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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옛 마을과 그 이름 찾아 나서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0.


-흔한 마을 이름들과 그 이름의 참뜻 캐어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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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서울시 교통연수원

 

한 자로 표기된 땅이름 중에는 소리빌기(音譯)에 의해 된 것도 있고, 뜻빌기(意譯)로 된 것도 있다. 지금의 한자나 한글로 나타난 땅이름을 보고 그것을 무조건 글자 그대로 그 뜻을 풀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땅이름은 그 생긴 지역의 언어 특성이나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데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그 원형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표기하는 사람들의 표기 방법에 따라 똑같은 땅이름도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땅이름의 연구에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옛말, 방언, 음운 현상 등 언어 지식을 필요로 한다. 많은 땅이름을 접하면서 우리말과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전국에 깔려 있는 땅이름 중에서 흔한 것 몇 가지를 골라 자칫 글자의 함정에 빠져 엉뚱한 풀이를 할 수 있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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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와 관계없는 '가재울(가잿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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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에는 '가재울'이라는 땅이름이 무척 많다. 그리고, 비슷한 땅이름에 '가잿골', '가잿말' 등이 있는데, 대개 가재가 많아 그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고들 있다. 한자로는 주로 음차(音借)되어 '가좌(佳佐.加佐)'로 표기되고 있다.

가재목(加佐); 경북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加佐里)

가재올(佳材月); 경기 용인시 원삼면 가재월리(佳材月里)

가재울(佳才); 경기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佳才里)

가재울(加佐); 경기 고양시 일산구 가좌동(加佐洞)

가재울(加佐); 경기 이천시 부발읍 가좌리(加佐里)

가재울(佳佐); 충북 청원군 남이면 가좌리(佳佐里)

가 재가 많아 정말 '가재울'일까? 그렇다면 '붕어골', '새웃골' 같은 것은 왜 별로 없을까? '가재울'이나 '가잿골' 중에는 '가장자리'의 뜻으로 이름 붙은 것이 무척 많다. 즉, 들의 가장자리거나 내의 가장자리에 있을 때 이러한 이름이 곧잘 붙는다.

'衾(갓,갖)'은 '가장자리'의 옛말이다. 이 말과 '마을'의 뜻인 '울' 또는 '골'과 합해질 때 그 사이에 '애'가 개입되어 이런 이름이 될 수 있다.

갖+울=갖애울>가재울

갖+골=갖애골>가재골(가잿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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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과 관계없는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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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한쪽이 삐죽하게 튀어나간 곳이 '곶'이다. 황해도 서해안의 '장산곶'이나 서울 성동구의 '살곶이' 같은 땅이름의 '곶'도 그런 뜻이겠다.

곶의 안쪽이면 '곶안(高棧)', 곶의 바깥쪽이면 '곶밧'과 같은 땅이름이 나온다. '밧'은 '밖'의 옛말이다.

곶+안=곶안>고잔

'고잔'이란 땅이름은 서해안 일대에 무척 많다.

고잔(高棧); 인천시 남구 고잔동(高棧洞)

고잔(高棧);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高棧洞)

고잣말(高尺);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고척리(高尺里)

'곶의 바깥쪽'이란 뜻의 '곶밧'은 경음화(硬音化)하여 '꽃밭'으로도 옮겨갔다. 의역되어 한자식 지명 '화전(花田)'이 되기도 했다.

꽃바테(花田);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수촌리 화전(花田)

꽃밭(花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花田洞)

꽃밭(花田);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花田里)

'곶'은 '대개 '꽃'으로 변해 '곶나리'는 '꽃나리'로, '곶내'는 '꽃내'로, '꽂마'는 '꽃마'로 옮겨갔다.

꽃나리(花蝶);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면 화접리(花蝶里)

꽃내(花川); 경북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花川里)

꽃마(花山); 경북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花山里)

꽃메(花山); 경기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의 화산(花山)

꽃가름(花洞);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금등리의 화동(花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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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꿩'과 관계없는 '꿩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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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의 옛말 또는 방언은 '구억'이다. 그리고, 이 말의 뿌리·

말은 '語'이다. 이 '語'은 '구시', '구세', '구이(귀)' 들의 말로도 옮겨지면서 많은 관련 땅이름을 이루어 놓았다.

구서(久瑞);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久瑞洞)

구셋골(九水谷);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서하리의 구수곡(九水谷)

'구석'의 방언 '구억'과 '마을'이란 뜻의 '말'과 합해지면 '꿩말'까지도 갈 수 있다.

구억+말>구억말>구엉말>꾸엉말>꿩말

그래서, '구억'이나 '꿩'자가 들어간 땅이름 중에는 '구석의 마을'이란 뜻의 것이 많다.

