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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

조선사연구초: 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13.

1.    서론

혹은 이를 웃으리라, 번쇄(煩瑣)하고 무익한 일이라고. 그러나 착오가 이에서 교정되느니라. 訛誤가 이에서 歸眞되느니라. 각기 제 시대의 본색이 이에서 탄로되느니라. 이미 散失된 조선 역사상의 대사건이 이에서 발견되느니라. 그러므로 이것이 곧 地中古蹟을 발굴함에 비길 만한 조선사 연구의 비약이니라. 자래로 不知者들이 이 비약을 妄侵하여 도리어 본의를 현란케 한 일이 많다. 예를 들면 무명씨의 東言考略에 신라가 부여를 惡하여 부여 죽인다는 말이 생기었다 하며, 李雅亭이 고구려는 깨고리의 意를 취함이라 하며, 정다산이 위례성은 울(圍籬)의 意를 취함이라 하며, 근일 일본의 어떤 학자들이 弁韓의 弁은 음이 “배”라 뱀의 배니 巳韓의意요 마한은 午韓의 意니 진한 마한 변한은 다 12支에서 취하여 소재의 방위를 證함이라고 하니, 이같이 左證없이 비슷한 음을 취하여 武斷을 내릴진대, 구태여 부여 죽인단 말이 부여 때문에 생겼겠느냐? 비었다(空), 부옇다(白) 등의 말도 다 부여 때문에 생긴 말일지며, 구태여 개구리만 고구려의 이름지은 원인이 될 뿐이랴. 꾀꼬리(鶯), 개꼬리(狗尾), 게꼬리(蟹尾) 등이 모두 고구려란 이름의 所自出이 될지며, 백제 초년에 병산(甁山), 마수(馬首), 高木, 牛谷 등 성책이 다 그 소재지의 지명을 가져 이름한 자인데, 홀로 그 수도의 위례성을 漢江古名 “아리”에서 취하지 않고 울(圍籬)의 뜻으로 이름하였다 함이 何說이며, 변한의 변을 뱀의 배에서 뜻을 취하였다 함은 더욱 일박할 가치가 없지만, 三韓의 위치가 명백한 진한은 동이며 마한은 서이며 변한은 남이어늘 이제 마한은 午方이라 변한은 巳方이라 함이 何에 據함이뇨.

무릇 古史上의 이두문으로 쓴 명사의 해석에 허다한 곤란이 있으니 대개 이두문은 한자의 全音, 全意, 혹 半音, 半意로 만든 일종의 문자라.

그러나 이두문의 口譯文으로 화하기 전에는 字母의 발견만 못되었을 뿐 아니라 일정한 법칙도 없어서, 같은 白자 이지만 하고로 上白是의 白은 그 全意를 讀하여 “살”이라 하면서 白良의 白은 그 반음을 독하여 “바”라고 하느냐 하면 그 해답이 없으니 그 곤란이 첫번째요.

한자로 지은 주, 군, 현의 이름은 경덕왕이 始한바, 그 변경의 際에 밀불(推火)이 密城이 되고 거물라(今勿奴)가 黑壤이 된 것 같이 古名을 譯用한 것도 있지만, 退火가 義倉이 되며 比火가 安康이 되어 아주 고명의 본의를 버리고 한자로 지은 지명이 더 많으며, 중화의 관명을 모방함은 궁예왕에서 시작하여 고려 광종에서 완성이 되었으나, 이는 또 한 개도 고명을 譯用한 것이 없은즉 명의의 원류를 찾는 동시에 매양 전후 際斷의 憾이 없지 아니하니 그 곤란이 두번째요.

삼국사기나 기타 史冊에 이두문으로 쓴 당시의 본명으로 실록에 記치 아니하고 후래에 譯用한 한자의 명사를 記하였으니 예를 들건대 백제가 쓰던 한강의 이름인 욱리하(郁里河)가 겨우 개로왕기에 일견한 이래에는 오직 신라가 고친 이름인 한강이 온조 초년부터 보이었으며, 고구려가 쓰던 요동성의 이름은 오렬홀(烏列忽)이거늘, 삼국사기에 오렬홀이 겨우 地誌에 일견한 이외에는 모두 隨唐사람이 칭호한 요동성으로 적히었을 뿐이니, 그러면 아주 可考할 수 없이 된 본명도 허다할 뿐더러 어떤 것은 당시의 본명인지 후래의 譯名인지 알 수 없이 된 것도 적지 아니하리니 그 곤란이 세번째다.

