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기자(箕子)와 풍백(風伯) 치우(蚩尤)의 자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12.

앞서 “발 조선의 실체 파악”에서 바람국(發藍國)은 치우의 자손인 서여(西余)가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서여(西余)는 은국(殷國)에서 망명해 온 기자(箕子) 서여(胥餘)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 신단(辰檀)의 정통을 이은 바람국(發藍國)이 곧 기국(箕國)이라는 것을 밝히고 지나인들이 바람국의 다른 이름인 기국(箕國)을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 왜곡한 위사임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신단(辰檀)의 정통을 이은 국가는 치우의 자손 서여(西余)가 세운 바람국(發藍國)이다. 《한단고기》의 저자는 이를 모른 체 서여(西余)에 대한 기록이 〈번한세가〉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우여(徐于餘)라는 각색된 인물을 만들어 우리 역사를 혼란스럽게 하였으니 그 죄가 크다 할 것이다.

〈번한세가〉를 보면 치두남(蚩頭男)에서 해모라(奚牟羅)까지는 다 치우의 자손인데, 큰 권력을 잡게 된 고등(高登)이 소정(小丁)을 바람국의 임금으로 임명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에 반감을 품은 자가 있으니 치우의 자손 서여(西余)이다.

《환단고기》

奚牟羅立薨檀君蘇台五年以雨師小丁出補番韓蓋高登每彈其智謀出衆而勸帝出補時殷主武丁方欲興兵高登聞之遂與上將西余共破之追至索度縱兵焚掠而還西余襲破北毫仍屯兵于湯池山遣刺客殺小丁竝載兵甲而去

해모라가 죽고 단군 소태 5년 우사인 소정을 번한에 임명하였다. 대저 고등이 항상 그 지모를 탄주하고 무리에 뛰어났기 때문에 임금에게 권하여 임명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에 은국(殷國)의 주(主) 무정(武丁)이 막 병사를 일으켜 치려 하므로 고등이 이를 듣고 상장(上將) 서여(西余)와 함께 이를 격파하고 추격하여 색도(索度)에 이르매 병사를 보내 불지르고 약탈한 뒤 돌아왔다. 서여는 북박을 습격하여 격파하고 병사들을 탕지산에 주둔케 하더니 자객을 보내 소정을 죽이게 한 후, 무기와 갑옷들을 아울러 싣고 돌아왔다

반감을 품은 상장(上將) 서여(西余)는 고등이 임명한 번한 임금 소정을 죽였는데, 필자가 짐작하기로 소정은 치우의 자손이 아니므로 치우의 자손 서여(西余)가 반감을 품고 그를 죽인 것이다. 그리고 서여(西余)는 이후로 바람국의 정권을 잡아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단고기》에서는 그 뒷부분 기록으로 상장(上將) 서여(西余)라는 인물은 안보이고 갑자기 기수(奇首) 서우여(徐于餘)가 등장하여 〈번한세가〉를 장식하니 아마도 기자(箕子)가 개아지(奇子)라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각색한 것이리다.

따라서, 필자의 추측으로는 신단(辰檀)이 분열되어 고등이 정권을 잡은 두막루(豆莫婁)라는 나라와 상장(上將) 서여(西余)가 정권을 잡은 바람국 나뉘는 것인데 바람국의 역사는 〈번한세가〉에 간략하게나마 적혀 있다. 이때가 약 BC1286년이니 은국(殷國)망명인 서여(胥餘)는 그 뒤로 약 100년 뒤에나 봉토(封土)를 받아 조선국(朝鮮國)이라 한 것이다.

우리 고대사에는 은유적 표현이 많으니 “일월성(日月星) 밝은 나라”를 진단(辰檀)으로 표현한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람국(發藍國)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기국(箕國)이다. 강희자전에서 箕를 찾아보면 箕伯風師라고 하여 箕伯(기백)을 風師(풍사)라고도 하였으니 風伯(풍백)을 또한 箕伯(기백)이라고도 하였으리라. 또한 《書指南》에 보면 아래와 같은 기록이 보인다.

《書指南卷十三

風師曰箕伯[風俗通箕一名亢動則大風]

풍사(風師)는 기백(箕伯)이다. 풍속통에서는 箕(기)를 일명 亢動(항동)이라 하였는데 즉 대풍(大風)이다.

따라서, 서여(西余)가 정권을 잡은 바람국(發藍國)을 箕로 나타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키질을 할 때 중요한 것이 바람이니 그 개연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은국(殷國)에서 망명한 자가 바람국(發藍國) 즉 箕國(기국)의 동쪽 朝鮮(조선) 平壤城(평양성)에 봉함을 받자 支那人(지나인)들이 이를 왜곡하여 신단(辰檀)의 정통을 은국(殷國) 망명자가 이었다고 거짓으로 역사를 적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구절이 지나인의 기록에 존재하게 된다.

《論語類考》卷七

莊子云箕子名胥餘不知何據

기자의 이름은 서여(胥餘)인데 어떤 기록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근거기록이 없는 것이 당연한데, 왜냐하면 西余(서여)의 바람국(發藍國)을 箕子(기자) 胥餘(서여)의 朝鮮(조선)으로 왜곡했기에 기국(箕國)의 건국자 이름이 기록된 근거를 보이면 왜곡한 것이 탄로날까 봐 겁났기 때문입니다. 혹 箕子(기자)란 箕伯之子孫(기백지자손)을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