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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한단고기에 나오는 서우여(徐于餘)와 서여(西余)의 문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5.
한단고기를 읽다 보면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3명 나옵니다.

1) 서우여 徐于餘: 색불루에 의해 번조선의 임금에 임명된 사람입니다.

2) 서여 西余: 번조선의 상장(上將)으로 서우여 임금 바로 전 임금인 소정(小丁)을 죽인 자입니다. 그런데 소정이란 자는 색불루의 아버지 고등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번조선 임금에 임명하였습니다.

3) 서여 胥餘: 일명 기자(箕子)라고 하는 자입니다.

서여(胥餘)라는 기자(箕子)는 분명 1)과 2)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 런데 문제는 단기고사 기자조선기에 나오는 임금과 한단고기 번한세가의 임금들이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같다는 것입니다. 즉, 단기고사에 나오는 기자조선이라 이름한 나라가 곧 한단고기에 나오는 번조선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고사 기자조선 1대 임금이 서여(西余)인데, 한단고기 번조선에는 서우여(徐于餘)라고 나오며, 또한 서우여(徐于餘)와 서여(西余)를 다른 인물인 것처럼 써 있다는 것입니다.

한단고기 단군세기 소태단군때에

" 그리고는 오가(五加)를 불러 제위를 물려주는데 대해 의논하셨는데 이제는 늙어서 제위를 지키기가 어렵다 하시며 정치를 서우여(徐于餘)에게 맡기고 싶어 하셨다. 이에 살수(薩水)의 땅 백 리를 둘러보시고 이를 그에게 봉하시사 명을 내려 섭주(攝主)로 하여 기수(奇首)라 부리게 하였다. 우현왕(右賢王)은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단제에게 권하여 이를 중지케 하였으나 단제는 종내 이를 듣지 않으셨다"

여기서 분명 서우여(徐于餘)는 살수 땅의 기수(奇首)입니다.

한단고기 번한세가 상에

" 해모라가 죽고 단군 소태(素胎) 5년 우사(雨師)의 소정(小丁)을 번한에 임명하였다. 대저 고등(高登)이 항상 그 지모를 탄주하고 무리에 뛰어났기 때문에 제(帝)에게 권하여 임명하도록 한 것이라. 때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막 병사를 일으켜 치려하매 고등이 이를 듣고 상장(上將) 서여(西余)와 함께 이를 격파하고 추격하여 색도(索度)에 이르매 병사를 보내 불지르고 약탈한 뒤 돌아왔다. 서여는 북박을 습격하여 격파하고 병사들을 탕지산에 주둔케 하더니 자객을 보내 소정(小丁)을 죽이게 한 후, 무기와 갑옷들을 아울러 싣고 돌아왔다."

여기서는 서여(西余)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기수(奇首)가 아니라 상장(上將)으로 나옵니다. 즉, 서여(西余)와 서우여(徐于餘)는 다른 인물로 써 있다는 것입니다.

그 러나 문제는 단기고사 기자조선 1대 임금은 서여(西余)로 나오며, 한단고기 번한세가에 이에 해당되는 임금은 서우여(徐于餘)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대 3대 4대... 쭉 임금들의 이름이 같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인 단기고사에서는 서우여(徐于餘)를 서여(西余)와 같은 인물로 봤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은 이런데

(가) 단기고사의 저자가 틀렸고 서우여(徐于餘)와 서여(西余)는 다른 인물인다.

(나) 태백일사 저자가 틀렸고 서우여(徐于餘)와 서여(西余)는 동일 인물이며, 서우여(徐于餘)를 색불루가 번조선 임금에 임명한 것이 아니라 서우여 자신이 군사력을 이용하여 소정(小丁)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만 약 (나)가 맞는다면 색불루 단군때부터 번조선은 더이상 진조선에 소속된 봉국이 아니라 독립국으로 봐야 하며 이러한 해석은 규원사화에 BC12세기 경에 람국(藍國)이 모든 제후를 거느리게 되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아햐 한다는 것입니다. 즉, 색불루 단군때부터 진조선은 쇠퇴의 길을 걸었고 번조선이 조선의 패권을 장악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단고 기는 전반적으로 진조선 정통으로 기록되었기에 색불루 단군이후부터 BC400년까지는 거의 기록이 없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간은 번조선이 패권을 장악한 시기이기 때문에 진조선을 기록한 사료들에는 이 기간에 역사적 사건이 기록될 일이 없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