조선의 사책은 從古로 저자만 있고 독자는 없는 서적이라, 무슨 사책이든지 訛字, 誤字, 첩자(疊字), 누자(漏字)가 지폭(紙幅)에 충만한 중에, 더욱 古地名과 古官名같은 것은 夷言으로 배척하여 그 訛, 誤, 疊, 漏를 거의 등사자(謄寫者)나 인판자(印版者)의 자유에 방임하여 정정자가 없었으며, 支那24사 중 이른바 조선열전 혹 동이열전에 적힌 명사가 傳聞으로 음역한 것도 있지만, 직접으로 당시 이두문의 본명을 그대로 가져다가 쓴 것도 적지 않으나, 그러나 수백년래로 고서고증에 늙은 중화문사들이 남의 역사에는 사정도 격막일 뿐더러 노력도 좀 아긴지라, 그리하여 모든 사실의 誤나 문구의 訛도 발견한 이가 없거든, 하물며 彼等의 눈에 서투른 일반명사이랴. 그러므로 그 조선열전 등의 訛, 誤, 疊, 漏가 또한 대단하여 신용하기 위험한 기록들이니 그 곤란이 네번째다.

언어는 死板的이 아니요 活板的이라 시대를 따라 생멸하며 변화하는고로 훈몽자회나 용비어천가나 처용가 같은 것에 據하면, “코 鼻”가 “고”이며, “가랑 脚”이 “가랄”이며, “잇기 苔”가 “잇”이며 “강 江”이 “가람”이며, “바다”가 “바랄”이요, 삼국사기나 만주원류고 같은 것에 거하면 “철 鐵”이 “물”이며, “삼림 森林”이 “와지”이며, “관경 管境”이 “주선”이니, 그러면 이밖에 소멸 혹 변개된 말이 얼마인지 모를지니 그 곤란이 다섯번째라.

그러나 조선사를 연구하지 안니하려면 모르거니와 연구하려면 여기에 힘을 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라. 이제 左方에 千慮의 一得을 진술하여 일반 讀史者의 斤正을 구하노라

2.    해석 방법

i) 본문의 自證이니, 이를테면 삼국사기 職官志에 각간(角干)의 일명을 서불감(舒弗邯) 혹은 서발한(舒發翰)이라 하였으니 角은 쇠뿔의 뜻이요, 서불 혹은 서발은 쇠뿔의 음이라. 武官이 쇠뿔로 만든 활을 씀으로 관명을 지음이니, 근세까지도 嶺南人이 무관을 “쇠뿔에기”라 함이 그 유풍이요, 간(干), 감(邯), 한(翰)은 다 “한”의 음이니 (邯은 邯鄲의邯과 동음), 그런즉 각간(角干), 서불감(舒弗邯), 서발한(舒發翰)은 다 “쇠뿔한”으로 독(讀)할 것이니라.

열전(列傳)에 이사부(異斯夫) 일명 태종(苔宗)이라 하며, 居柒夫 일명 荒宗이라 한 바, 이사(異斯)는 苔(이끼)의 뜻이니 “잇”이요 거칠(居柒)은 荒의 뜻이니 “거칠”이요, 夫는 경서언해의 士大夫를 “사태우”로 解함에 의거하여 그 古音이 “우”임을 알지니, 宗(마루 종, 위에 사투리로 우에)의 뜻이니 이사부는 “잇우”로 거칠부는 “거칠우”로 讀한 자이며, 本紀에 “炤智一作毘處”라 하여 “伐暉一作發暉”라 하였은즉, 소지(炤智)의 炤에서 半意를 취하여 “비”로 읽고, 智는 全音을 취하여 “치”로 읽은 자니 “소지”와 “비처”가 동일한 “비치”이며, 이두문에 매양 弗, 發, 伐은 통하는 자인즉, 伐暉와 發暉가 동일한 “뿔휘”니 뿔휘는 용비어천가에 거하여 今語의 뿌리 根이다.

