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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삼한오가를 모방한 삼황오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30.

중국의 신화적인 시조인 삼황오제는 그 기록에 따라 그 인물들이 다르며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일까?

삼황오제에 대한 설은 중국역사상 전국시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국시기에 먼저 "오제"에 관한 설이 형성되고, 전국말기에 "삼황"이란 단어가 출현한 후 한대(漢代)에 "삼황"에 관한 설이 형성되었다. 이로부터 삼황오제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역대로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삼황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이 7종의 설이 있다.

1.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  ≪사기(史記)≫「보삼황본기(補三皇本記)」에 인용된 ≪하도(河圖)≫, ≪삼오력(三五曆)≫
2.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 :  ≪사기(史記)≫「진시황본기(秦始皇本記)」
3. 복희(伏羲), 여와(女娲), 신농(神農) :  ≪풍속통의(風俗通義)≫「황패편(皇覇篇)」
4. 복희(伏羲), 신농(神農), 공공(共工) :  ≪통감외기(通鑒外紀)≫
5. 복희(伏羲), 신농(神農), 축융(祝融) :  ≪백호통(白虎通)≫
6.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 :  ≪풍속통의(風俗通義)≫「황패편(皇覇篇)」에 인용된 ≪예위(禮緯)≫「함문가(含文嘉)」
7.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  ≪제왕세기(帝王世紀)≫와 손씨주(孫氏注) ≪세본(世本)≫

오제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5종의 설이 있다.

1.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 :  ≪황왕대기(皇王大紀)≫
2. 황제(黃帝), 전욱(颛顼), 제곡(帝喾), 당요(唐堯), 우순(虞舜) :  ≪세본(世本)≫, ≪대대례(大戴禮)≫, ≪사기≫「오제본기」
3. 태고(太皋: 복희), 염제(炎帝), 황제(黃帝), 소고(少皋), 전욱 :  ≪예기(禮記)≫「월령(月令)」
4. 소호(少昊), 전욱(颛顼), 고신(高辛), 당요(唐堯), 우순(虞舜) :  ≪상서서(尙書序)≫, ≪제왕세기≫
5. 황제(黃帝), 소고(少皋), 제곡(帝喾), 제지(帝摯), 제요(帝堯) :  ≪도장(道藏)≫「동신부(同紳部)·보록류(譜錄類)·곤원성기(混元聖記)」에 인용된 양무제(梁武帝)의 말

중국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삼황오제에 대한 인물들에 대한 주장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그 설들이 분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옛날 중국의 사학자들이 중국의 유구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른 민족들, 특히 백달민족의 상고사를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하여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삼황오제의 근원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것은 바로 신시배달국의 정치제도이다. 신시배달국은 신시환웅이 세운 고조선 이전의 나라이다. 신시배달국은 한명의 임금 밑에 두명의 작음 임금을 두었는데, 임금을 "한(韓)"이라고 불렀다.  가장 높은 임금은 진한(辰韓)으로 불리며 환웅 혹은 신시가 이를 담당했으며, 작은 두명의 임금은 마한(馬韓)과 변한(弁韓)이다. 이들은 이두자로 신한, 막한, 불한의 음차에 해당된다고 조선상고사에서는 말하고 있다. 즉, 신한은 한 중에 최고의 한이라는 뜻이며, 막한은 하늘의 한이라는 뜻이고, 불한은 땅의 한이라는 뜻이다. 진한은 신시환웅의 자손들이 대대로 맡아보았으며, 마한은 고시씨의 자손들이, 그리고 번한은 치우씨의 자손들이 대대로 맡아보았다라고 규원사화는 기록하고 있다. 규원사화에서는 신지씨의 이름도 보이나, 신지씨는 대대로 진한의 명을 이어받아 출납하는 직책을 맡아보았다고 기록하고있으므로, 한의 지위에는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삼한은 보통 삼경(三京)제도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진한은 신시배달국의 본국을 맡아 보았고, 변한과 마한은 본국의 제후국과 같은 역할을 했기때문이다. 보통 삼한제도는 고조선때의 제도로 알고 있으나 이러한 제도는 신시배달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제의 근원은 바로 신시배달국의 오가(五加)이다. 오가는 신시배달국에서 삼한 밑에 재상이나 장관격의 직책을 맡은 사람이다. 가(加)는 역시 북방유목민족에서 사용하는 존칭접미사로써, 신라에서 사용한 거서"간", 마립"간", 각"간" 등을 통해서 알아 볼수있으며, 고구려에서는 막리"지", 백제에서는 건길"지"등이 이와 상통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오가제도는 부여의 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규원사화에서는 말하고 있다.

중국의 사가들은 바로 삼한오가제도를 모방하여 자신들의 신화를 구성하고 삼황오제라 이름지었지만, 그 원류가 자신들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서들마다 삼황오제의 인물들이 일치하지 않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러한 삼한오가의 제도는 고조선에 이르러 삼한팔가로 확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