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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한국 역사책

심당전서 단서대강 조선기 제13세 도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8.

제13세 단군왕검 도해유제


裕帝(유제)의 이름은 道奚(도해)이고 靈帝(령제)의 태자이다. 원년은 경인년이고 재위기간은 57년이다.
裕帝諱道奚靈帝太子也. 元年庚寅在位五十七年.

庚寅(경 인, BC1891) 원년. 큰아들 阿漢(아한)을 태자로 삼았다. 有爲子(유위자)를 太子大傅(태자대부)로 삼았다. 帝(제)는 五加(오가)에게 12개의 이름난 산에 뛰어난 곳을 택하여 國仙(국선) 蘇塗(소도)를 설치하게 하였으며 박달나무를 원을 그리며 많이 심게 하여 이를 神木(신목)으로 삼았다.
庚寅元年. 冊長子阿漢爲太子命有爲子爲太子大傅. 帝命五加擇十二名山之最勝處設國仙蘇塗多環稙檀樹爲神木.

國子師傅(국자사부) 有爲子(유위자)가 책략을 올려 이렇게 말하였다. “생각해보니 우리 神州(신주)는 실로 桓䧺(환웅)이 開天(개천)한때로부터 무리를 받아들여 神(신)을 이용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교화하였습니다. 天經神誥(천경신고)는 찬술하여 하늘에 고한 것이고 衣冠帶劔(의 관대검)은 즐거이 아래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범하는 일이 없이 자치하였고, 들에는 도적이 없어 스스로 편안히 다녔으며, 세상의 사람들은 질병이 없어 스스로 오래 살고 흉년이 없어 넉넉하였으며, 산에 올라 노래부르고 뜰을 거닐며 춤을 추었고, 이르지 못하는 먼 곳이 없고 흥하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덕스러운 교화가 백성에게 더하여져서 칭송하는 소리가 사해에 넘치었으니 有是請(번역불가, “이러한 청함이 있사오나”라고 해석하여지나 뒷문장에 그 청한 내용이 있어야만 할 것 같으나 뒷문장이 없다).
國子師傳 有爲子 獻策曰.., 惟我神州實自桓䧺開天 納衆, 以神設敎而化之. 天經神誥詔述於上, 衣冠帶劔樂効於下. 民無犯而自治, 野無盜而自安擧, 世之人無疾而自壽, 無歉以自裕, 登山而歌, 趍庭而舞, 無遠不至, 無處不興, 德敎加於百姓, 頌聲溢於四海, 有是請.

10월에 대시전(大始殿)을 건축하도록 명하였는데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천황 환웅의 남겨진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봉안하였는데, 머리 위에 광채가 빛나 큰 해와 같았으며, 둥근 빛은 우주를 비추고 박달나무 아래 근화(槿花)의 평상 위에 앉음이 하느님과 같았다. 그리고 둥근 마음은 천부인(天符印)을 쥐고 큰 동그라미의 그림을 깃대에 걸어 루전(樓殿)의 깃발로 하였다. 이를 일컬어 거발환(居發桓)이라 하며 삼칠일을 경계하여 강론하니 사방의 백성을 바람이 일 듯 움직였다. 그 념표(念標)의 문에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十月, 命建大始殿, 極壯麗. 畵天皇桓䧺遺像, 而奉安之. 頭上光彩閃閃如日, 有圓光昭耀宇宙, 坐於檀樹之下 槿花床上 如神. 而有圓心持天符印, 標揭大圓一之圖旗於樓殿立號居發桓三日而戒七日而講風動四方之民其念標之文曰..,
天以玄黙爲大其道也普圓其事也眞一地以畜藏爲大其道也效圓其事也勤一人以智能爲大其道也擇圓其事也協一故一神降衷性通光明在世理化弘益人間
仍刻之于石.