지리지에 “三陟郡本悉直國”이요 “金壤郡本休壤郡”이라 하였은즉, “세치”의 음이 실직(悉直)이 되며 “세치”의 “세”는 뜻으로 쓰고 세치의 “치”는 음으로 써 “삼척”이 됨이요,  “쇠라”를 음으로 써 휴양(休壤, “쉬다 휴”이므로 이 역시 뜻이라 사료됨)이 되고, “쇠” 뜻으로 써 금양(金壤)이 됨이니라. 이 따위는 이루 셀 수 없으므로 아직 약하거니와, 이상은 곧 他의 遠證을 待할 것없이 그 해석을 얻는 자니라.

ii) 동류의 傍證이니, 이를테면 古史를 읽다가 지명의 꼬리에 달린 忽, 波衣, 忽次, 彌知 같은 것들을 만난다 하자. 홀(忽)이 곧 “골”인가의 의문이 있지만 의문이 확설이 되지 못하나니 반드시 미추홀(彌鄒忽), 술이홀(述爾忽), 비렬홀(比列忽), 동비홀(冬比忽) 등 모든 홀의 동류를 얻어야 학설이 될지며, 파의(波衣)가 곧 바위인가의 가정이 생기지만 가정으로 단언을 내리지 못할지니 반드시 조파의(租波衣), 구사파의(仇斯波衣), 별사파의(別史波衣) 등 모든 파의의 동류를 얻어야 단안이 될지며, 갑비홀차(甲比忽次), 요은홀차(要隱忽次), 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 등 모든 호차의 동류를 얻으면 홀차가 곧 “고지” 半島인 줄을 알지며, 송미지(松彌知), 고마미지(古馬彌知), 무동미지(武冬彌知) 등 모든 미지의 동류를 얻으면 미지가 곧 水灣인 줄을 알지니라.

漢陽의 남산도 목멱(木)이요 평양의 남산도 목멱인즉, 남산과 목멱(木)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 관계로 인하여 목멱은 “마메” 곧 남산의 이두문인 줄을 알지며, 松山의 古號가 부사대(扶斯達)요, 송현(松峴)의 고호가 부사파의(扶斯波衣)요, 송악(松嶽)의 고호가 부사갑(扶斯甲)인즉, 松과 扶斯의 서로 따라다니는 원인으로 인하여 松의 고어가 “부스” 곧 扶斯인 줄을 알지니라.

이상 본문에서 그 해석을 얻을 수 없는 명사는 그 동류를 수집하여 추단할 자니라

iii) 前名의 遡證이니, 이를테면 황해도 文化縣의 九月山을 단군의 阿斯達이라 하고, 解字가 가로되, 阿斯는 아홉이요, 達은 달(月)이니 구월의 뜻이라 하나, 阿斯를 앗, 엇, 옷, 웃 혹은 아쓰, 어쓰, 오쓰, 우쓰 등으로 읽을 수 있으나 아홉으로는 읽을 수 없으며 達의 음은 “대”이니 대는 山嶺의 뜻이니 淸州의 上黨山을 “것대”라 칭하는 류니, 삼국사기 지리지에 蘭山의 고명이 석대(昔達)요 靑山의 고명이 가지대(加支達)이요, 松山의 고명이 부사대(扶斯達)이니, 阿斯達의 達도 그와 같이 음은 “대”요, 뜻은 山嶺이니 달(月)의 뜻으로 解함이 불가하며, 구월산의 고명은 궁홀(弓忽)이요, 궁홀의 별명은 검모현(劍牟縣) 혹 궁모현(窮牟縣)이니, 세가지 이름을 합하여 보면 궁홀(弓忽)은 “굼골”로 읽을지니, 고구려 말엽에 의병대장 검모잠(劍牟岑)이 의병을 일으켜 당나라와 사우던 곳이며, “굼골”의 명산인고로 “굼골산”이라 함이니, 마치 금강산이 “개골”에 있는 산인고로 “개골산”이라 한 類이거늘, 이제 굼골을 구월로 와전하고 구월을 아사달로 위증하여 단군의 후예가 구월산으로 移都한 사실을 위조하였으나, 이는 신라 경덕왕이 북방 주와 군명을 옮기고 따라서 고적까지 옮길 때에 만든 것이요 史實이 아니니라.

