역사는 모른체 기자조선을 숨기기 위하여 일부러 역년을 늘렸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朝鮮 역대 1205년 동안 47명의 임금이 있었으므로 평균 25.6년이 되는데 재위년도는 크게 무리가 없는 재위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번한세가 앞의 1000년간은 겨우 29명이냐 하실분이 계실것입니다. 그것은 다음 람국(藍國)에서 설명하겠습니다. 

4. 藍國, 朝鮮의 대를 잇다

규원사화에 분명히 기록합니다. 고열가 임금 전 보을 임금때에 이르러

藍侯遂總師帥諸侯, 朝覲者, 遂稀
람국의 제후가 드디어 모든 제후들을 총괄하게되니 신한(辰韓)에 와서 임금을 뵙는자가 드물었다.

규원사화에 나오는 藍國은 어떤 나라인가 하면 한단고기에 나오는 番韓입니다. 왜냐하면 그 1대 임금이 같기 때문이죠. 규원사화에는 藍國의 1대 임금이 치우의 자손이라 하였고, 한단고기에도 番韓의 1대 임금이 치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藍國은 서우여가 정권을 잡아 朝鮮의 정통을 잇기 전까지는 朝鮮의 제후국이므로 임금의 대수代數와 임금의 세수歲數가 일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후는 다음 대로 물려주는데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에 아들에게 물려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국宗國의 경우는 다릅니다. 사서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부자상속도 되고 형제상속도 되고 때로는 혁명으로 금방 물러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서우여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인 치두남에서 소정까지는 1048년간 29명이 임금을 한 것인데, 서우여부터 기준까지 1091년까지는 45며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국(宗國)의 제후로 있을때와 제후국으로 있던 나라가 종국이 되었을때 임금의 역년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람국(藍國) 맑한님나라(馬韓)가 왜 번한세가(番韓世家)에 적혔있느냐?

람국(藍國)의 위치를 잘 살펴보면 고조선 서남쪽이므로 대략 북경 근처입니다. 
이는 연국(燕國)의 북쪽에 해당되는데 관자에서는 이 나라를 일컬어 발조선(發朝鮮)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한단고기에 나오는 번한(番韓)에 해당됩니다. 발發은 번番으로 음사한 것입니다. 

람국(藍國)을 또한 다르게 표현한 것이 있는데 사서에 람이(藍夷)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해동역사에 보면 람이(藍夷)는 곧 풍이(風夷)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藍의 뜻은 "파랗다"이며 국가명이 "파람"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아마도 "파람"을 "바람"으로 근사하여 바람(風)이라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 발조선과 연관시켜 생각하면 藍나라라는 것은 결국 發藍(발람)이며 이를 "바람"으로 보았던 것이죠. 그래서 람이(藍夷)가 풍이(風夷)가 되는 것입니다. 

즉, 朝鮮때에 맑한님나라(馬韓)의 제후국이었던 람국(藍國)이 朝鮮을 대신하여 나라를 열었고 藍이란 원래 풍사風師 치우蚩尤의 자손들의 나라이기에 바람을 음사하여 발람(發藍)이라 했으며 지나인들은 이를때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여 발조선(發朝鮮), 람이(藍夷), 풍이(風夷)라 했던 것인데, 한단고기에서는 발람(發藍)나라를 음사하여 번한세가(番韓世家)에 넣은 것은 한단고기 저자가 신한(辰韓) 정통의 사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 한단고기 마한세가는 누구인가?

朝鮮 때에 馬韓이 藍國이고 서우여가 대권을 잡은 뒤 發藍이 되었다면 한단고기에 나오는 馬韓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듭니다. 정확한 답을 구하지 못하였지만 제 추측은 이렇습니다. 우리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시기는 서우여가 정권을 잡은 뒤부터 진개침략 이전입니다. 즉 發藍나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갖는 한님나라라기보다는 전쟁을 통하여 국가의 영토를 팽창시켰던 정복국가였던 것입니다. 發藍은 산동성 하남성은 물론이고 회수(淮水)를 너머까지 영토를 가졌으며 서안(西安)지방까지 침략하여 려국(黎國)을 세웁니다. 규원사화에는 견융(犬戎)들과 같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확신하건데 서안(西安)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12세기~6세기경 發藍 임금들의 무덤일 것입니다. 

서우여가 정권을 잡은 시기에 정복국가의 면모를 취한 發藍에 찬동하지 아니하고, 홍익인간 정신의 한님나라의 정통을 잇고자 서우여에 반기를 든 자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맑한님나라(馬韓)을 세우고 밝왕(辰王)이라 칭하였던 자가 있었을텐데 이가 바로 마한세가에 나오는 웅씨족(b熊氏族) 제후(伯)인 다(多)라는 인물로 한단고기에는 熊伯多로 적혀있습니다. 한단고기 저자는 아마도 서우여부터 시작된 馬韓을 단군조선 건국시로 늘려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밝한님나라辰韓 정통 사관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 신라 선조인 진한(辰韓)은 진한(秦韓)이 맞다. 

신라 선조인 辰韓이 과연 단군조선때에 밝한님나라인 辰韓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을 馬韓에서 뽑았다고 하였기 때문이죠. 이들은 전쟁을 피하여 동으로 이동한 자들입니다. 사서에 진역(秦役)을 피하여 왔다는 말은 진(秦)나라와의 전쟁(戰役)을 피하여 왔다는 말입니다. 즉, 發藍은 정복국가의 면모를 취하였기에 주변나라와 전쟁을 많이 하였고 이러한 것은 중국의 진秦과 충돌을 일으켰을 것이 뻔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秦役이란 秦과의 戰役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나인들은 진한(秦韓)이 진(秦)나라 사람이라는 말도안되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들은 發藍 사람들 중에 秦과의 전쟁을 피하여 馬韓에 온 사람들입니다. 

6. 發藍은 東胡이다.

우리역사상 가장 서쪽에 있었던 發藍은 진개와의 전쟁으로 2000리의 영토를 잃기 전까지는 아주 강대한 국가였습니다. 이후로 發藍은 결국 箕準에 이르러 發藍의 서쪽에 봉국으로 있던 위만에 나라를 빼앗기고 熊伯多가 건국한 馬韓으로 들어가 왕위를 빼앗습니다. 그리고 위만은 漢國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그곳에 漢國의 郡이 설치됩니다. 역사의 흐름이 이러하므로 위만조선과 낙랑군과 현도군은 절대 북경 동쪽으로 위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단고기의 고조선 역대 임금들은 마한세가를 제외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밝한님나라辰韓에서 맑한님나라馬韓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한단고기는 밝한님나라辰韓 정통으로 사서를 편찬하였기에 강단사학자들은 번한세가과 단군세기 역년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史通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사서를 단편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