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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성6

환국에 대하여... 桓國은 丸國으로 써야 맞다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昔有桓國[謂帝釋也]”라고 하였다. 이는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다[이는 제석(帝釋)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또 어떤 판본에는 國이 因으로 쓰여져 있다. “제석(帝釋)”에 대하여 이민수가 그의 역서 《삼국유사》에서 주석하기를 “제석(帝釋)이란 범어(梵語)로서 제(帝)는 釋迦提婆因陀羅(Śakra-devānāminindra) 중에서 因陀羅의 번역이고 석(釋)은 釋迦(Śākya)의 음역(音譯)이다. 따라서 한문(漢文)과 범어(梵語)를 함께 쓴 것이다. 수미산(須彌山) 꼭대기 도리천(忉利天)의 임금이란 뜻이다. 선견성(善見城)에 있어 사천왕(四天王)과 삼이천(三二天)을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는 하늘의 임금이다.”라고 하였다... 2009. 12. 30.
환도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대개 환도성丸都城의 위치를 현재 환인桓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봐도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환도성의 지리적 조건과 맞지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당사료에는 환도성이 길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길림성이 과연 환도성이 맞는지 살펴봅시다. AD342에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략하면서 남도와 북도로 진격해옵니다. 남도는 길이 좁고 험하며, 북도는 길이 평탄하다고 하죠. 그래서 대부분 고구려를 침략하는 자들이 북도를 이용하였나봅니다. 그러나 모용황은 정반대로 남도로 많은 병사를 보내고 북도로는 적은 병사를 보내지만, 고구려에서는 북도로 정예병을 보내고 남도로 약한군사를 보내 지게됩니다. 이런 공격계획을 세우는 모용황과 모용한 사이의 대화에서 환도성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대화가 나옵.. 2009. 12. 12.
고구려에도 상경 중경 하경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사료가 너무 부족하여 가끔가다 헷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중국은 제가 알기로 앞쪽을 남쪽으로 보는 습성이 있다고 하죠.우리나라도 고려중기와 중세조선을 지나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앞쪽을 남쪽으로 보는 습성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대에 앞쪽을 북쪽으로 보았던 것 같고, 그렇기에 하평양(下平壤)이 남평양(南平壤)이 되는 것입니다. (이하 글에서는 "앞쪽=위쪽"으로 봤다는 전제가 들어갑니다) 고구려 사람이 생각하는 앞쪽은 북쪽고구려는 어떤 책력을 사용하였을까요?해동역사에서 유환기문(游宦記聞)의 기록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해동역사 권17 성력지고려국에는 구집력(九執曆)이 있다. 그 법은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해와 달 역시 왼쪽으로 돈다. 하루의 밤과 낮은 해가 뜨고 .. 2009. 12. 12.
관구검이 새겼다는 不耐城은 국내성(불이성)을 말하는가? 유리왕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를 합니다. 그 당시 국제적 성황으로 볼때 유리왕은 동부여를 피하여 서쪽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볼 수 있죠. 남당사료에는 국내성 즉 불이성이 북부여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환도성과 국내성이 서로 인접하였다고 말하고 있죠. 이는 관구검이 새긴 不耐城과 국내성인 不而城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유리왕이 천도한 不而城과 관구검이 공격한 丸都城의 위치不而城은 漢의 낙랑군 不而縣으로 생각됩니다. 그 위치를 살펴보면... 新唐書 卷四十三下 志 第三十三下 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溯)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泝(溯)流五百里,至丸都縣城,故高麗王都。又東北泝(溯)流二百里,至神州。 압록강 어귀에서 배로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를 타고 동북으로 3.. 2009.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