북부여(北夫餘)의 고명이 조리[1]비서(助利非西)요, 합이빈(哈爾賓)의 고명이 비서갑(非西岬)이라. 속어에 팔월 추석을 가우절이라 하고 삼국사기에는 가배절(嘉俳節)이라 하였으니, 비(非), 배(俳) 등의 글자가 고음에 “우”임이 명백하니 비서(非西)와 아사(阿斯)가 음이 상근(相近)할 뿐더러 단군 후예인 해부루는 합이빈에서 동천하여 동부여가 되며 해모수는 합이빈에서 굴기(堀起)하여 북부여가 되었은즉, 아사달은 곧 비서갑(非西岬)이니, 지금의 합이빈 완달산(完達山)이 그 유지(遺地)가 될지니라. ,

이상은 그 父나 祖의 성씨를 얻으면 그 자손된 其人의 성씨도 자연 알게 되듯이 본명사의 발생한 지방이 모호하거든 그 고명을 찾아 진가를 아는 류니라.

iv) 後名의 沿證이니, 이를테면, 진수(陳壽) 三國志 三韓傳에 “諸官”을 다 “지(支)”라 이름하였다 하며, 그 중의 대관(大官)은 신지(臣智)라 명하였다 하며, 신지(臣智)를 혹 “신운견지(臣雲遣支)”라 칭한다 하였으니, 지(智), 신지(臣智), 신운견지(臣雲遣支) 등을 당시에 무엇으로 읽었겠느뇨. 고대에 諸小國의 宗主가 되는 대국을 辰國이라 하며, 諸小王을 관할하는 대왕을 辰王이라 하며, 제소도(諸蘇塗; 神壇)의 종주되는 대소도(大蘇塗)를 신소도(臣蘇塗)라 한바, 臣과 辰 등을 다 “신”으로 독할지니, 신은 太의 뜻이며 總의 뜻이며 上의 뜻이며 제일이란 뜻이요, 智의 음은 “치”니 관명의 支와 智 등의 글자는 모두 “치”로 독할지니 신지(臣智) 즉 신치는 집정의 수상이요 “臣雲遣支”의 雲은 下文의 巨雲新國의 “운”을 여기에 첩재한자니 운 자를 빼고 “신크치”로 독함이 가하며 臣遣支는 고구려의 太大兄이요 신라의 上大等이니 신크치의 음이 臣遣支가 되며 뜻이 太大兄 혹 上大等이 됨이니라(大兄의 일명은 近知).

무릇 太大는 모두 “신크”니, 연개금(연개소문)의 太大對盧(金庾信傳에 보임)는 “신크마리”로 독할지며, 김유신의 太大角干은 신크쇠뿔한(쇠뿔한의 뜻은 이미 前述)으로 독할지니라. 저자가 연전에 북경 순치문내 석등암에 우거할때에 일개의 東蒙古僧을 만나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몽고말로 무엇이냐 물은즉 “동은 준라, 서는 열라, 남은 우진라, 북은 회차”라 하여 그 명칭이 고구려의 순나(順那), 연나(涓那), 관나(灌那), 절나(絶那) 등, 동서남북 4부와 비슷하므로 매우 경기(驚起)하여, 인하여 한자로 써 서로 문답하다가 원태조 황제의 成吉思汗이라 칭한 뜻을 물어본즉 成吉은 “싱크”니 몽고말로 최대의 뜻이요, 思는 음이 “쓰”니 威權의 뜻이요, 汗은 제왕의 뜻이니, 성길사한은 곧 무상최대의 위권을 가진 제왕이란 뜻이라 하니, 싱크는 대개 조선고어의 신크가 변화한자니 삼국 이두문의 학자의 붓으로 원 태조의 명을 쓰자면 太大思라 할지로다.

