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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유고 실성기(實聖紀) 번역 水虎元年二月七日奈勿帝崩保反后以遺命立實聖爲繼君先是三元公主有女曰禮生夢見白大馬而奇之大西公適至聞夢而私之生實聖初呼馬兒皃美而柔人以爲柔馬兒末仇 公沒大西知公娶其妻休禮以是馬兒與奈勿同居一宅情好岳及奈勿得志引而用之及麗南侵奉使于麗十年未歸麗主談德以其妹杜氏妻之生三子杜乃爲之說談德曰賢主尙信 而不若質今妾之夫歸彼則金枝玉葉留此則九牛一毛也妾願同歸其國以爲大王計談德許之時奈勿以疾不能理事願見馬兒及歸喜而問其故馬兒曰吾聞兄疾而欲歸不食而禱 天一夜之間鳥頭盡白麗人大驚許我歸之也奈勿神之乃名實聖而居副君之位至是卽祚春秋四十四 수호(水虎:임인402) 원년 2월 7일 나물제(奈勿帝)가 붕(崩)하였다. 보반후(保反后)가 유명(遺命)으로써 실성(實聖)을 세워 계군(繼君)을 삼았다. 이에 앞서 삼원공주(三元公主)에게 딸이 있어 예생(禮生)이라했는데 꿈에서 백대마(白大馬)를 보.. 2009. 11. 17.
逸聖紀(일성기) (A.D.192 - A.D.212:재위21년) - 해석Ⅱ 十 九年 正月 上命 以伐休爲護城將軍 以慰昔鄒之神 妻以洪介女黃氏 先是 伐休與小光太子女紫凰相通 生子骨正 欲爲夫婦 只后曰 “汝以我子 不娶上女 而孰娶上女乎” 至是 乃娶黃氏爲正妻 紫凰爲副妻 行吉 于壤井 時大雪丈餘 馬不能行 上與只后洪介汗介 滯雪 于壤井 洪介抱伐休 曰 “吾愛婿也” 伐休拜之 汗介亦抱之 曰 “吾愛婿也” 伐休不拜 上命拜之 曰 “吾權妻也 爲爾母 何不拜之” 伐休曰 “都都娘不能禳雪 故不足拜也” 上笑之 汗介曰 “吾故祈雪淨之 何禳之乎 婿兒無禮 夫今不責 而笑之 妾當冒雪而歸” 只后乃責伐休 拜之 伐休不得已下拜 曰 “若能淨之 可以拜也” 汗介笑曰 “汝爲我子 可朝暮淨之也” 伐休恥之 不言 汗介年少於伐休 而以上寵 呼以子之故也 19년(A.D.210) 정월 왕명으로 벌휴를 호성장군(護城將軍)로 삼아, 석추의 신령을 위로하였다. 홍개.. 2009. 11. 17.
逸聖紀(일성기) (A.D.192 - A.D.212:재위21년) - 해석Ⅰ 元年 正月 君啓伊伐飡 馬發稟主 昔鄒左部執書 洪可右部執書 日長波珍飡 大宣南路 亥鄒京路 汗國護城將軍 雨盧平部理方 骨安南路軍相 彭息京軍相 彭仙京母 원년(A.D.192) 정월 군계(君啓)를 이벌찬, 마발(馬發)을 품주, 석추(昔鄒)를 좌부집서, 홍가(洪可)를 우부집서, 일장(日長)을 파진찬, 대선(大宣)을 남로, 해추(亥鄒)를 경로, 한국(汗國)을 호성장군, 우노(雨盧)를 평부리방, 골안(骨安)을 남로군상, 팽식(彭息)을 경군상, 팽선(彭仙)을 경모로 삼았다. 愛后生 上子五公 于挑山 上洗之 仍葺五公宅 애후가 왕의 아들 오공(五公)을 도산에서 낳았다. 왕이 아기를 씻겨주었다. 이에 오공의집 지붕을 이었다. 二月 淡理生 上女花理 上洗之 2월 담리(淡理, 지마와 애후의 딸)가 왕의 딸 화리(花理, 구수혜의 모)를 낳.. 2009. 11. 17.
婆娑尼師今記(파사이사금기) (A.D.126 - A.D.158:재위33년) - 해석Ⅱ 二十年 正月 發良爲伊伐飡 干時爲稟主 20년(A.D.145) 정월 발량(發良)을 이벌찬으로, 간시(干時)를 품주로 삼았다. 七月 大風三日 大井南神樹 自倒 命巫祓之 7월 큰바람이 3일 동안 불었다. 대정(大井)의 남쪽 신령스러운 나무가 스스로 넘어져 무당에게 푸닥거리를 하도록 명하였다. 九月 加耶女與半阿 爭位 加耶襲居陀 長世聞 急救之戰沒 上怒 命吉門率京騎一千 引南水勇士五千 三路掩殺 大獲勝利 9월 가야녀와 반아(半阿)가 자리를 다투었다. 가야가 거타(居陀)를 습격하였다. 장세(長世, 가소성주)가 소식을 듣고 급히 구하러 갔으나 전쟁 중에 사망하였다. 왕이 노하여 길문에게 경기(京騎) 1천을 거느리고 가게하여 (길문이) 남로, 수로의 병사 5천을 끌어들여 3로(경로, 남로, 수로)의 병사가 별안간 엄습하여 죽이.. 200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