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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지리지

신당서 지리지 발해 관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12.
당나라는 여러 기미주(羈縻州)를 설치하였는데, 모두 국경 근처에 있었으므로 오랑캐 부락에 이름을 붙였다. 사방의 오랑캐가 중국과 교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수들이 토벌하거나 칙사들이 방문할 때 나아간 길을 기록해 두었다. 천보(天寶) 연간에 현종(玄宗)이 여러 주변 나라들의 거리를 물으니 홍려경(鴻臚卿) 왕충사(王忠嗣)가 서역(西域)의 지도로 대답하니 겨우 십여국에 불과하였다. 그후 정원(貞元) 연간에 재상을 지냈던 가탐(賈耽)1)이 사방 영역의 거리를 고찰한 것이 가장 상세하였으니, 변방에서 사방 오랑캐로 들어갈 때 홍려시(鴻臚侍)에서 통역하는 자치고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사방 오랑캐로 들어가는 길과 관문과 요새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일곱 개가 있다. 첫째는 영주(營州)에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로 들어가는 길이다. 둘째는 등주(登州)에서 바다로 고구려와 발해로 들어가는 길이다. [각주] 1) 開元 8(720)~永貞 1(805)의 당나라 재상. 貞元 17(801) 古今郡國縣道四夷述 40권을 30년 동안의 노력의 결실로 완성하였다. 이 시기는 발해의 문왕대(770~800)에 해당된다.

셋째는 하주(夏州)의 장성에서 대동(大同)과 운중(雲中)으로 통하는 길이다. 넷째는 중수항성(中受降城)에서 회골(回鶻 ; 회흘)로 들어가는 길이다. 다섯째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서 서역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여섯째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에서 천축(天竺)으로 통하는 길이다. 일곱째는 광주(廣州)에서 바다로 통하는 길이다. 그 산천과 취락, 영역의 거리는 요목만 들었다. 주현마다 이름이 있지만 예전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오랑캐들이 스스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영주에서 서북쪽으로 100리 가면 송형령(松陘嶺)이 있다. 그 서쪽으로는 해(奚), 동쪽으로는 거란(契丹)이 있다. 영주에서 북쪽으로 400리 가면 황수(潢水 ; 지금의 시라무렌강)에 도달한다. 영주에서 동쪽으로 180리 가면 연군성(燕郡城)이 있다. 또 여라수착(汝羅守捉)을 거쳐 요하(遼河)를 건너서 안동도호부에서 도달하려면 500리나 가야 한다. 안동도호부는 옛날 한나라 때의 양평성(襄平城)이 있던 곳이다. 동남쪽으로 평양성(平壤城)에 도달하려면 800리나 가야한다. 서남쪽으로 도리해구(都里海口)에 도달하려면 600리나 가야한다. 서쪽으로 건안성(建安城)에 도달하려면 300리나 가야한다. (이곳은) 옛날 중곽현(中郭縣)이 있던 곳이다. 남쪽으로 압록강 북쪽의 박작성(泊汋城)에 도달하려면 700리나 가야한다. (이곳은) 옛날 안평현(安平縣)이 있던 곳이다. 안동도호부에서 동북쪽으로 옛 개모성(蓋牟城)과 신성(新城)을 거치고,

다시 발해의 장령부(長嶺府)를 거쳐 1,500리나 가면 발해의 수도에 도착한다. 그 성은 홀한해(忽汗海)에 인접해 있다. 그 서남쪽으로 30리 되는 곳에 옛 숙신성(肅愼城)이 있다. 그 북쪽으로 덕리진(德理鎭 ; 지금의 흑룡강성 依蘭)을 거쳐 흑수말갈(黑水靺鞨)의 남쪽에 도달하려면 1,000리나 가야한다. 등주에서 바닷길로 동북쪽으로 가는데, 대사도(大謝島)·귀흠도(龜歆島)·말도(末島)·오호도(烏湖島)까지 300리나 된다. 북쪽으로 오호해(烏湖海)를 건너 마석산(馬石山) 동쪽의 도리진까지 200리나 된다. 동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청니포(靑泥浦)·도화포(桃花浦)·행화포(杏花浦)·석인왕(石人汪)·탁나만(橐駝灣)·오골강(烏骨江)을 지나는데 800리나 된다. 다시 남쪽 바닷가를 따라 오목도(烏牧島)·패강구(貝江口)·초도(椒島)를 지나야 신라 서북쪽의 장구진(長口鎭)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진왕석교(秦王石橋)·마전도(麻田島)·고사도(古寺島)·덕물도(得物島)를 지나서 1,000리를 더 가면 압록강의 당은포구(唐恩浦口)에 이르는데, 여기서 동남쪽으로 육로로 700리 가야 신라의 수도에 도착한다. 압록강 하구에서 배를 타고 100리 정도 가다가,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동북쪽으로 30리를 거슬러 올라가 박작구(泊汋口)에 이르면

발해의 국경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환도현성(丸都縣城)에 이르니 이곳은 옛 고구려의 수도이다. 다시 동북쪽으로 2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육로로 400리를 가면 현주(顯州)에 이르니 천보 연간에 (발해)왕이 도읍하던 곳이다. 다시 정북방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의 수도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