그러면 太大의 명을 가지고 역사상에 나타난 자가 김유신, 연개소문, 성길사한 3인이니, 비록 文野의 別과 활동 범위의 대소는 현수(懸殊)하나 각기 일시 동양 정치무대상의 대괴물이니 또한 일종의 佳話라 할지로다.

v) 同名異字의 互證이니, 전술한 모든 명사가 거의 동일한 명사를 互異한 자로 쓴 것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복잡한 자가 두가지니니,

하나는 “라”이니, 사라(沙羅)가 되기도 하고 사량(沙良)이 되기도 하며, 가슬라(加瑟羅)가 가서량(加西良)도 되며, 平壤이 平穰, 平那, 百牙, 樂浪, 樂良 등도 되며, 大良이 大耶도 되어, 加羅가 駕洛, 加耶, 狗邪, 加良 등도 되며, 安羅가 安邪도 되며, 邁羅가 邁盧도 되며, 新羅가 斯羅도 되며, 順那 涓那 등이 順奴 涓奴 혹 順婁 涓婁 등도 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으나 기실은 “羅 良 盧 奴 婁 那 牙 壤 耶 邪”등이 모두 “라”로 읽을 수 있는 자니 “라”는 川의 뜻이라. 삼국사기에 “故國壤一名故國川”이 壤 등이 “라” 됨을 증명하며, “素那一名金川”이 那 등의 “라”됨을 증하며, “沸流奴一名沸流川”이 奴 등의 “라”됨을 증하니라. “穰 壤” 등의 글자가 어찌 “라”가 되느뇨.

훈민정음에  “ㅿ如穰字初發聲”이라하니ㅿ은 이제 소멸된 음이나 老乞大朴通事諺解 등의 책에 北京話의 日을 ㅿ로 발음하였은즉 ㅿ은 즉 ㄹ에 비슷한 자라. 穰자의 全聲이 ‘랑’에 비슷한 “”인고로 이두문에 펴라(펴라 씀이 가하나”가 소멸된 자인 고로 “라”로 代함)란 물을 쓸쌔 음으로 써서 平壤, 平穰, 百牙 등이 되며, 上字는 뜻으로 下字는 음으로 써서 樂浪, 樂良 등이 되며, 상자는 음으로 하자는 뜻으로 써서 浿河, 浿江, 浿水 등이 됨이니, 속어에 平壤笠을 “펴랑이”라 함을 보아도 平壤을 이두문에 “펴라”로 독함이 명백하니라. 平壤이나 浿水가 동일한 “펴라”이면 “펴라”가 어찌 수명이 되는 동시에 또 지명이 되겠느뇨.

공주의 “버드새”가 수명이지만, 그 수변(水邊)의 역명(驛名)도 “버드새”요, 청주의 “까치내”가 수명이지만 그 수변의 村名도 “까치내”니, 삼국지에 “句麗作國好傍大水而居”라 한 바, 수변에 作國함은 조선인 고래의 습속이다. 그러므로 羅, 良, 盧, 奴 등 모든 “라”의 지명이 있음이며, 나라(國家)의 명칭이 나루(津渡)에서 始함이니라. 平壤과 浿水가 이와 같이 갈리지 못할 관계가 있거늘, 順菴 선생은 패수는 대동강으로 잡고서 위만의 평양을 그 오백리 이외의 한양에 와서 구하며, 白鳥庫吉은 평양을 지금의 평양으로 잡고서 위만이 건넌 패수를 압록강 하반부라 하였으니, 이는 다 “펴라”란 이름이 이두문의 平壤, 浿水 등 됨을 모른 까닭이라.

두번째는 “불”이니, 삼한의 비리(卑離)와 백제의 부리(夫里)와, 동부여 북부여 졸본부여 사비부여(泗沘扶餘) 등의 扶餘와, 추화(推火), 음즙화(音汁火) 등의 火와, 不耐城의 不과, 사벌(沙伐), 서라벌(徐羅伐) 등의 伐이 다 “불”로 독할 자니, 불은 평지(平地)의 뜻이요, 도회(都會)의 뜻이다. 청나라 건륭황제의 흠정만주원류고에 삼한의 비리(卑離)를 곧 청조관명(淸朝官名)의 패리(貝勤)와 같은 자라 하였으나, 그러나 이를 백제의 지리지와 대조하면 牟盧卑離는 毛良夫里요, 피비리(辟卑離)는 波夫里요, 如來卑離는 爾陵夫里요, 監奚卑離는 古莫夫里니, 卑離는 국명이요 관명이 아니니, 그 상세는 졸저 전후삼한고에 보이니라. 이상은 곧 복잡한 異名字에서 음과 뜻과 연혁으로써 그 同名됨을 발견한 자니, 조선고사의 연구에 비상한 도움이 있는 자니라.

vi) 異身同名의 分證이니, 전술한 同名異字는 “라”와 “불” 등 보통명사에 관하여 同名이 異字로 쓰인 것을 논술한 바이어니와, 여기에서는 고유명사 가운데 字의 同異이는 불문하고 名의 동일한 것을 논증하려 한다.

