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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고조선 왕검성이 요동군 험독현 즉 현재 창려라는 주장은 한문 해독을 잘못한 것이다. 단군의고조선왕검성이요동험독이고,그곳에하북창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이러한주장은역사를제대로읽을줄아는안목이없으며, 한문해독도잘못한것이라고말하고싶습니다. 1) 한문해독오류 고조선왕검성이요동군험독현이라고주장하는이들은기록은사기(史記)에더한주석을보고하는것입니다. 이주석들은사마천이기록한것이아니라후대의사람들이더한것입니다. 《史記卷一百十五》朝鮮列傳 滿…중략…亡命者王之都王險【集解徐廣曰昌黎有險瀆縣也索隱韋昭云古邑名應劭注地理志云遼東有險瀆縣朝鮮王舊都瓉云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위만은…중략…망명자들의왕이되어왕험(王險)에도읍하였다. 【집해(集解)에서서광(徐廣)이말하기를창려(昌黎)에험독현(險瀆縣)이있다. 색은(索隱)에서위소(韋昭)가말하기를옛읍의이름이다. 응초(應劭)가주석하기를한서지리지에서는요동군(遼東郡)에험독현(險瀆縣)이있는데.. 2013. 7. 2.
馬韓東北有百濟, 百濟東有樂浪, 百濟北有靺鞨 설에 마한은 전라도요, 백제는 경기와 충청도요, 말갈은 송화강 유역이요, 낙랑은 요하 혹은 대동강 유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 설명하는 마한 백제 말갈 낙랑 등의 위치 관계는 통설의 위치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1. 통설과 맞지 않는 《삼국사기》 기록 • 백제와 마한의 위치관계 마한이 전라도이고 백제가 경기도이면 백제는 마한의 북쪽이던지 서북쪽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은 전혀 다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4년 王作熊川柵馬韓王遣使責讓曰王初渡河無所容足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온조임금이 웅천책을 세웠다. 마한임금이 사신을 보내 책망하였다. "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분명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에 위치한 나라.. 2013. 7. 2.
發朝鮮(발조선)의 실체 파악 신채호 선생은 그의 저서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에서 말하기를 고조선(古 朝鮮)은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다스려졌는데 신조선(眞朝鮮)과 불조선(番朝鮮)과 말조선(馬朝鮮)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3개의 조선을 다스리는 군왕(君王)의 명칭이 각각 신한(辰韓), 불한(番韓, 번한), 말한(馬韓, 마한)이라 하였는데, 신한의 ‘신’은 太(태)의 뜻이며 總(총)의 뜻이며 上(상)의 뜻이고, 불한의 ‘불’은 地(지)의 뜻이고, 말한의 ‘말’은 天(천)의 뜻이라 하였으니, 신한이 가장 높고 불한과 말한은 신한을 보좌한다고 하였다. 그 위치는 대략 불한이 신한의 서남쪽이고 말한이 신한의 동남쪽이라 하였다. 그리고 《관자(管子)》에 기록된 發朝鮮(발조선)은 ‘불조선’의 전음(轉音)이고 지나국(支那國)에서 가까우.. 2013. 7. 2.
혼동강(混同江)은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었다!!! 혼동강이 남으로 흘러갔다는 기록이 존재하여 소개합니다. 흠정중정대금국지(欽定重訂大金國志) 卷四十 허봉사행정록(許奉使行程録) 離瑪齊喇行六十里即古烏舍寨寨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入海 마 제라(瑪齊喇)를 떠나 60리를 가니 옛 오사채(烏舍寨) 혼동강(混同江)의 물가에 도착했다. 그 강의 발원은 광막(廣漠, 대황大荒?)의 북쪽인데 너무 멀어 그 근원을 알수가 없다. 혼동강(混同江)은 남으로 500리를 흘러 고구려 압록강에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이를 두고 만주원류고에서는 허봉사행정록이 지도만 보고 기록하였기에 혼동강이 남으로 흐른다고 하였으며 허봉사행정록의 기록을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만주원류고 권15 許亢宗奉使行程録古烏舎塞枕混同江湄其源來自廣漠之北逺不可究自此南流五百里接髙麗鴨緑江注海.. 2013.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