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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춘추 전국시대 燕國의 역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8.
연나라는 주나라의 동북단 변방에(지금의 하북성 북부지방) 위치한 작은 제후국으로 주무왕이 주를 세우고 연소공(召公)이 처음 봉작을 받을 때 그 크기가 처음에는 500리가 채 되지 못하였다.

서 기전 662년에 영지국이 연을 침략하자 연 장공(壯公)이 제환공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제환공이 관중과 함께 지금의 태행산을 넘어 원정을 하여 영지국과 고죽국 그리고 산융을 멸하고 그 얻은 토지를 연나라에게 할애하니 비로소 남한정도 크기의 천리가 되는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되어 강해지기 시작 하였다.

서기전 332년 연나라 문공때에 소진이 진(秦)의 강성함에 대항하기 위해 조(趙)제(齊)초(楚)위(魏)한(韓)연(燕)의 합종6국할 때에 강대국의 순위가 초가 가장 강하고 다음이 제나라 세째가 위 네째가 조 다섯째가 연 마지막이 한나라였고 이때에 초,제,위,조는 벌써 왕이라 칭하였으나 연과 한은 아직도 "후(侯)"라 칭하였기에 소진이 서열을 정하기도 불편하여 모두 왕이라 하자 하였고 이에따라 문공의 아들때 부터 왕이라 칭하였으니 바로 "역왕(易王)"이다.

사 기의 기록에 연왕이 칭왕하자 조선왕도 칭왕하여 연나라를 치려고 하자 조선왕의 신하 대부례가 말려서 화친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역왕 이전에 연나라는 조선왕에게 조공하고 칭신하였다고 믿어 지며 연이 왕호를 쓰자 이에 노하여 공격하려 한 것이라고 보인다.

역 왕의 아들 "쾌"는 좀 모자라는 자라 자신이 요순임금이라 하며 연나라를 그의 신하인 자지(子之)에게 주니 쾌의 아들 평(平)은 곽외와 함께 무종산으로 도망하였고 자지는 폭정을하여 민심을 잃자 서기전 314년에 제민왕이 합종한 약속을 깨고 10만대군을 보내어 연나라를 멸하고 자지와 쾌를 죽이고 종묘를 부수고 금은보화를 모두 털어가니 처음에는 연나라 백성이 제나라를 환영했다가 연의 종묘가 파괴됨을 보고 왕자 평을 찾아 서기전 312년에 연을 다시 복구하니 이가 바로 "소왕(昭王)"으로 연나라의 전성기를 만든 왕이다.

소왕은 아버지 쾌의 복수를 위해 곽외의 제안에 따라 초현대를 세우고 인재를 구하고 황금을 아끼지 않고 제나라를 제외한 나라에 재물과 인질을 보내 화친을 구하며 내치에 힘쓰니 점점 나라가 부강해 지기 시작하여 28년이 지난 서기전 285에 중국에서 제갈량과 관중의 능력과 같이 여기는 "악의"를 만나 비로소 제나라를 치려하나 제나라는 부국강병한 나라로 30만대군이 있고 연나라는 아직도 채 10만이 아니되니 악의가 합종에 참가한 조,위,한과 제나라가 강성함을 꺼리는 진나라를 합하여 네나라가 각 군대를 내어 연을 도와 제를 치니 각나라의 장수들이 전국시대의 유명한 장수들로 진장 백기, 조장 염파, 한장 포연, 위장 진비 그리고 연장 악의로서 악의가 5만 군사로 앞장서니 또한 4국 군사도 모두 용감히 싸워 제나라의 30만 대군을 이기고 제민왕은 거국으로 도망하였다.

악의는 작은 소읍인 거국을 본체 만체하고 제나라의 민심을 수습하며 3년동안 제나라를 인의로 다스리니 제나라 백성이 모두 감동하여 연나라를 따르자 이를 보고 악의의 부장인 기겁이란 자가 소왕의 태자에게 악의가 제나라 왕이 되려 한다고 참소하여 태자가 소왕에게 이를 전하자 소왕은 "악의가 아니면 어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으랴" 하며 아들과 기겁을 매질하여 축출하니 악의는 더욱 충성하였다.

제민공은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가 오히려 초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연소왕도 병을 얻어 죽으니 그 아들이 뒤를 이어 "혜왕"이 되어 악의를 의심하니 악의가 조나라로 피하였다. 이에 혜왕은 기겁을 재상으로 삼았는데 이때 연나라 군사가 무려 30만이 되니 이는 제나라 군사들이 악의가 따뜻이 대함에 진심으로 복종한 것이니 그 태반이 제나라 군사였다. 이때 제나라에 전단이라는 자가 있어 제나라를 복구하고 왕자를 찾아 왕으로 세우니 이가 제양왕이다.

제나라가 다시 서니 서기전 280년에 연혜왕이 다시 군사를 내어 제나라를 치는데 기겁에게 20만대군을 주고 자신이 10만대군을 거느리고 중군이 되었는데 기겁의 20만 대군이 전단에게 대패하여 모두 잃고 원래 제나라 군사들이 도망하니 혜왕이 대패한 후에 크게 후회하고 악의를 도로 찾으나 누가 다시 오겠는가?

이후에 서기전 222년 마지막 희왕이 진시황에게 망할 때까지 인질을 인접국에 보내어 보신책을 강구하는 약소국으로 다시 전락하였으니 자연 조선왕에게도 인질로 화친을 구해 중국과 조선사이에 평화가 근 100년간 지속 되었다.

이 와 같이 춘추 전국시대에 중국과의 마찰은 모두 연나라와의 것이요 이후 흉노 모둔과 한무제의 잇달은 침략으로 조선이 피폐하여 무너지고 열국시대가 열리니 연나라와의 경계선의 문제는 논란이 많은 것으로 이를 알기 위해서는 연나라의 능력과 상황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