예를 들면, 동사강목 지리고에 大同列水, 漢江列水의 辨이 있으며, 松花鴨綠, 遼河 鴨綠, 今 鴨綠의 爭이 있으나, 기실은 是라 하면 皆是요, 非라 하면 皆非니, 조선 고어에 長을 “아리”라 하였으니 장백산 고명의 아이민상견(阿爾民商堅)의 “아이”가 이를 증명하며 鴨도 “”라 하였으니 압수(鴨水) 일명 아리수(阿利水)가 이를 증명하는 자라. 대개 고인이 일체의 장강(長江)을 “리가람”이라 칭하니라.

한자를 수입하여 이두문을 만들어 쓸 때에”의 음을 취하여 아리수(阿利水), 오열강(烏列江), 구려하(句麗河), 욱리하(郁里河) 등으로 썼으니, “”의 “”가 “아”, “오”, “우” 등의 간음(間音)인 고로 阿, 烏, 句, 郁 등의 각종 取音이 부동함이요, 뜻으로 써서 鴨子河 혹은 鴨綠江이라 함이니 鴨綠, 炤智의 이두와 같이 리의”를 “鴨”의 뜻에서 취하고, 리의 “리”를 綠의 음에서 취함이니, 조선족분포의 순서를 따라 아리가람의 득명한 선후를 추상해본다.

1차에 完達山 아래 哈爾賓에 조선을 건설하고 松花江을 “리가람”이라 하였으니 이상국집 동명왕편 註에 引한 古記의 유화왕후의 가리킨 “熊心山下鴨綠水”와 요사 성종본기의 “改鴨子河爲混同江”이 松花의 고명의 “”임을 증명하여, 제2차에 남하하여 遼河를 보고는 또한 리가람이라 하였으니, 삼국사기 지리지의 “遼東城本名烏列忽”과 삼국유사의 “遼河一名鴨綠”이 遼東河 옛 이름인 “”임을 증명하며, 제3차에 동진하여 현재 압록강을 보고 또한 아리가람이라 하였나니 지금까지 변치 않은 압록의 명이 그 고명의 리임을 증하며, 제4차에 서출하여 永平部의 河를 보고 또한 리가람이라 하였으니 永平部志의 郁列河, 武列河가 난하의 고명이 “”임을 증하며, 제5차에 경기도의 한강을 보고 또한 리가람이라 하였으니 온조본기의 위례성과 광개강토호태왕의 비문이 “渡阿利水”와 개로왕본기의 郁里河가 한강 고명의 리임을 증하며, 제6차에 경상도에 至하여 낙동강을 보고 또한 리가람이라 하였으니, 신라 지리지의 阿尸良과 일본서기의 阿禮津이 낙동 고명의 리임을 증하니라. 列水, 烈水 등은 支那人이 烏列水, 郁列水 등을 약하여 쓴 자니 모든 열수가 곧 모든 압록강이요 모든 압록강이 곧 모든 열수니, 시대와 경우를 따라 위치를 구별함은 가하거니와, 만일 열수를 한 개를 만들며 압록가을 한 개를 만들려 함은 치상(癡想)에 불과하니라.

