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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위략에 실린 동명왕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3.

퍼온글 http://kr.blog.yahoo.com/buja100kim/48


삼국지(三國志) 권삼십(卷三十) 위서(魏書) 삼십(三十) 오환(烏丸), 선비(鮮卑), 동이전

(東夷傳)에 부여(夫餘) 동명왕(東明王) 이야기가 주석(註釋) 형태로 전해진다.


아래에 원문(原文)과 번역문(飜譯文)을 적었다.


  魏略曰 :              위략(魏略)에서 말한다 :

  舊志又言              또한 옛기록(舊志)에서 말한다.

  昔北方有高離之國者    옛날 북쪽에 고리(高離)라는 나라가 있었다.

  其王者侍婢有身        그 나라 임금을 모시던 무수리(侍婢)가 아이를 배자

  王欲殺之              임금이 무수리를 죽이려고 하였다.

  婢云                  무수리가 사뢰되

  有氣如雞子來下        "달걀 같은 기운이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와

  我故有身              쇤네가 아이를 뱄습니다"라고 하였다.

  後生子                나중에 아이를 낳았다.

  王捐之於溷中          임금이 아이를 돼지우리() 안에 버렸다.

  豬以喙噓之            돼지들이 주둥이로 아이에게 입김을 불었다.

  徙至馬閑              (아이를) 옮겨 마구간(馬閑)에 버렸다.

  馬以氣噓之            말들이 입김을 불어주니

  不死                  (아이가) 죽지 않았다.

  王疑以爲天子也        임금이 (그 아이가) 하늘의 아이가 아닐까 생각하고

  乃令其母收畜之        그 어미에게 거둬 키우게 했다.

  名曰東明              동명(東明)이라 이름 지었다.

  常令牧馬              늘 말을 돌보게 했다.

  東明善射              동명은 활을 잘 쐈다.

  王恐奪其國也          임금은 (동명에게)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웠다.

  欲殺之                동명을 죽이려고 하자  

  東明走                동명이 달아났다.

  南至施掩水            남쪽으로 시엄수(施掩水)에 이르러

  以弓擊水              활로 물을 치니

  魚鱉浮爲橋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다.

  東明得度              동명이 건너자

  魚鱉乃解散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졌다.

  追兵不得渡            추격병들(追兵)은 건너지 못했다.

  東明因都王夫餘之地    이리하여 동명은 부여 땅에 서울을 정하고 임금이 되었다.

  <삼국지 권30 위서 30 오환, 선비, 동이전에서>


  [
한자 풀이]

  溷 : [] 어지럽다. 흐리다, 더럽다, 뒷간

  喙 : [, ] 부리, 주둥이

  閑 : [] 마구간, 한가하다


위략(魏略)의 동명왕 이야기와 논형(論衡)의 동명왕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 몇몇 고유명사

(固有名詞)를 빼고는 서로 같은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논형(論衡)의 탁리국(橐離國)과 엄수(掩水)가 위략(魏略)에서 고리국(高離國)과 시엄수(

掩水)로 바뀌었을 뿐이다.


블로그의 제목이 "위략(魏略)에 실린 동명왕 이야기"인데 실제 인용한 것은 <삼국지(三國
)
위서(魏書) 오환(烏丸), 선비(鮮卑), 동이전(東夷傳)>이다.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위략(魏略)과 어환(魚豢)


<
위략(魏略)>의 지은이는 위()나라 때 관리(官吏)를 지냈던 어환(魚豢)이다.

어환(魚豢)은 낙양(洛陽) 출신으로 위()나라에서 낭중() 벼슬을 지냈던 사람이다.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위()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는 여럿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위()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세운 위(, 220-265)를 가리킨다.


()가 신하였던 사마염(司馬炎)에게 망하자 어환(魚豢)은 벼슬에서 물러나 학문(學問)
에만
몰두(沒頭)하였다.

특히 역사에 심취(心醉)하였는데 위략(魏略)은 그가 개인적으로 펴낸 위()나라의 역사책
이다.

위략(魏略)은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으로 구성된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역사책이다.

나라의 명을 받고 펴낸 역사책이 아니어서 그런지 참신(斬新)하고 독창적(獨創的)인 내용
많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위략(魏略)의 원문(原文)을 구해 봤지만 구할 수 없었다.

단지 삼국지(三國志)에 주석(註釋) 형태로 적힌 글들만 있을 뿐이었다.