하늘은
오묘하고 마구 말하지 아니함으로 큰 도리를 삼았고
둥그런 것을 널리 베푸는 것으로 그 일을 삼았다.
참된 하나의 땅은
가축을 기르고 곡식을 저장하는 것으로 큰 도리로 삼았고
둥그런 것을 본보이는 것으로 그 일을 삼았다.
근면한 하나의 사람은 지식과 능력으로 그 큰 도리를 삼았고
둥그런 것을 택함으로 그 일을 삼았다.
하나로 협력한다면, 따라서 하나의 신이 속마음으로 내려와 광명을 통하게 하고 세상에 있어 이치로 교화하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다.
天.., 以玄黙爲大其道也, 普圓其事也.
眞一地.., 以畜藏爲大其道也, 效圓其事也.
勤一人.., 以智能爲大其道也, 擇圓其事也.
協一故一神降衷性通光明在世理化弘益人間

더하여 돌에 새겨놓았다.
仍刻之于石.

신묘(辛卯, BC1890) 2년. 유위자(有爲子)가 아뢰어 이야기 하였다. “생각해보니 우리 하느님의 나라는 신조(神祖)께서 선교[倧敎]【하늘을 공경하는 종교이다】를 창립하여 국교로 삼으시니 백성들이 모두 숭배하고 존중하여 믿었으나 세월이 멀어 사람들이 강경(降經, 하늘이 내려주신 경전)을 미워하여 가르침에 해이하여지니 백성들이 믿음과 가르침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의식에 치우쳐 음탕하고 편안한 욕심을 탐하게 되어 미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해로움이 자라나 국정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비오니 기하(基下)께서는 선교[倧敎]를 혁신하시어 본래의 뜻으로 돌리시고 국민들로 하여금 진실되이 선교를 믿게하여 음황부화(淫荒浮華)의 재앙의 거리에 꼬꾸라지지 않게 하시옵소서.”라고 말하였다. 제(帝)는 그 뜻을 따라서 나라의 종교를 크게 혁신하고 갈고 닦아 모두 성실함과 꾸밈없음으로 돌아갔으니 이를 일컬어 선교[倧敎]가 중흥한 시대라고 한다【발해 왕조의 삼일신고는 多刊行于世】.
辛卯二年. 有爲子奏曰.., 惟我天帝之國神祖創立倧敎【敬天之敎】爲國敎, 而民皆崇拜尊信, 世遠人降經殘敎弛, 人民不知信敎之眞理, 而流於儀式, 貪於淫佚之欲心, 而陷於迷信. 其害蔓及國政. 伏願基下革新倧敎, 復歸本旨, 使國民眞信倧敎, 不墜於淫荒浮華之禍巷焉. 帝從之, 大革國敎, 切磋琢磨咸歸於誠實質朴, 是謂倧敎中興之世【渤海朝三一神誥多刊行于世】.

정유(丁酉, BC1884) 8년. 하국(夏) 주인(主) 근(廑)이 사신을 보내 내조하였다.
丁酉八年. 夏主廑遣使來朝.

을해(乙亥, 1882) 10년. 금강율령(金剛律令)을 반포하였다.
乙亥十年. 頒布金剛律令.

壬寅(임인, BC1879) 13년. 一土山(일토산)【평양의 泊山(박산)에 있다.】에 사는 사람 王祖明(왕 조명)을 泊民長(박민장)으로 삼고 이엉을 엮어 만든 집에서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땅을 살펴 곡식을 심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찧는 도구를 만들어 낟알을 찧어 밥을 하도록 하였으니 치적이 매우 두드러졌었다. 왕조명은 하국(夏)의 주인(主)인 孔甲(공갑)의 아우인데 劉累(류누)와 함께 변란을 보고 동쪽으로 평양의 일토산에 와서 살았었다. 帝(제)는 滄海(창해)로 순행하여 탄식하며 말하기를 “신기하여라 산과 강들의 아름다움이여! 이는 天府(천부)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壬寅十三年. 命一土山【在平壤之泊山】人王祖明爲泊民長, 敎民拔茅苫屋, 相地種穀. 又制㫪具㫪粟爲炊, 治績頗著. 王祖明夏主孔甲之弟也. 與劉累觀時變, 而東來平壤一土山因居焉. 帝幸滄海嘆曰奇㦲山河之美是天府之地也.

丁巳(정사, BC1864) 28년. 萬國博物館(만국박물관)을 나라의 도읍 평양【부여】에 설치하도록 명하여 크게 열었다. 모여진 지방의 산물들이 진기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열국들이 물건을 다투어 바치려고 폭주하여 내조하였으니 지방 산물을 늘어놓은 것이 산과 같았다.
丁巳二十八年. 命設萬國博物館于國都平壤【扶餘】大開. 所聚方物以閱珍奇. 列國爭獻品輻輳來朝方物之陣列如山.