산해경이 비록 후인이 백익(伯益)에게 위탁한 書이나 사마천 사기에 산해경을 설급하였은즉, 지나의 秦漢 이전의 書됨은 명백한 바, 기중의 “朝鮮 在列陽東 海北 山南 列陽屬燕”의 文에 의하여 先儒들이 列은 漢水요 陽은 水北의 뜻이요, 조선은 지금 평양이라 하여 朝鮮在列陽을 一句로 읽었으니, 그러면列陽屬燕을 어떻게 해석할까? 列陽의 陽은 平壤의 뜻과 같이 水의 뜻이요 초성을 읽어 “라”로 발음할 자니[2], 지나인이 당시 조선인이 쓰는 이두문의 烏列陽, 혹은 郁列陽을 약하여 열양(列陽)이라 쓴자라. 列陽屬燕이 한 개의 구니 우의 列陽은 곧 영평부의 河를 가리킨 자요, 조선은 廣寧 平壤 혹은 海城 平壤을 가리킨 자요, 海北은 발해의 북을 가리킴이요, 山南은 無閭의 남을 가리킴이니, 이것이 대개 秦開 入寇 이후의 기록이므로列陽屬燕이라 함이니라.

관야정(關野貞)의 조선고적도설 해설 점제비(朝鮮古蹟圖說 解說 黏蟬碑) 註에 그 비의 발견에 의하여 歷來 爭論이 되던 열수는 대동강이 됨이 가하다 하였으나, 이든 반드시 한서 지리지의 “列水西至黏蟬入海”를 거함일지나, 그러나 이는 1) 열수의 多數됨과 2) 한서 註의 顔師古등의 위증이 있음을 모른 말이라. 2)에 속한 논변은 졸저 “평양 패수고”와 “전후 삼한고”에 보이니라. 余友 某君이 鴨綠의 鴨은 음 “압”이니 앞(前)의 뜻이요, 鴨綠의 古號인 마자(馬訾)의 馬는 음이 “마”니 南의 뜻이요, 송화강의 古號인 粟米의 粟은 음이 “속”이니 리(裡)의 뜻이라 하니, 압록의 “압”은 오해이나 其餘는 거의 近理하니, 송화강은 만주어에 “송”라 하니 “송”는 “속"의 변화일지니, 속리는 “國裡(나라 안)”의 리란 뜻일지며, 압록의 일명이 梅河이니 梅가 馬訾, 馬와 비슷하니 國南의 長江인고로 “마”라 함이며, , 遼河, 漢水 등의 구별한 명사는 찾을 수 없으나 모두 리로 할때에 그 구별이 있었을지니라.

고대에는 지명뿐 아니라 인명도 父子祖孫이 같이 짓고, 세대 혹 대•소 등 자를 그 上에 冠하여 구별하였으니, 김부식이 신라의 양(兩) 儒理王을 의(疑)하여 其一은 禮자로 改한다 명언하며, 백제의 兩 蓋婁王을 疑하여其一은 蓋鹵王으로 하였으나, 이는 다 周公 孔子의 諱法이 수입된 뒤의 안목으로 고사를 독한 까닭이라. 麗朝 초년가지도 그 유풍이 있었으므로 안동권시의 족보에 據하면 權太師의 이름이 幸이요, 그 子의 명이 仁幸이니라. 이 따위 관계를 모르고 고사를 연구하면 마침내 맹인의 야행이니라.

3.    결론

이상의 서술한 바는 곧 졸견으로 얻은 바 古史上의 이두문으로 쓴 명사의 해석법이라, 이 따위 해석에서 얻은 사학적 연구상의 효과를 略陣하리라.

1) 前人의 이미 증명한 자를 더욱 堅確하게 함이니 마치 咸昌이 古寧加耶임은 전인의 설도 있지만, 이제 耶, 羅가 동음인 줄을 발견하여 고녕가야를 고링가라로 독하는 동시에 咸昌 공갈못의 공갈이 곧 고링가라의 축음임을 알지며, 따라서 고링가라의 위치가 더욱 명백할지니라.

2) 유래의 의문을 명답할 수 있으니, 마치 고려사 지리지에 익산의 武康왕릉을 箕準의 능으로 載하고, “俗號末通大王陵”이라 註하여 “一云百濟武王小名薯童”이라 再註하여 양설을 병존하였으나, 그러나 삼국유사에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女 선화를 유취(誘娶)한 사실을 기하였으며, 여지승람에는 무강왕이 선화부인과 미륵산성을 作할새 진평왕이 百工을 보내 助하였다 하니 薯의 뜻은 “마”니 薯童은 곧 “마童”이요, 末通은 곧 마동의 취음인즉, 무강왕은 곧 백제 본기의 武王인 장(璋)이라. 장(璋)의 시(諡)가 무강(武康)왕이어늘 잔결(殘缺)한 백제사에 강(康)을 궐하며 장(璋)의 왕후가 선화요, 미륵산성은 장(璋)과 선화의 연애를 노래하던 유지(遺址)어늘 사가의 참고가 부정(不精)하여 8백세의 연령이나 차이가 있는 격세(隔世)의 왕인 기준(箕準)의 궁인으로 인(認)하여 柳冷齋같은 박학자로도 그 익산의 懷古詩에 “可惜蒼黃浮海日”, “船頭猶載善花嬪”의 笑話를 끼쳤다.