구억말(九億);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장등리의 구억리(九億里)

구억말(九億); 충남 금산군 제원면 구억리(九億里)

구억(九億); 제주 남제주군 대덕면 구억리(九億里)

궉말(꿩말);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시미리의 궉말

꿩마(雉洞); 경북 예천군 풍양면 풍신리의 치동(雉洞)

꿩매(雉山); 전남 영광군 군남면 설매리의 치산(雉山)

꿩뫼섬(雉島); 전북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雉島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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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과 관계없는 '노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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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다'는 말을 전라도쪽에서는 '누릅다(노릅다)', 충·

청 도쪽에서는 '느릅다', 경상도나 강원도쪽에서는 '널따'라고 많이 한다. 땅이름에서도 '넓다'는 뜻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넓다'는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 많다.

'넓다'는 뜻의 '너르'가 '누르'가 되어 '누렇다'는 뜻으로 간 것도 있고, '노루(獐)'가 된 것도 있으며, '널'로 되어 '날판지'의 뜻으로 간 것도 있다. '널'이 '날'로 되어 '날다'의 뜻으로까지 간 것도 있다.

날뫼(飛山);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飛山洞)

너(널)다리(板橋);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板橋洞)

너른바우(廣石); 경남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廣石里)

널기미(板龜尾); 경북 경주시 안강면 두류리의 널기미(板龜尾)

노루목(獐項);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獐項里)

누렁구지(黃口池); 경기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黃口池里)

누렁골(黃山); 전남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黃山里)

누렁골(黃山); 경북 경주시 안강면 두류리의 널개

누렁골(黃谷); 전북 김제시 금산면 장흥리의 황곡(黃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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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과 관계없는 '독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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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 '독(甕)'일 수도 있지만, '돌(石)'일 수도 있다.·

' 돌'의 옛말은 '閪'인데, 이것이 '독'으로 되었다가 '항아리'와 관련된 땅이름처럼 보여 지형이 독과 같아 그렇다든가, 독을 구웠던 곳이라든가 하는 식의 풀이가 나오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독'자 땅이름 중에는 '돌' 관련 땅이름이 적지 않다.

독고지; 경기 고양시 일산구 산황동의 독고지

독다리(石橋); 경남 남해군 남면 석교리(石橋里)

독섬(獨島); 동해의 독도(獨島)

독실(甕谷);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의 옹곡(甕谷)

독우물(甕井); 경기 김포군 통진면 옹정리(甕井里)

밧독재(外甕峙); 강원 속초시 외옹치(外甕峙)

'돌'의 옛말인 '독(閪)'은 그 뒤에 오는 음에 따라 '동'으로 되기도 하면서 땅이름에선 '동쪽'이란 뜻으로 이끌려 간 것도 있다.

동몰(東村);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동촌리(東村里)

동매(東梅);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東梅里)

동매(獨山); 경북 경주시 황성동의 독산(獨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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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鷹)'와 관계없는 '매봉'과 '응봉(鷹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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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매(鷹)처럼 생겼다', '산에서 매 사냥을 했다', '매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그러나, 이런 얘기와는 달리 '산'의 옛말이 '메(뫼)'이기 때문에 '매산', '매봉', '매봉산'이 되고 이것이 한자로 옮겨져 '응산(鷹山)', '응봉(鷹峰)', '응봉산(鷹峰山)'이 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매봉(鷹峰); 강원도 인제군과 양구군 사이 매봉(응봉.鷹峰)

매봉(鷹峰); 경기도 가평군 상면의 매봉(응봉.鷹峰)

매봉산(鷹峰山); 경북 청송군 부남면의 응봉산(鷹峰山)

매산등(鷹山); 전북 장수군 산서면 학선리의 응산(鷹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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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와 관계없는 '모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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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재', '모래말(모랫말)', '모라' 등을 보고 모래가 많아서 나온 이름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여 기서의 '모래' 또는 '모라'는 '산(山)'의 옛말인 '몰'에서 나온 경우도 많아 '모래'와 관련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원래 '몰'보다는 '말'이 '산'의 옛말로 더 많이 씌었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몰'로 발음하는 곳도 많다. 이것이 그 다음에 끼어 든 모음과 연결되면 '모래', '모라'가 된다.

몰+내=몰애내>모래내

한자로 옮겨간 것 중에는 '몰'이 '모래'로 되었다가 뜻빌기로 '모래사(沙)'자가 취해지기도 하고, '모라(毛羅)'로 취음(取音)되기도 했다.

모라(毛羅); 부산 사상구 모라동(毛羅洞)

모래내(沙川);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사천(沙川)

모래논;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윗툭골의 모래논

모래말(沙村); 경기 양주군 남면 구암리의 사촌(沙村)

모래촌(沙村); 전남 강진군 신전면 사촌리(沙村里)

모래골(沙谷); 충북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沙谷里)

모래고개(沙峴);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 사현(沙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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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루'와 관계 없는 '벼루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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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에 '벼루'자가 들어가면 사람들은 대개 땅모양이 '벼루'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름 중에는 '벼랑'의 뜻에서 나온 것이 무척 많다. '벼랑'의 옛말은 'ꕨ', '별'인데, 이 말이 '벼래'로도 가고, '벼루'로도 갔다.

