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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428

역대 중국 왕조표 왕조 王家名 도읍 夏 21세기 ~ 6세기 BC 禹 → 啓 → 太康 → 仲康 → 相 → 少康 → 杼 → 槐 → 芒 → 泄 → 不降 → 扃 → 厪 → 孔甲 → 皐 → 發 → 履癸(桀王) 陽城 → 陽翟 → 安邑 殷(商) 1600 ~ 1066 BC 天 乙(大乙, 湯王) → 外丙 → 仲任 → 大甲(太甲) → 沃丁(虎祖丁) → 太庚(大庚) → 小甲 → 雍己 → 太戊(大戊) → 中丁(仲丁) → 外壬(都壬) → 河亶甲 → 祖乙(且乙) → 祖辛(且 辛) → 沃甲(羌甲) → 祖丁(且丁) → 南庚 → 陽甲(虎甲) → 盤庚(般庚) → 小辛 → 小乙 → 武丁 → 祖庚(且庚) → 祖甲(且甲) → 廩辛(兄辛) → 庚丁 → 武乙 → 文丁(太丁) → 帝乙(父乙) → 帝辛(紂王) 殷墟 (河南安陽) 周 西周 1066 ~ 771 BC 文王.. 2009. 11. 17.
1461년 편찬 《대명일통지大明一統地》의 압록鴨綠 : 요녕성 강평현康平縣일대 요하 그림 1. 《대명일통지大明一統地》의 「외이外夷」 조선국朝鮮國편 압록강鴨綠江기록 1461년(명明, 천순天順 5년)에 명나라 이현李賢등이 황명으로 편찬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地》는 「외이外夷」 조선국朝鮮國편에 압록강鴨綠江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대명일통지大明一統地 / 권卷 八十九 / 외이外夷 / 조선국朝鮮國 【압록강鴨綠江】 국성國城-한양-에서 서북西北방향으로 1,450리里(=835km) 떨어져 있으며 일명 마자수馬訾水라 하며 수원水原은 갈말鞨靺-말갈靺鞨-의 장백長白의 산山과 물水의 색色이 마치 압두鴨頭-오.. 2009. 11. 17.
삼국사기에 나타난 낙랑군과 낙랑국 삼국사기에 기록된 낙랑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은데.. AD37년 이전에 나타난 낙랑은 최씨낙랑국으로 신라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백제의 동쪽이라는 기사가 보이는데... 백제의 초기 위치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한 것 같다). AD37년 이후에 나타난 낙랑은 중국의 낙랑군으로 고구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BC28 낙랑인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침범하였다 三十年 樂浪人將兵來侵 BC20 진한의 유민으로부터 변한, 낙랑, 왜인에 이르기까지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지 않음이 없습니다. 三十八年 "自辰韓遺民 以至卞韓·樂浪·倭人 無不畏懷 BC15 가을 8월에 사신을 낙랑에 보내 우호를 닦았다. 四年 春夏 旱 饑疫 秋八月 遣使樂浪修好 BC11 낙랑태수의 사자가 고하여 말하였다…이로 말미암아 낙랑과.. 2009. 11. 17.
존칭접미사의 생성 발달에 대하여 도수희/충남대학교 명예교수 1현 대 국어에서 활용하고 있는 존칭 접미사는 거의 '님'에 국한되는 듯하다. 물론 상감, 대감, 영감의 '감'이 있지만 이것들은 호칭 대상의 사회적 인식변화로 인하여 점점 사어화하여 가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다만 씨족, 성씨의 '씨'가 성이나 이름에 접미하여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으나 이런 경우는 오로지 남자의 성명에 접미하여 어른을 의미할 따름이다. 이 밖의 존칭 접미사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기 중세국어의 시기에는 오늘날과는 달리 '놈'이 평칭 접미사이었고, 고대 국어 시기에는 여러 종류의 존칭 접미사가 활용되었다. 예를 들면 '한/간/감/금, 지>치, 바/보/부, 돌이, 쇠' 등이 보편적으로 쓰였다. 어원적으로 볼 때 위의 존칭 접미사들.. 200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