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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712

逸聖紀(일성기) (A.D.192 - A.D.212:재위21년) - 해석Ⅰ 元年 正月 君啓伊伐飡 馬發稟主 昔鄒左部執書 洪可右部執書 日長波珍飡 大宣南路 亥鄒京路 汗國護城將軍 雨盧平部理方 骨安南路軍相 彭息京軍相 彭仙京母 원년(A.D.192) 정월 군계(君啓)를 이벌찬, 마발(馬發)을 품주, 석추(昔鄒)를 좌부집서, 홍가(洪可)를 우부집서, 일장(日長)을 파진찬, 대선(大宣)을 남로, 해추(亥鄒)를 경로, 한국(汗國)을 호성장군, 우노(雨盧)를 평부리방, 골안(骨安)을 남로군상, 팽식(彭息)을 경군상, 팽선(彭仙)을 경모로 삼았다. 愛后生 上子五公 于挑山 上洗之 仍葺五公宅 애후가 왕의 아들 오공(五公)을 도산에서 낳았다. 왕이 아기를 씻겨주었다. 이에 오공의집 지붕을 이었다. 二月 淡理生 上女花理 上洗之 2월 담리(淡理, 지마와 애후의 딸)가 왕의 딸 화리(花理, 구수혜의 모)를 낳.. 2009. 11. 17.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A.D.126 - A.D.158:재위33년) - 해석Ⅱ 二十年 正月 發良爲伊伐飡 干時爲稟主 20년(A.D.145) 정월 발량(發良)을 이벌찬으로, 간시(干時)를 품주로 삼았다. 七月 大風三日 大井南神樹 自倒 命巫祓之 7월 큰바람이 3일 동안 불었다. 대정(大井)의 남쪽 신령스러운 나무가 스스로 넘어져 무당에게 푸닥거리를 하도록 명하였다. 九月 加耶女與半阿 爭位 加耶襲居陀 長世聞 急救之戰沒 上怒 命吉門率京騎一千 引南水勇士五千 三路掩殺 大獲勝利 9월 가야녀와 반아(半阿)가 자리를 다투었다. 가야가 거타(居陀)를 습격하였다. 장세(長世, 가소성주)가 소식을 듣고 급히 구하러 갔으나 전쟁 중에 사망하였다. 왕이 노하여 길문에게 경기(京騎) 1천을 거느리고 가게하여 (길문이) 남로, 수로의 병사 5천을 끌어들여 3로(경로, 남로, 수로)의 병사가 별안간 엄습하여 죽이.. 2009. 11. 17.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A.D.126 - A.D.158:재위33년) - 해석Ⅰ 元年 二月 上與惠后 親祀祖廟 大享骨門 원년(A.D.126) 2월 왕과 혜후(惠后, 아혜)가 친히 조상의 사당에 제사지내고, 골문(骨門, 종실)에게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용어≫ 1. 대향(大享) : ①종묘(宗廟)에서 사맹월(四孟月)의 상순(上旬)과 납일(臘日)에 지내는 제사(祭祀)와 사직(社稷)에서 정월(正月) 첫 신일(辛日)에 풍년(豊年)을 빌며 지내는 제사(祭祀) ② 중춘(仲春)ㆍ중추(仲秋), 첫 무일(戊日)과 납일(臘日)에 지내는 제사(祭祀) 2. 대향(大饗=大享) : 특별한 경축행사에 임금이 베푸는 성대한 잔치 以市老爲伊伐飡 阿休爲稟主 시노(市老)를 이벌찬(伊伐飡, 신라 때의 최고 관리, 진골만이 하는 벼슬로 신라 17관등제와 별도로 제정)으로, 아휴(阿休)를 품주(稟主, 신라 최고의 행정기관인.. 2009. 11. 17.
祗摩紀(지마기) (A.D.159 - A.D.191:재위33년) - 해석Ⅱ 二十一年 正月 束己伊伐飡 吐乙稟主 以私臣繼相 自此始 逸聖廣樹其黨 仍以其臣代 已 文父爲大書頭 21년(A.D.179) 정월 속기(束己)를 이벌찬으로, 토을(吐乙)을 품주로 삼았다. 사신(私臣)이 재상을 이은 것은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일성이 그 무리(黨)를 널리 심었다. 거듭하여 그 신하로 대신하게 하고, 조금 있다가 문부(文父)를 대서두(大書頭)로 삼았다. 二月 角干馬知那薨 葬于卞山 以其妻兪生爲二品權妻 其子兪知那爲殿中郞 2월 각간 마지나(馬知那)가 죽어 변산(卞山)에 장사를 지냈다. 마지나의 처 유생(兪生)을 2품 권처로, 아들 유지나(兪知那)를 전중랑으로 삼았다. 賜米 七利生 旭亥女旭山 쌀을 내렸다. 칠리(七利)가 (감문국) 욱해(旭亥)의 딸 욱산(旭山)을 낳았다. ≪견해≫ 다른 문장과는 순서가 바뀌어 .. 200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