벼루말(硯村);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연촌(硯村)

꽃벼루(花硯); 강원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화연(花硯)

밤벼루(栗峴); 강원 횡성군 유천면 두곡리의 율현(栗峴)

벼루재(硯峙); 경기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의 벼루재와 벼루재들

벼루박달(硯朴); 충북 제천시 봉양면 연박리(硯朴里)

벼랑'이라는 뜻의 '벼루'와 '고개'가 합쳐져 '벼루고개'가 되고, 이것이 다시 '벼룩고개'가 되어 '벼룩'과 관련된 땅이름처럼 되기도 한다.

벼룩고개; 전북 순창군 유동면 창신리의 벼리고개(비리고개)

벼룩뿌리(별유불); 충남 예산군 예산읍 주교리의 벼룩뿌리

벼룻질(길); 전북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의 벼룻질

또, '벼랑'의 옛말이 '별'이기 때문에 땅이름에선 '벼랑'의 뜻이 그대로 '별'로 들어간 것이 많다. 그리고는 한자로 '별성(星)'자로 옮겨가기도 했다.

별고개;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용암리의 별고개

별말(星村);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의 별말(星村)

별재(星峴); 경기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의 별재(星峴)

별태(星谷); 경북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星谷里)

별티재(星峴);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현리(星峴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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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과 관계없는 '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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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말'이란 땅이름이 무척 많다. '샘'자가 취해졌다고 해서 '샘'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새(사이)+말+샛말>샌말>샘말

'사이의 마을'이란 뜻이 이렇게 '샘이 있는 마을'이란 뜻처럼 옮겨간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으로 '샘말'이 되었으면서도 한자로는 대개 '샘천(泉)'자가 취해져 더욱 뜻의 혼란을 가져오게 한다.

샘말;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샘말

샘말(間村);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의 간촌(間村)

샘마루(泉旨); 경북 안동시 길안면 천지리(泉旨里)

샘마(泉里); 경북 예천군 호명면 금릉리의 천리(泉里)

' 골짜기 사이의 내'란 뜻으로 '싯내'('싯'은 '골짜기'의 옛말)가 '쉰내'로 되었다가 '쉰'을 '오십(五十)'으로 옮겨 강원도의 '오십천(五十川)'과 같은 이름이 나오게도 했다. 물굽이가 50 군데여서 그렇다든가, 물여울이 50 곳이 있어 그렇다든가 하는 것은 글자에 빠져 잘못 풀이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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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와 관계없는 '쇠말'과 '쇠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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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쇠'로 옮겨가 한자의 '금(金)', '철(鐵)'자로 취해진 땅이름을 많이 볼 수 있다.

'새'는 '사이'의 뜻을 갖고 있기도 하고, '새로움'의 뜻을 갖고 있기도 한데, 이것이 '쇠'의 음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쇠가 났던 곳이라거나, 쇠가 날 곳이라는 등의 해석을 낳게도 만들었다.

쇠골(金谷); 경기 성남시 중원구 금곡동(金谷洞)

쇠말(金村); 경기 파주시 금촌읍 금촌리(金村里)

쇳골(鐵谷); 강원 양구군 양구읍 웅진리의 철곡(鐵谷)

쇳재(鐵嶺); 경북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의 철령(鐵嶺)

쇠실(金谷); 경북 상주시 함창읍 금곡리(金谷里),

쇠실(金谷); 충북 영동군 용산면 금곡리(金谷里)

쇠터(金垈); 경기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金垈里)

'새'가 '쇠'로 되면서 '쇠머리', '쇠꼬리' 같은 낱말에서의 '쇠'처럼 '소(牛)'의 뜻으로 가기도 해서 그와 관련된 뜻으로 생각하게 된 땅이름도 많다.

쇠골(牛洞); 전북 김제시 금구면 하신리의 쇠골(牛洞)

쇠내(牛川);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천리(牛川里)

쇠묵(牛項);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중산리의 쇠묵(牛項)

쇠일(牛谷); 경기 이천시 백사면 우곡리(牛谷里)

쇠재(牛峙); 강원 영월군 수주면 도원리의 쇠재(牛峙)

 

 

이처럼 땅이름은 그 뜻을 글자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런데, 흔히 현재의 글자 그대로 땅이름을 풀려고 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 남자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여자를 남자로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큰 잘못이다.

땅은 자기가 가진 뜻을 숨기고, 다른 이름의 옷으로 치장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