3) 전인의 위증한 자를 교정할 수 있으니, 역옹패설에 신라 진흥대왕이 벽골제(속칭 金堤 萬頃 외밤이들)를 짓고 도(稻)를 種하므로 후인이 그 은덕을 생각하여 稻를 羅祿이라 하다 하였으니 羅祿의 解도 고린 漢文장이의 해석이어니와, 完山에 그친 眞興의 족적이 어찌 김제의 벽골제에 가서 稻를 種하리요. 백제 지리지에 거하면 碧骨은 곧 김제의 古號요 백제의 군이니, 碧骨은 베골(稻邑)이니 백제가 이 堤를 쌓아 稻田을 作하고 그 이익이 다대함을 기념하여 “베골”이란 군명을 냄이 명백하다. 백제본기에 稻田을 記한 자가 둘이니, 하나는 다루왕 6년의 始作稻田이 그 是요 두번째는 고이왕 9년의 開稻田於南澤이 是니 벽골은 곧 두번째에 속한 남택의 稻田이 될지니라.

4) 前史에 두찬(杜撰)을 타파할 수 있으니 삼국사기에 석탈해는 金櫝에서 탈출한 고로 이름을 탈해라 하고, 작명(鵲鳴)의 서(瑞)가 있었으므로 鵲자 좌변의 昔을 차(借)하여 성을 석씨(昔氏)라 하였다 하며, 동사회통에 고주몽은 거국이 고앙(高仰)한 고로 성을 高氏라 하였다 하며 문헌비고에 여수기(余守己)가 단군의 9부 군장이 되어 중인이 부(附)하므로 중인변(衆人邊)을 가하여 徐氏가 되었다 하여, 각종의 괴설이 분운하나, 그러나 삼국 중엽 이전에는 人, 地, 官 등 각종의 명사를 모두 우리말로 짓고 이두문으로 슨 것이니, 어디 이 같은 漢字 破字의 벽습(僻習)이 있었으랴. 이다위 파자가 麗朝 중엽에 성행하여 황규(黃葵)가 황규(皇揆)가 되고, 계명성(鷄鳴聲)이 고귀위(高貴位)가 되고, 無古之那가 無古之難이 되고 身負三椽이 王자가 된다는 等說이 고려사에 보인 자 허다한 바, 이 시대의 이 습관을 잘 아는 문사들이 고기를 수습하다가 말로 지은 명사를 한자의 뜻으로 解하여 고사의 면목을 오손함이 적지 아니하니라.

이두문적 명사의 해석이 이와 같이 고사 연구에 유익하나, 그러나 반드시 독단을 피함이 가하니, 예하면 연개소문의 蘇文은 신으로 독함이 가하나 을지문덕의 文德은 묵인지 묻인지 무드인지 알 수 없음은 전자는 삼국사기의 그 本註의 一名蓋金이 그 해석을 전하거니와, 후자는 그 해석을 失한 까닭이라. 고자미동(古資彌凍)의 고자(古資)는 구지(半島)로 독함이 가하나, 彌難彌凍의 彌難은 밀인지 미리인지 머리인지 알 수 없음은 전자는 고자군(古自郡: 田城의 古號)의 지형과 역사의 연혁이 그 설명을 與하거니와 후자는 그 증거가 없나니라.



[1] 編註: 4부중 하나인 북부 절나(絶那)에서 나라를 뜻하는 那이외의 글자인 절(絶)은 조리(助利)의 반절씩 취한 “졸”과 그 음이 비슷하다.

[2]編註: 본디 발음은 “열양”이나 예전에는 연음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으므로 “여량”이라고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