이유(理由)를 알아보니 당()나라 때 책이 실전(失傳)됐다고 한다.

이후 세상에 다시 나타나긴 했지만 그 내용은 원래 책의 20분의 1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
.


이 블로그에서는 하는 수 없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오환(烏丸), 선비(鮮卑), 동이
(東夷
)>에 실린 위략(魏略)을 참조(參照)하였다. 



진수(陳壽)와 배송지(裵松之)


삼국지(三國志)의 지은이로 유명한 진수(陳壽)는 파서(巴西) 안한(安漢) 출신으로 서기
233년부터
297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는 승조(承祚).


원래 촉()의 관리였으나 263년에 촉()이 위()에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265년 위()가 진()에게 망하자 268년부터 진()의 관리가 되었다.


()가 망한 280년부터 삼국(三國)의 사료(史料)를 정리하기 시작하여 289년에 위서(
) 30,
촉서(蜀書) 15, 오서(吳書) 20권으로 된 삼국지(三國志)를 완성하였다.

 

()와 오()는 멸망하기 전 국가 차원에서 역사책을 냈다.
왕침(王沈) <위서(魏書)>위소(韋昭) <오서(吳書)>가 그 책들이다.

()에는 또 어환(魚豢)이 개인적으로 지은 역사책 <위략(魏略)>도 있다.
삼국지(三國志)에서 인용한 <위서(魏書)>, <위략(魏略)>, <오서(吳書)>는 이 책들을 말한
.


이처럼 위()와 오()는 사료(史料)가 풍부했지만 촉()은 따로 역사책을 펴내지 않았
기 때문
에 진수(陳壽)는 직접 사료(史料)를 구해야 했다.

()의 지방호족(地方豪族)들의 기록과 구전(口傳)되는 이야기 그리고 제갈량(諸葛亮)
문집(
) 등에서 필요한 자료를 얻었다.


이런 이유로 삼국지(三國志) 중 위서(魏書)와 오서(吳書)는 내용이 상세하지만 촉서(蜀書)
는 내용이
간결하다.


삼국지(三國志)를 편찬할 당시 진수(陳壽)는 진()의 관리였기 때문에 위()에 정통성
(正統性)
두었다.

()의 군주(君主)들의 기록만 <()>라고 적었고 촉()과 오()의 군주(君主)들의
기록은
<()>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책 제목만 그럴뿐 실제 내용은 삼국(三國)에 차별을 두지 않고 동등하게 다뤘다.


유비(劉備)
를 선주(先主)라고 불렀는데 이는 진수(陳壽)가 원래 촉()의 관리였기 때문에
유비(劉備)
에 대해서만은 애뜻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남북조(南北朝) 시대 때 ()의 문제(文帝)428년에 삼국지(三國志)의 내용(內容)
보완하라고
배송지(裵松之)에게 명을 내린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송()은 우리가 흔히 아는 고리(高麗) 시대의 송()과는 다른 나
라다.

이 송()은 동진(東晉)의 신하였던 유유(劉裕)가 동진(東晉)을 무너뜨리고 420년에 세운
나라다.

군왕(君王)들의 성()을 따서 유송(劉宋)이라고도 부른다.


문제(文帝)는 송의 세번째 군주(君主) 424년부터 453년까지 재위(在位)에 있었다.


문제(文帝)의 명()을 받은 배송지(裵松之)는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서 빠진 기
(記錄)과 이설(異說)들을 모아 429년에 보완작업을 끝마친다.


배송지(裵松之)의 작업 덕분에 삼국지(三國志)는 그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해졌다.

[후한(後漢)에서 수()까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오환(烏丸), 선비(鮮卑),
동이전(東夷傳)


우리나라 고대사(古代史)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것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정식 이름은 <삼국지 위서 오환, 선비, 동이전>이다.


서른 권으로 구성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중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은 오환(烏丸)과 동호(東胡), 선비(鮮卑), 부여(夫餘), 고구리(高句麗), 동옥저(東沃
), 읍루
(挹婁), (), 진한(辰韓), 변진(弁辰), () 등을 다뤘다.

오환(烏丸)과 동호(東胡)는 같은 민족이라고 나온다.


동명왕 이야기는 부여(夫餘)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고구리(高句麗)에 대한 이야기로 넘
어가기 전에
위략(魏略)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