乙丑(을축, BC1856) 36년. 神祐(신우)을 夏國(하국)에 보내서 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乙丑三十六年. 遣神祐于夏國締約修好.

乙卯(을묘, BC1854) 38년. 帝(제)는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국민 모두가 병역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국민개병제를 정하였다. 또한 선비 25인을 뽑아서 夏國(하국)의 수도에 보내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가르침을 전하고 나라의 위풍을 보이었다.
乙卯三十八年. 帝下詔使國民皆賦兵役而定國民皆兵之制又選士二十五人遣于夏國首都始傳國訓以示威風

乙酉(을유, BC1848) 44년. 帝(제)는 마니산에 올라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乙酉四十四年. 帝登摩尼山築壇祭天

乙亥(을해, BC1846) 46년. 3월에 삼신일체상제에게 남쪽에서 제사를 지내었다. 술과 음식이 갖추어지니 말씀 한마디를 하시고 초례를 지내었다. 이날밤에 특별히 명하시어 잔치를 베풀도록 하였으며 대중들과 더불어 만끽하며 노셨는데 파하자 망루의 樓殿(누전)에 올라 경서를 논하고 誥(신고, 神誥)를 연습하시었다. 돌아보고 五加(오가)들에게 말씀하여 지금부터 살생을 금하고 생명은 놓아주며 옥에 갇힌 자는 풀어주고 거렁뱅이는 보호하며 아울러 사형을 없애도록 하자고 하셨다. 안팎에서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乙亥四十六年. 三月. 祭三神一體上帝于南. 供酒備膳致詞而醮之. 是夜特令設醼, 與大衆百戱. 罷仍登樓殿論經演誥顧謂五加曰自今以後禁殺放生釋獄獲丐並除死刑中外聞之大悅

乙酉(을유, BC1836) 56년. 作廳(작청)【기계공장】을 松花江(송 화강) 연안에 만들도록 명하시고 각종 기계와 배와 수레와 기물들을 제작하였으니 세상에 크게 행하여졌었다. 帝(제)께서 하명하여 국내에 새로운 기계를 발명한 자를 모아 상을 수여하시었는데 이때에 발명한 기물들은 아래와 같다. 黃龍船, 揚水機, 自行輪車, 輕氣球, 自發雷車, 天文鏡, 照膽鏡, 驅石鞭, 自鳴鐘, 輕重漏器涓滴, 發雷動舂機, 素琴, 千里相應器, 木牛流馬, 震天雷, 御風昇天機, 吸氣潛水船, 測天機, 量海機, 量晴計, 測雨機, 測寒計, 測暑計, 量雨計, 測風計, 이들은 모두 상을 받은 발명 기물이었다. 이때를 일컬어 발명이 지극히 성대함을 이룬 시대라고 한다 【居漆夫(거칠부)의 小史(소사)을 번역하여 기재하였다.】.
乙酉五十六年. 命設作廳【機械工場】于松花江岸製作各種機械舟車器物大行於世. 帝下令募國內新機發明者賜賞. 時發明器物如 黃龍船, 揚水機, 自行輪車, 輕氣球, 自發雷車, 天文鏡, 照膽鏡, 驅石鞭, 自鳴鐘, 輕重漏器涓滴, 發雷動舂機, 素琴, 千里相應器, 木牛流馬, 震天雷, 御風昇天機, 吸氣潛水船, 測天機, 量海機, 量晴計, 測雨機, 測寒計, 測暑計, 量雨計, 測風計, 等皆受賞發明器也. 謂之發明極盛之世也【居漆夫小史譯載▨】

丙戌(병술, BC1835) 57년. 帝(제)가 죽으니 백성들이 통곡하기를 자기 어미가 죽은 것 같이 하였으므로 3년간 근신하였다. 온 땅안에 즐거운 소리가 멈췄다. 태자 阿漢(아한)이 즉위하니 이가 武帝(무제)이다.
丙戌五十七年. 帝崩百姓慟哭如喪考妣三年憂四海之內停聲樂太子阿漢立是爲武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