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백제의 영토는 압록강 북쪽까지 차지하였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5.

백제는 통설에 북쪽 경계가 浿河까지라 하고 浿河를 대동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에 한산주를 빼앗기기 전까지 압록강 이북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27년(서기 9) 여름 4월에 두 성이 항복하자 그 백성들을 한산(漢山) 북쪽으로 옮기니, 마한은 드디어 멸망하였다.가을 7월에 대두산성(大豆山城)을 쌓았다.


의심해하기로는 마한 멸망 후 대두산성을 쌓았으므로 대두산성 근처에 마한의 본거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하지만 의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두산성은 이외에도 마한의 잔여세력들이 반기를 들때 다시 등장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34 년(서기 16) 겨울 10월에 마한의 옛 장수 주근(周勤)이 우곡성(牛谷城)에 근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친히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였다. 주근이 스스로 목매어 죽자 그 시체의 허리를 베고 그의 처자도 아울러 죽였다.


마한이 반란을 일으켜 토벌한 후에 대두(산)성의 민가들을 분가시키죠. 아마 마한이 다시 세력을 모으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36년(서기 18) 가을 7월에 탕정성(湯井城)을 쌓고 대두성(大豆城)의 민가들을 나누어 살게 하였다. 8월에 원산성(圓山城)과 금현성(錦峴城)의 두 성을 수리하고,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을 쌓았다.


대두산성은 문주왕때에 다시 기록이 나타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2년(476) 봄 2월에 대두산성(大豆山城)을 수리하고 한강 이북[漢北]의 백성[民戶]들을 이주시켰다. 3월에 사신을 송(宋)나라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는데 고구려가 길을 막아 도달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대두산성을 수리하여 漢北의 백성들을 옮겼으므로 백제의 최북단에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죠. 하지만 이 한산주는 후에 고구려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백제의 최북단 대두산성이 고구려 멸망시 압록강 이북에 속하여 항복하지 않은 성이라는 것입니다.


鴨淥水以北未降十一城....중략....大豆山城本非達忽
압록강 이북에 항복하지 않은 11성...중략... 대두산성이 있는데 원래는 비달홀이라고 불렸다.


대두산성이 두 개가 아닐까 하여 고구려본기에도 찾아봤으나 대두산성은 백제초기의 대두산성 밖에 없더군요.
이는 백제의 한산주가 압록강 이북까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