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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5

백악산아사달의 위치와 옛 부여의 도읍과의 관계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산재되어 있고 헷갈리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산재되어 있는 기록들을 모아 하나의 편년으로 만들다보니 여기가 저기인지 저기가 여기인지 알아볼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도읍의 이름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 글에서는 후기 고조선의 도읍인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의 정확한 위치 비정보다는 그 곳은 고조선 봉국 중 하나인 옛 부여의 도읍이었다라는 것을 보이겠습니다. 대략의 위치는 그림에 보였습니다. 제외시켜야 할 것들우선 고조선 도읍이라고 여겨지는 여러가지 이름들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겠습니다. 임검성(壬儉城): 이는 도읍의 이름이 아니라 역대 단군이 살던 성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비슷한 것이지요. 壬은 북방색인 "검은"을 나타.. 2009. 12. 14.
단군조선(檀君朝鮮)때에 부여의 봉지는 전한(前漢)의 우북평군(右北平郡) 백랑현(白狼縣) 우리 역사상 “부여”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대략 4개가 있다. 하나는 단군조선이 그의 아들 부여에게 봉한 옛 부여가 있고(이하 옛부여 통칭)둘째는 해모수가 건국했다는 북부여가 있으며셋째는 해부루가 북부여 땅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동부여가 있으며넷째는 백제가 남한(南韓) 땅으로 이동하여 국명을 바꾼 남부여가 있다. 간혹 두 번째 북부여와 세번째 동부여를 서로 같은 나라라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부여를 잘못 이해한 까닭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해부루가 세운 부여의 이름은 동부여인데 고구려 북쪽에 있었기에 고구려 사람들이 북부여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헷갈리는 이유는 북부여에 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잠깐 나오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북부여와 동부여를 헷갈리기 기록하였으며 중국사서에는 북부.. 2009. 12. 10.
부여의 영토는 어디일까? 우리의 고대사는 매우 왜곡되어 있다. 특히 상고사로 올라갈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우리는 흔히 부여라는 나라에 대하여 막현한 그림과 같은 생각만 가지고 있지 그 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언제부터 존재하였고 이 나라의 실상에 대해서 표면적인 것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식민사학무리들은 부여가 곧 현재 만주의 송원시라고 비정하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송원시 옆에 "부여시"가 있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부여시는 20세기에 중국에서 만든 도시의 이름이다. 20세기에 만든 도시 이름을 따서 고대사를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현재 만주의 "부여시"의 옛 이름은 "백도랍"이다. 그런데 어찌 이곳이 옛날 부여가 될수있겠는가? 이제 부여가 어느 곳에 있었는지 알아보자 많은 이들이 중국사 지리지를 .. 2009. 11. 27.
발해고 - 지리에 관한 고찰(地理考) 1. 『신당서』에 기록된 발해 지리 5경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 중경(中京) 현덕부(顯德府) 동경(東京) 용원부(龍原府) 남경(南京) 남해부(南海府) 서경(西京) 압록부(鴨綠府) 15부 용천부(龍泉府) 숙신족이 살던 곳이다. 현덕부(顯德府) 숙신족이 살던 곳으로, 용천부 남쪽에 있다. 용원부(龍原府) 예맥족이 살던 곳으로, 책성부(柵城府)라고도 부르며, 일본으로 가는 길이다. 남해부(南海府) 옥저 땅이었던 곳으로, 당나라에 조공하는 길이다. 압록부(鴨綠府) 고구려 땅이었던 곳으로, 당나라에 조공하는 길이다. 장령부(長嶺府) 고구려의 땅이었던 곳으로, 당나라 영주(營州)로 가는 길이다. 부여부(扶餘府) 부여 땅이었던 곳으로, 거란으로 가는 길이다. 막힐부(鄚頡府) 부여 땅이었던 곳이다. 정리부(定理府.. 2009.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